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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 PD Nov 15. 2024

<아스날>과 <토트넘>은 왜 ‘원수’가 되었을까?(2)

'철천지 원수'가 된 사연

1. 승격 스캔들

전편에 언급한 대로 <토트넘>과 <아스날>의 라이벌관계는 1913년 <아스날>이 연고지를 런던 남동부 울리치에서 북런던으로 전격 이전하면서 촉발되었는데 1919년, 이른바 ‘승격 스캔들’로 인해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적대적' 더비인 '북런던 더비'

1914-15 시즌, 1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첼시(19위)와 토트넘(20위)이었다. 당시의 승강룰은 1부 리그의 하위 2팀이 강등되고 2부 리그 상위 2팀이 승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중단되었던 리그가 몇 년 만에 재개되면서, 리그 전체의 흥행과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참가팀을 20팀에서 22팀으로 늘리기로 결정한다. 22팀으로 늘리더라도 1부 리그에선 강등되지 않고 2부 리그 상위 2팀이 승급하거나, 1부 리그에서 기존대로 하위 2팀이 강등되고 2부 리그 상위 4팀이 승급하게 하면 그만이었는데 난데없이 승급과 강등 팀을 투표로 정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생겼다.


새롭게 정해진 룰에 따라 원래였다면 강등 팀인 19위 <첼시>가 1부 리그에 잔류하고 2부 리그 1, 2위 팀은 기존대로 승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21팀이 결정된 상황에서 나머지 1개 팀을 1부 리그 최하위였던 <토트넘>과 2부 리그 3위~7위, 6팀 중 1팀을 투표로 정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이 결정이 알려지자 해당 팀들은 각자 자신의 팀이 승격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본격적인 투표 전에 돌입했다. 1부 리그 최하위였던 <토트넘>은 1부 리그에서는 강등 팀이 없게 하거나 투표를 하더라도 1부 리그 최하위 팀과 2부 리그 3위 팀 중 1팀을 뽑는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묵살당하고 만다.

<토트넘> 팬들에 의해 모든 분란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아스날> 구단주 헨리 노리스

<토트넘> 구단과 팬들은 이런 해괴한 룰을 정한 배후에 당시 정관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아스날>의 구단주 헨리 노리스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 왜냐면 당시 <아스날>은 2부 리그 5위로 정상적으로는 1부 리그로 승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꼼수를 쓴 거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토트넘>이 우려한 대로 결국 <아스날>은 이 투표에서 승리한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토트넘>을 2부 리그로 강등시키고 1부 리그로 승격되었다. <토트넘> 팬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헨리 노리스가 선거에서 뇌물을 쓰는 등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부정선거를 저질렀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로 인해 <아스날>과 <토트넘>의 길고 긴 악연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북런던 더비'의 일상이 된 양팀 팬들의 충돌

2. 너희 주장은 어디에 있니?

승격스캔들로 시작해 서로 ‘철천지원수’가 된 <아스날>과 <토트넘>은 크고 작은 충돌을 계속 일으키며 이 ‘북런던 더비’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적대적 더비중 하나로 떠올랐다. 1960년대를 제외하고는 <아스날>이 <토트넘>보다 성적 면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 두 팀은 주로 <아스날> 팬들이 조롱하며 도발을 하면 <토트넘> 팬들이 응수를 하는 형태로 충돌을 많이 했는데 <아스날> 팬들 입장에서는 <토트넘> 팬들을 마음껏 조롱할 수 있는 대형사건 하나가 터진다. 이 사건은 아직도 <토트넘> 팬들의 발작버튼인데 2001년, <토트넘>의 주장이자 구단 유스 출신으로 <토트넘>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 솔 캠벨이 <아스날>로 이적한 사건이었다.

