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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신혁 May 11. 2024

도시의 연극이 끝나는 우리 집

It's alright 우리 집으로 가자! - 고프만의 연극학적 사회학


1. 집의 의미


    등교를 하건 출근을 하건 여러분은 오늘도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에서 나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생활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家)하실 것이다. '집-학교/회사-집' 빙글빙글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집은 시작점이자 돌아가야만 하는 도착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잠만 자"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집은 필요하다. 먹고, 자고, 씻고 우리는 집에서 일상에 필수적인 활동들을 한다. 그렇기에 집이 우리의 도시생활에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파트, 단독주택, 빌라 등 다양한 우리의 집


    특히 코로나가 유행했던 시기에 우리는 집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하는 활동들도 다양해졌다. 회사, 식당, 헬스장, 독서실, 카페, PC방, 영화관, 쇼핑몰 등 집 밖의 도시 공간이 담당하던 기능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넷플릭스, 줌, 쿠팡, 밀키트 등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도 집의 기능적 다양화에 한몫했다. 굳이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집이 곧 작은 도시가 되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다양해진 활동들


    이러한 집의 변신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집의 주 기능은 '휴식' 공간이다. 32세 김 씨는 평소 집에 있을 때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라면을 후룩후룩하며 유튜브 화면을 보고 낄낄댄다. 안 본 눈을 사야 할 정도로 처참한 꼴이지만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집에는 김 씨를 괴롭히는 못된 회사 상사나 애매하게 친해서 어색한 친구도 없다. 그래서 집은 사적이고 편안한 공간이다.

    집에 관한 속담도 집의 편안함을 뒷받침해 준다. 영어권에서는 ‘즐거운 나의 집 (Home Sweet Home),’ ‘아무리 누추해도 집만 한 곳이 없다 (Be it ever so humble, there is no place like home)’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도 오죽하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집은 우리 일상의 중심이자 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또 당연한 소리만 했다. 하지만 이 연재 글의 목적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일상을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도시와 연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럼 이제 왜 이 도시에서 집이 가장 편안한 공간일 수밖에 없는지 사회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2. 고프만의 연극학적 사회학


    집이 편안한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고프만(E. Goffman)연극학적 사회학(Dramaturgical Sociology)렌즈를 빌려오자. 고프만은 어쩌면 사회학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재밌는 이론가가 아닌가 싶다. 주류 사회학자들이 사회체계나 이데올로기 같이 거시적 관점에서 사회를 연구했던 것과 달리, 고프만은 현미경으로 사회를 관찰한 사회학자였다. 익숙한 일상을 미세하게 들여다보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회를 해석해 냈다. 고프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자아 연출의 사회학(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에는 고프만 특유의 연극학적 사회학 접근법이 응축되어 있다.


어빙 고프만과 그의 저서 자아 연출의 사회학

      

    고프만은 삶을 연극에 비유하였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없이 많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 세수도 안 하고 늘어진 티셔츠를 입으며 모든 걸 귀찮아하는 김 씨도 회사에 갈 때는 씻고 단정한 옷을 입는다. 회사에서 김 씨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직장인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시답지 않은 농담하기를 좋아하지만 카페에서 주문할 때 김 씨는 그 누구보다 점잖은 사람이다. 교회에서 김 씨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천국에 갈 수 있을 사람 같다. 김 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렇게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가! 특정한 상황에 사회적으로 적절한 말과 행동, 태도를 연기하는 것이다. 

    고프만은 이러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며 사회적 상황을 ‘무대’로, 행위자를 ‘연기자’로, 그리고 타인을 ‘관객’으로 보며 무대 위 연기의 결과로 우리의 자아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렇게 주어진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의 기대에 맞춰 ‘나’라는 사람을 연출하는 것을 고프만은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라고 불렀다. 업무라는 사회적 상황에서는 열정적인 직원, 수업이라는 사회적 상황에서는 성실한 학생, 예배라는 사회적 상황에서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 나의 인상을 관리하는 것이다.


