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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Oct 11. 2024

1225 걸음과 285 계단의 출근길

10월 11일 출근길

  초가을이 완연하다. 기온은 14도씨 내외로 선선한 아침이 계속되고 있다. 가을은 버스 정거장 뒤편의 마을공원에서 나타났다. 대왕참나무의 잎사귀가 불그스름하게 변했고, 메타세쿼이아의 가지 잎들은 누르스름하게 바뀌었다. 공원 전체의 색감은 원색을 잃고 탈색되어 보였다.


  집을 나와 버스 정거장까지 345 걸음을 걸었다. 돌곶이역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는 65 걸음을 걸어 지하철 출입구에 도착했다. 출입구에서 계단을 2개 오르고 73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이 73개나 된다!'

  19개의 계단과 18개의 계단을 내려간 후 11 걸음을 걷고 45도 왼쪽으로 꺾은 후 다시 18개의 계단 두 묶음을 내려간다. 깊게 깊게 내려갔다. 개찰구까지 99 걸음을 걷고 개찰구를 지나 1-3번 열차 출입구까지 104 걸음을 걸었다. 그 사이에 29개의 계단도 있었다.

  열차를 탔다. 정거장을 지나며 사람들이 늘어났다. 승객들의 복장에 가을 느낌은 없다. 서늘해진 날씨에 옷을 한 겹 더 껴입었을 뿐이다. 남자들은 대부분 점퍼를 입었다. 점퍼의 종류는 모양이나 색깔이 다양한데 밝은 색이나 아니면 아예 진한 홑겹 점퍼였다. 다음으로 양복 재킷을 많이 입었고 나머지는 맨투맨 셔츠나 면, 니트 소재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점퍼나 셔츠, 카디건을 비슷비슷하게 입었다. 가을의 맛은 트렌치코트라는 데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은 여성 한 명뿐이었다. 여성과 남성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세어보니 열에 여섯은 남자였다.


  신당역에서 내렸다. 51 걸음을 걷고 32 계단을 오르고 다시 51 걸음을 걸은 후 53 계단을 올랐다. 53 계단은 14개의 계단과 3개의 계단참, 13개씩 세 묶음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헉 헉…’

  살짝 숨이 차오른다.

  무빙워크 옆으로 205 걸음을 걸은 후 30개의 계단을 내려가고 81 걸음을 걸어 2호선 8-3번 출입구에 도착했다. 2호선으로 갈아탄 후 승객들을 살펴보았다. 복장은 비슷했고 남자와 여자 비율은 이번에는 5 대 5로 같았다. 10 퍼센트의 많고 적음은 적지 않은 차이다.

  '호선별로 다른 건가…?'

  모를 일이다. 다만, 이제는 출근길 남녀 숫자가 동수여야 하는 세상일 것이다. 잠실역에서는 224 걸음과 66 계단을 움직여서 출근 노정을 끝냈다.


  반복해서 걷기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장 많이 걸은 경우는 집을 나와 사거리까지의 246 걸음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신당역에서 갈아탈 때의 205 걸음이었다. 205 걸음을 걷는 곳은 약 140 미터 길이의 곧은 지하터널이다. 화강석 바닥은 습기에 절여진 듯 거뭇하고, 금속성에 유광 페인트가 칠해진 벽체는 눅진한 느낌이다. 어둡고 차가운 사각의 곧은 터널은 그 끝에 소실점을 만들고 그 소실점으로 인해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졌었다.

  가장 깊은 내려감은 돌곶이역에서 내려가고 내려가는 104개 계단이었다. 가장 높게 올라가는 경우는 신당역에서 오르고 오르는 87개 계단이었다. 계단 한 개의 높이를 18 센티미터로 보면 약 16 미터, 아파트로 치면 6개 층을 오르는 셈이다. 숨이 차오를만하다.


  '1225 걸음이면 얼마나 걸은 걸까?'

  문득 내 보폭이 궁금해졌다. 30센티나 60 센티로 규격화된 바닥 패턴을 이용하여 출근길 내 보폭을 추정해 보았다.

  '672 밀리미터…’

  오늘 나는 1225 걸음으로 872 미터를 걸었고, 계단까지 포함하면 1 킬로미터를 걸었다.


  인생을 여정에 비유하고 걸음걸이로 말하기도 한다. 키도 알고 몸무게도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나의 한 걸음'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됐다. 물리적인 값이지만 ‘나의 기본값(default)’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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