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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 PD Nov 19. 2024

108년의 기다림, 시카고 컵스 (1)

염소의 저주

지난해, KBO리그에서는 29년 만에 <LG 트윈스>가 우승을 차지하며, LG 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한신 타이거즈>가 3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수많은 한신 팬들이 강물에 몸을 던졌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62년 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하며 한미일 모두 오랫동안 우승에 목말라 있던 팀들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38년만의 우승, 한신팬들의 도톤보리강 입수장면

KBO리그에서는 롯데 자이언츠가 1992년 우승 이후 올 시즌까지 무려 32년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데, 역사가 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던 팀은 어떤 팀일까?

2016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전, 마지막 우승을 한 1908년에 출생한  <시카고 컵스>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은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팀 중 하나인 <시카고 컵스>다. 1908년 우승 후 2016년 다시 우승하기까지 걸린 세월은 무려 108년. 강산이 열 번도 넘게 변한 세월이다.       

1908년은 우리나라의 연대로는 순종 2년인데, 순종 2년에 우승한 <컵스>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때 비로소 다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지난한 세월 속에 <컵스>는 야구라는 종목을 넘어 모든 종목을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저주에 걸렸었는데, 108년 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컵스>가 2016년 우승 이전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1908년은 순종 2년이다.

염소의 저주(Curse of the Billy Goat)

1870년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가 창단되고 이후 여러 이름을 전전하다 1903년, 드디어 <시카고 컵스>가 탄생한다. 초기 <컵스(Cubs)>는 메이저리그에서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했는데, 1906년에는 무려 116승을 거두며 다승 신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1907년과 1908년, 월드 시리즈를 연속 제패했는데, 이 우승이 108년 동안 <컵스(Cubs)>의 마지막 우승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190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1945년 10월 6일, 세계 야구계에서 가장 유명하게 되는 사건 하나가 터진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4차전. 리글리 필드 부근에서 ‘빌리 고트 태번(Billy Goat Tavern)’이라는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컵스>의 열성 팬 빌리 시아니스는 자신의 애완 염소인 ‘머피’- 이 이름은 꼭 기억해야 하는데, 70년 후 다시 등장한다 - 를 데리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입장했는데, 염소의 악취를 견딜 수 없었던 주위 관중들의 항의를 받은 리글리 구단주는 그에게 퇴장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동물 입장에 대해 특별한 규정이 없었던 데다가 염소의 표까지 2장을 구매했기 때문에 빌리는 염소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구단 직원에게 쫓겨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당신들은 이번 월드 시리즈를 질 것이고 내 염소를 모욕했기 때문에 다시는 월드 시리즈에서 이기지 못할 거야”라는 역사에 남을 저주를 퍼붓는다.

빌리 시아니스와 그의 애완 염소 '머피'

이후 <컵스>는 2승 1패로 우세했던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역전당하면서 우승에 실패하게 되는데 사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이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최강팀 중 하나였던 <컵스>는 이 ‘염소의 저주(Curse of the Billy Goat)’ 이후 거짓말처럼 부진에 빠졌고 연속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 ‘염소의 저주’는 전 메이저리그 팬들의 화제로 떠오른다.

리글리 필드에서 퇴장 당하는 빌리와 머피

결국 ‘염소의 저주’의 당사자인 빌리 시아니스가 사망한 지 3년 뒤인 1973년, 빌리의 조카인 샘 시아니스가 염소 ‘머피’의 7대손 염소 ‘제이드’와 함께 "염소 머피여, 모든 것을 용서하고 <컵스>를 우승하게 하소서" 라며 저주를 풀기 위해 리글리 필드에 입장하려 했지만 저주를 믿지 않았던 구단은 당연히 입장을 또 한 번 저지했고, <컵스>는 그 해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염소의 저주’ 후 39년 연속 포스트시즌 근처에도 못 가는 약팀으로 전락한 <컵스>는 약팀의 상징으로서 전국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특히 <컵스>를 조롱하는 각종 유머들은 전국민적인 인기를 끈다.


Q:컵스 투수와 볼링 선수의 차이점은?

A:볼링 선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는데 컵스 선수는 볼을 던진다.’      

Q:컵스 다이어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A:그들이 이기는 날에만 먹는 겁니다.      


설문 조사 결과 91%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9%는 컵스의 팬들이다.       


이처럼 <컵스>를 조롱하는 어록들은 날로 발전해 가는데, 급기야 영화까지 이런 조롱에 동참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백투더퓨쳐 2>에서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로 갔을 때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컵스가 우승을?’ 하며 놀라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2015년)으로 간 주인공들이 <시카고 컵스>의 우승 소식에 놀라는 장면(영화 백 투터 퓨쳐 2)

1984년, 드디어 '염소의 저주'가 있은지 39년 만에 <컵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컵스>는 간절하게 이 저주를 풀기 위해, 1973년에 입장을 막았던 빌리 시아니스의 조카 샘 시아니스와 ‘머피’의 후손 염소를 리글리 필드에 입장시킨다. 드디어 39년 만에 염소 ‘머피’의 후손이 리글리 필드의 잔디를 밟은 것이다. <컵스> 팬들은 이번에야 말로 염소의 저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컵스>는 이번에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염소의 저주’는 그렇게 호락호락 풀리지 않았다.     

<2편에 계속>              

1984년 빌리의 조카 샘 시아니스와 '머피'의 후손 염소가 마침내 리글리 필드의 잔디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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