<토트넘>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솔 캠벨

당시 캠벨은 계약 만료가 다 되도록 <토트넘>과 재계약을 맺지 않아 토트넘 팬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프로 스포츠에서 이적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긴 했지만, 이적을 할 땐 하더라도 계약이 된 상태에서 이적을 해야 구단 입장에서는 이적료를 챙겨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것인데, 이대로 계약만료가 되어 자유 계약 신분이 된다는 것은 이적료 한 푼 못 받고 팀의 주장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캠벨은 <토트넘>에는 큰 애정을 품고 있지만, 팀이 우승권에 들지 못하자 한계를 느끼고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을 할 수도 있다며 <토트넘> 팬들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캠벨은 ‘재계약도, 이적도 모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절대로 <아스날>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이 입장을 들은 <토트넘> 팬들은 주장을 잃는 것은 뼈아프지만 최악의 경우는 없을 거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토트넘>팬들의 뒷 목을 잡게 한 솔 캠벨의 <아스날> 이적 기자회견

그러나 얼마 후, 솔 캠벨은 <토트넘> 팬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아스날>과 전격 계약한다. 유스 때부터 <토트넘> 맨이자 팀의 주장이었던 솔 캠벨의 <아스날> 이적 소식에 <토트넘>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부 과격한 팬들은 솔 캠벨의 유니폼을 불태우고 살해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 솔 캠벨 사건은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적으로 손꼽히는 루이스 피구의 <FC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 사건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팀의 상징인 선수가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것은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루이스 피구는 포르투갈 인으로서 외국인 선수였고, 또 소속 팀이었던 <FC 바르셀로나>에게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팀의 유스 출신에다 <토트넘>에게 돈 한 푼 남기지 않고 <아스날>로 이적한 솔 캠벨 사건에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적하자마자 리그와 FA 컵을 모두 들어 올린 솔 캠벨

우승에 목말라 팀을 옮긴 솔 켐벨이 가세한 <아스날>은 그 해 리그와  FA컵을 모두 우승하면서 더블을 달성했다. <아스날> 팬들은 <토트넘> 팬들을 조롱하기 위해 새로운 응원가를 만들어 불렀는데 <아스날>이 그 해에 이룩한 업적을 나열하고서는 ‘이 놈들아, 궁금한 게 있는데 니네 주장은 어디에 있니?’라는 가사로 되어 있었다. 사실 <아스날> 응원가들의 대부분이 <토트넘>을 조롱하는 것이긴 하지만, ‘니네 주장은 어디에 있니?’라는 가사는 <토트넘> 팬들의 폐부를 더욱 깊이 찔렀다. <토트넘> 팬들은 이에 대응하여 솔 캠벨이 나서는 경기장마다 예수를 팔아넘겼던 배신자 ‘가룟 유다’를 지칭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솔 캠벨을 예수를 팔아 넘긴 배신자의 대명사 가룟 유다에 비유하고 있는 <토트넘> 팬들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2021년, 유로 2020을 보기 위해 로마를 찾은 솔 캠벨은 한 레스토랑에서 봉변을 당했는데, 캠벨임을 확인한 한 <토트넘> 팬이 ‘여기 있었네, 솔 캠벨. 이 배신자 XX’라고 소리치며 난리를 피운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미 20년이 지난 일인데도, 심지어 <토트넘>을 응원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유로 2020에 참가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왔음에도 캠벨의 얼굴을 보고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솔 캠벨에게 야유를 퍼 붓고 있는 <토트넘> 팬들

23-24 시즌, <토트넘> 팬들은 <아스날> 팬들을 분노케 할 결정적인 찬스를 잡는다.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날>이 치열한 우승경쟁을 벌이던 시즌 막판, <맨체스터 시티>와 <토트넘>의 경기가 있었다. 사실 <토트넘> 입장에서도 <아스톤 빌라>와의 4위 경쟁을 하던 터라 이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는 확률이 생기는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일부 <토트넘> 팬들은 <맨시티>를 이길 경우 <아스날>의 우승 확률이 높아지므로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토트넘>의 패배를 응원했다. 실제로 손흥민이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놓치자 <토트넘> 팬들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으며, <아스날> 팬들은 ‘손흥민이 일부러 골을 넣지 않았다’며 텔레비전을 부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런던 더비'에서 골을 넣고 <아스날> 팬들 앞에서 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손흥민과 분노한 <아스날> 팬들

<맨시티>에게 골을 허용하자 큰 함성과 함께 21-22 시즌 <토트넘>이 <아스날>을 유로파리그로 밀어내고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했을 때 불렀던 ‘아스날, 보고 있나?’라는 응원가를 다시 불렀다. 비록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아스날>의 우승을 막음으로써 <아스날>에게 2년 만에 통쾌한 설욕을 한 것이다.


