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시아니스의 애완 염소인 ‘머피’를 리글리 필드에서 쫓아낸 후 빌리가 퍼부은 ‘염소의 저주’는 정말 강력했다. ‘염소의 저주’가 있었던 1945년 이후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에 39년 연속 진출하지 못했던 <컵스>는 1984년, 39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서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빌리의 조카 샘 시아니스와 ‘머피’의 후손 염소를 리글리 필드에 초청까지 했지만 소용없었다. 20세기가 다 가도록, 저주는 풀릴 기미가 없었고 <컵스> 팬들은 21세기에는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가 풀리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마침내 '리글리 필드'에 입장한 샘과 '머피'의 후손 염소
20세기가 지나고 2003년, <컵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 해 메이저리그 최고 영건으로 꼽히는 캐리 우드 - 마크 프라이어 - 카를로스 잠브라노로 이어지는 투수 3인방의 활약과 아라미스 라미레즈 - 모이세스 알루 - 새미 소사가 중심이 된 타선도 매우 막강했기 때문에, 이번 시즌이야말로 ‘염소의 저주’를 풀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
'죽기 전에 한 번만..' <컵스>의 우승을 염원하는 팬
스티브 바트만 사건
오랜만에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오른 <시카고 컵스>의 상대는 <플로리다(현재는 마이애미) 말린스>. 조시 베켓과 AJ 버넷이 버티고 있던 <말린스>도 강팀이었지만 <컵스>는 환상적인 투타 조화로 시리즈를 3승 2패로 앞서나가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단 1승 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58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대한 희망으로 온 시카고가 들썩거리는 가운데, 운명의 6차전 선발투수는 <컵스>의 에이스 마크 프라이어. 마크 프라이어의 호투는 눈부셨고 8회 1사까지 <컵스>는 3-0으로 앞서고 있어 월드시리즈 진출에 아웃카운트 5개 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1사 2루에서 타석엔 루이스 카스티요. 그가 친 타구는 3루 파울지역 펜스 쪽으로 날아갔다. 펜스 경계로 떨어지던 공을 모이세스 알루가 잡으려고 글러브를 뻗은 순간, 파울 공을 잡으려는 한 <컵스> 팬의 손과 엉키면서 공을 놓친다.
문제의 장면. 꼭 동영상으로도 보는걸 추천한다
이 <컵스> 팬의 이름은 스티브 바트만. 아마 메이저리그의 평범한 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될 줄은 이 땐 몰랐을 것이다. 모이세스 알루는 마치 공을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펄쩍 뛰며 바트만을 향해 화를 냈고, 덩달아 리글리 필드의 관중들도 한껏 분노하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리고 곧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눈부신 호투를 하던 마크 프라이어가 흔들리면서 볼넷과 폭투를 범했고, 그리고 그렇게 수비를 잘하던 유격수 알렉스 곤잘레스의 실책이 이어졌다. 이후 결정적인 연속 안타를 얻어맞으면서 순식간에 3-0이던 점수가 3-8이 되었고 그렇게 6차전을 패배했다.
‘염소의 저주’가 또 엄습했다는 불안감이 전 시카고를 휘감았다. 결국 7차전에서도 패한 <컵스>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시카고 컵스>를 꺾고 올라간 <플로리다 말린스>는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면서 <컵스>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 중계 카메라가 바트만을 계속 보여주는 장면. 그는 팬들의 거센 항의로 리글리 필드에서 쫓겨나야 했다.
당시 회사에서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이 운명의 6차전을 직접 중계하고 있었다. 바트만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명재 캐스터의 울부짖는 샤우팅과 현지 <컵스> 팬들의 살벌한 욕설과 오물 투척, 머릿속을 스쳐가는 뭔가 '싸한 '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컵스>의 탈락 이후 스티브 바트만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정도로 극심한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재무설계사였던 그는 회사에도 나가지 못했으며 가족들까지도 살해협박을 받는 통에 전화번호를 바꾸고 집까지 이사해야 했다.