 "자아는 제시된 무대 장면에서 발생한 연기의 결과이다." - 고프만



3.  도시라는 무대 뒤의 집


    집 얘기하다가 갑자기 고프만을 소개하면서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도시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만나야 하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사회적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도시 일상은 끊이지 않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도시의 어떤 공간에서든지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마주한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때와 장소는 없다. 지하철을 타도, 출근을 해도, 등교를 해도, 교회를 가도, 카페를 가도, 영화관을 가도, 그냥 거리를 걸어도 우리는 늘 타인이라는 관객들과 대면하면서 연기를 해야만 한다. 각각의 상황에서 혹여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인상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매번 다른 사람이 돼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경 쓰이고 피곤한 일인가!


도시의 군중들 속에서 우리는 늘 연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비교적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집이다. 물론 1인 가구가 아니라면 집에도 대면해야 하는 사람은 있다. 가족이다. 그러나 집 안의 부모님, 형제, 자매, 아내 등 가족 앞에서 우리는 집 밖 도시에서 마주치는 타인들에게만큼 최선을 다해 인상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가족들은 이미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프만은 연극처럼 인생에도 무대 전면(Front Stage)과 무대 뒷면(Back Stage)이 있다고 보았다. 무대 전면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장소이다. 무대 전면은 배우가 관객들을 의식하고 역할에 맞게 연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인들을 의식하고 인상을 관리해야만 하는 곳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실수할까 신경쓰듯이, 사회에서 우리도 우리의 본모습이 드러날까 긴장하게 된다. 무대 뒷면은 무대 전면과 정반대이다. 무대 뒷면은 매우 사적이고 편안한 장소이다. 무대 뒷면에는 스태프나 동료 배우들이 있지만, 쳐다보고 평가하는 관객들의 시선 밖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연기할 필요가 없다.      


무대 전면과 무대 뒷면은 얼마나 다른가


    집이 편안한 공간인 이유는 집이 바로 도시라는 무대의 뒷면에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마주하는 가족들은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 편한 스태프나 동료 배우이다. 일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사회적 상황을 대면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집은 내가 꾸밈없이 ‘나’ 일 수 있는 도시의 유일한 공간인 셈이다. 김 씨가 집에서 늘어진 티셔츠를 입는지, 세수는 하는지, 밥을 제대로 차려 먹는지, 유튜브로 뭘 보는지 가족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집이라는 공간이 집 밖 타인들의 시선을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네이버 웹툰 "무직백수 계백순"의 집


     배우가 무대 뒷면에서 휴식하듯, 집은 우리가 도시생활에서 얻은 긴장감을 해소하는 곳이다. 마치 귀가하자마자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고 포근한 이불에 쏙 들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배우가 무대 뒷면에서 대본을 연습하듯, 도시에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공간이다. 마치 집 밖에 나가기 전에 든든히 먹고, 씻고, 적당한 옷을 입는 것처럼. 그래서 집은 도시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편안한 공간인 것이다.   




4. 도시의 연극이 끝나는 우리 집


    지금까지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도시에서 집이 왜 편안한 공간일 수밖에 없을까 살펴보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집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김 씨는 결혼 전, 아내 앞에서 멋있게 보이기 위해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결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결혼한 지금, 아내는 무대 뒤의 집에서 김 씨와 인생이라는 연극을 함께 준비하는 세상 누구보다도 편한 동료가 되었다. 나의 잘난 모습이던 모자란 모습이던 본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집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도시의 연극이 끝나는 우리 집은 즐겁다.


도시라는 무대 뒤의 집과 동료인 가족




어빙 고프만 (1922 - 1982)

    고프만은 1922년 캐나다 앨버타에서 태어났다. 토론토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고프만은 사회학계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주류 사회학 연구자들의 거시적인 관점과 계량적인 연구방법을 따르기보다, 일상생활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관찰하면서 본인만의 재치 있는 문체로 풀어내었다.

    본인만의 연구 영역을 발전시킨 고프만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사회학자' 타이틀을 가지고 미국 사회학회장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미국 사회학회장으로 선출된 1982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또 다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고프만을 "무한히 작은 것들의 발견자 (Discoverer of the Infinitely Small)"로 칭하며 추도하였다.

    고프만은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일상도 사회학에 중요한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고프만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사회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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