3.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     

<아스날> 팬들에게 1년 중 가장 즐거운 축제일 중의 하나는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이다.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은 2002년경에 ‘교회오빠’들이 창단한 <토트넘>을 비꼬는 의미로 한 <아스날> 팬에 의해 정립되었는데, ‘토트넘(tottenham)’의 스펠링에 ‘위태롭다’는 뜻의 형용사 ‘토터링(tottering)’의 스펠링을 결합하여 신조어를 만든 것으로서 시즌 막판, <아스날>의 순위가 <토트넘>보다 높다는 것이 산술적으로 확정된 날을 기념일로 정해 즐기는 것이다. <아스날> 팬들은 <아스날>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이 확정되면 한데 모여 성대한 축제를 즐긴다.

'성 토터링엄의 날'을 기념하는 <아스날> 팬의 축하 케이크

1994-95 시즌 이후 <아스날>은 계속 <토트넘>보다 우위를 보이면서 21년 연속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을 즐겨 왔다. 2016-17 시즌에 <토트넘>이 홈에서 열린 ‘북런던 더비’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드디어 <아스날>보다 높은 순위를 확정했고 22년 만에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을 무산시켰는데 그 뒤로 2022-23 시즌 다시 <아스날>이 우위를 차지하기까지 매 시즌 <토트넘>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토트넘> 팬들은 ‘성 토터링엄의 날 (St. Totteringham’s Day)’을 무산시킨 날을 축제일로 지정해 즐겼다.  

22년만에 '성 토터링엄의 날'을 무산 시킨 것에 환호하는 <토트넘> 팬들

프리미어리그가 국내에 인기를 끌던 초기에 앙리나 베르캄프, 비에이라 등 슈퍼스타들을 데리고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차지하는 등 잘 나갔던 까닭에, <아스날>은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정작 레전드가 된 손흥민이나 그전에 이영표 같은 국내의 대표적인 선수들이 뛴 곳은 <토트넘>이어서 국내에서도 이 ‘북런던 더비’는 매우 뜨겁다. 한 축구 커뮤니티에서 양 팀 팬들의 논쟁 중에 한 <리버풀> 팬이 끼어들었다가 ‘북런던 일에는 끼어들지 마시죠’라고 면박을 당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03-04 시즌 무패 우승을 달성한 <아스날>

이영표가 손흥민의 <토트넘> 이적이 확정되었을 때 손흥민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조언해 주면서 들려준 일화가 있는데, 직접 겪은 에피소드가 너무 생생해서 화제가 되었다.  

'북런던 더비'의 흔한 풍경

“<토트넘> 크리스마스 파티에선 산타클로스 모자도 파란색이다. 차도 빨간색 차를 사면 안 되고 클럽하우스에 절대로 빨간색 옷을 입고 가면 안 된다(<아스날>의 상징색이 빨간색이기 때문)”

    

“원정 경기를 마친 <토트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3시간가량 대기한다. 그 사이 경찰들이 밖에서 양 클럽의 팬들을 모두 해산시키는데, 팬들이 흩어지고 선수들이 버스에 오르면 경찰 차량 5~6대가 호위한다. 모든 신호를 미리 조작해 버스가 대기 시간 없이 자동 통과하도록 조치하는데. 교차로를 지날 때, 갑자기 매니저가 버스 안 선수들에게 ‘고개를 숙여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어.’ 외친다. 처음엔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곧 이유를 깨닫게 된다. 갑자기 버스 유리창으로 맥주병과 돌이 날아든다. 온갖 물건들이 버스에 쳐 박히고 유리창은 금이 간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까지 4km 중 2km는 <아스날> 지역, 2km는 <토트넘> 지역이다. 매니저가 '이제 괜찮아. 고개를 들어'라고 하면 <아스날> 지역을 통과해 <토트넘> 지역으로 접어든 거다.”

    

이번 가을 시즌 첫 번째 ‘북런던 더비’에서 손흥민의 <토트넘>은 경기를 우세하게 이끌었지만 세트피스 한방에 <아스날>에게 뼈아픈 패배를 기록했다. 과연 <토트넘>은 설욕할 수 있을지, 또 어떤 ‘북런던 더비’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을지, 2025년 1월 16일에 있을 시즌 두 번째 ‘북런던 더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9월 15일에 있었던 올 시즌 첫번째 '북런던 더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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