반면 바트만이 위험에 처하자 플로리다 주지사는 만약 바트만이 플로리다로 이주한다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고, <플로리다 말린스> 팬들은 자발적으로 바트만에게 감사와 격려를 담은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살해 협박 때문에 바트만의 집을 보호하고 있는 경찰
당시 바트만은 파란색 <컵스> 모자에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 패션은 최고의 트렌드가 되어 미국 전역을 강타했고, 심지어 바트만이 앉았던 좌석은 ‘바트만의 자리(The Bartman seat)’라고 불리며 리글리 필드의 명당으로 자리 잡았다. 또 바트만 사건의 공을 한 자산가가 경매로 사들여 공개적으로 폭파하면서 저주를 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하기도 했고, 그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 이후 <컵스> 팬들은 포스트시즌에서 3루 방향의 파울 공은 서로 잡지 않으려는 기이한 현상까지도 벌어졌다.
파란색 < 컵스> 모자와 헤드셋 그리고 초록색 넥워머, 바트만의 패션은 전국적인 인기를 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도 쏟아졌지만 바트만은 너무나 미안하다는 공식 사과를 남기고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거부한 채 조용히 은둔했다. 바트만 역시 그때의 트라우마가 오랜 기간 계속되었을 것이다. 사실 바트만은 파울 공을 잡기 위해 팔을 내민 무수히 많은 관중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진짜 바트만의 방해로 파울 공을 놓쳤느냐는 논란은 차치하고 그 파울 타구 하나 때문에 <컵스>가 진 것은 분명 아니다. <컵스>가 패배한 것은 베이커 감독의 투수 교체 실패, 또 무엇보다 병살성 타구를 놓친 알렉스 곤잘레스의 결정적인 실책과 구원 등판한 불펜진의 부진 탓이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던 <컵스> 팬들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결국 그 제물은 ‘스티브 바트만’이었다.
그날, 스티브 바트만이 앉았던 자리. 지금은 리글리 필드의 가장 인기있는 명소가 되었다.
머피의 환생
2015년은 온 메이저리그 팬의 관심이 <시카고 컵스>를 향해 있었다. 지난 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영화 <백투더퓨쳐 2>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왔을 때,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면서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해가 2015년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백투더퓨쳐 2>의 예언이 맞을지, <컵스> 팬들 뿐 만 아니라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후인 2015년으로 간 마티와 브라운 박사는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지켜보며 깜짝 놀란다. (영화 '백투더퓨쳐 2')
일단 전력은 이 예언이 실현될 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존 레스터와 제이크 아리예타의 원투펀치가 정규리그 때부터 불을 품었고, 지구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와일드카드로 진출하여 디비전시리즈에서 숙명의 라이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꺾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랐기 때문이다.
2015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만난 <시카고 컵스>와 <뉴욕 메츠>
<컵스> 팬들이 더욱 기대한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지긋지긋한 86년간의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낸 메이저리그 공식 퇴마사 ‘테오 엡스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엡스타인은 ‘염소의 저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간절한 <컵스>의 부름에 사장으로 부임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선수단 정비 작업을 시작했고 2015년, 마침내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찬스를 잡았기 때문에 <컵스> 팬들의 기대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으로서 86년간의 '밤비노의 저주'를 끊어 낸 테오 엡스타인. '염소의 저주'를 끊어 내기 위해 <시카고 컵스>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의 상대인 <뉴욕 메츠>도 만만치 않았다. 1986년 이후 29년 동안이나 우승이 없는 <메츠> 역시 <컵스> 보다는 못해도 우승에 목말라 있었고, 맷 하비-신더가드-디그롬으로 이어지는 선발 3인방이 막강했기 때문에 쉽게 승부를 점칠 수 없었다.
'염소의 저주'를 이어가기 바라는 <뉴욕 메츠> 팬들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리라는 전망 속에 시작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메츠> 팬들을 제외한 온 메이저리그 팬들의 응원을 받은 <컵스>는 <메츠>에게 힘 한번 못 써보고 시리즈 전적 4패, 완패를 당했다. <컵스> 팬들은 실망을 넘어 다시 한번 ‘염소의 저주’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1차전부터 4차전까지 4경기 연속 홈런을 쳤고, 디비전 시리즈를 포함하면 5경기 연속 홈런에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홈런(6홈런)을 기록하며 <컵스>를 패배로 몰아넣은 이 선수때문이었다.
이 선수의 이름은 바로 대니얼 ‘머피’. 70년 전 저주의 주인공이었던 염소 '머피'의 완벽한 환생이었다.
챔피언십시리즈 4게임 연속 홈런, 포스트시즌 5게임 연속 홈런,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6개)을 치면서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를 이어가게 만든 대니얼 '머피'
마침내 ‘염소의 저주’가 풀리다
대니얼 ‘머피’의 대활약으로 다시 한번 좌절을 맛본 <시카고 컵스>는 그 다음해에도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한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는데, 월드시리즈 상대는 역시 ‘와후추장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재는 가디언즈로 팀 이름을 바꾼 상태)>였다. 2004년과 2005년에 연달아 ‘밤비노의 저주’와 ‘블랙삭스의 저주’가 풀리고 난 뒤 메이저리그에 남은 2개의 저주 중에 하나는 무조건 풀리게 될 ‘저주’ 월드시리즈였다.
2016년 <시카고 컵스> vs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월드시리즈는 107년과 67년, 합계 174년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우승하지 못한 팀들끼리의 대결이었다.
<인디언스>에게 1승 3패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던 <컵스>는 극적인 2연승으로 3승 3패 균형을 맞춘 뒤 운명의 7차전에 돌입했다. 오늘 경기로 하나의 저주는 무조건 풀리게 되는 상황. 8회 말 투아웃까지 2점을 앞서던 <컵스>. 드디어 ‘염소의 저주’가 먼저 풀리는가 싶었는데 믿었던 마무리 투수 채프먼이 라자이 데이비스에게 기적 같은 동점 2점 홈런을 맞으면서 분위기는 ‘와후추장의 저주’가 풀리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컵스>는 마침내 연장 접전 끝에 8-7로 승리, ‘염소의 저주’를 풀어낸다. 순종 2년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108년을 이어 온 ‘염소의 저주’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마침내 <시카고 컵스>가 우승을 차지한 다음날 조간신문을 보고 기뻐하는 <컵스>팬(당시 108세). 며칠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접전 끝에 월드시리즈에서 석패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와후추장의 저주’를 풀지 못하고 팀 이름을 <가디언즈>로 바꾼다. 결국 ‘와후추장의 저주’는 영원히 풀리지 않은 채,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리글리 필드의 과거와 현재. <시카고 컵스>가 다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10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염소의 저주’를 풀어낸 <컵스>는 2003년, 한 순간의 실수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스티브 바트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에 그를 초청해야 한다거나 다음 시즌 첫 경기 시구자로 그를 초청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는데, 바트만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마녀 사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시카고를 떠나지 않았고 <컵스>의 우승을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컵스>구단이 준비한, 바트만의 이름이 새겨진 우승반지
2017년 7월 31일, <시카고 컵스> 구단은 각고의 노력 끝에 스티브 바트만을 리글리 필드로 초대하여 "바트만이 10년 이상 감내한 마음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다 씻을 수 없겠지만, <컵스>가 바트만을 소중한 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그의 이름이 새겨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선물했다. ‘염소의 저주’가 풀리면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108년 동안이나 시카고를 지배했던 저주는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염소의 저주'의 당사자인 빌리가 1934년에 문을 연 햄버거집 '빌리 고트 태번'. 당시에도 맛집이었는데, <컵스>의 우승 이후 시카고의 최고 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