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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Oct 08. 2024

8분 30초 또는 48분 30초의 기다림

10월 8일 출근길

  버스 정거장에 섰다. ○○○번 버스는 5분 후 도착예정이다. 정거장에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로 청장년의 남녀가 서있었고 학생도 한 명 있었다.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자전거 두 대가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 정거장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거 전용 운동복에 전용 모자와 선글라스를 썼다.

  '웬 자전건감…’

  선글라스 안경테 주위로 흰 머리칼이 보였고 검은 얼굴 피부에 주름살의 그림자도 보였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허리를 굽혀 뱃살이 두터워 보였고 상대적으로 허벅지와 다리는 가늘게 보였다. 페달을 굴리며 느릿느릿 핸들을 꺾어가며 사람들을 피해 지나갔다. 

  자전거를 따라 오른편으로 눈길을 옮겨가니 길 건너 여러 층으로 겹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허리춤 아래로 그늘이 지고 위로는 햇빛을 반사하며 지상을 파스텔톤으로 바꾸었다. 그늘로 인해 수평으로 반반 나뉜 건물들은 자기 위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었다.


  정거장으로 사람들 몇몇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쪽에 내가 지나온 사거리는 벌써 한 차례 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길 건너에도 방금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이며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전봇대 곁에는 짙은 청색의 운동복을 입은 초등학생 두 명이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로 아이들의 복장이 바뀐 것이다. 

  한 아이가 나타나 무리에 섞이고 오른쪽으로 좀 더 멀리 같은 복장의 아이가 엄마와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등가방을 메고 엄마는 한 손에 도시락 가방과 가방 하나를 더 들고 다른 한 손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반사 빛이 후광으로 엄마와 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이쪽 보도로 눈길을 돌리니 나이 있어 보이는 남자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회색 토퍼를 입고 운동화 차림으로 정거장을 지나치고 있었다. 굳은 얼굴이지만 뭔가 목적의식이 보이는 눈매와 움직임이었다. 몸을 돌려 뒤편의 마을 공원을 쳐다보니 산책길을 걷는 사람, 공원 안쪽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는, 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

  '출근 아닌 아침을 맞는 사람들인 거네…’

  이들은 출근시간 와중에 부산함을 떨며 자신들의 위상을 뽐내는 느낌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고 승용차들이 사거리에 나타나 이쪽으로 아니면 저쪽으로 지체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신호등이 다시 바뀌고 사람들이 오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 정거장으로 다가왔다. 5분의 기다림 끝에 신호가 다시 바뀌며 ○○○번 버스가 왔다.


  돌곶이역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나를 포함해서 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지하철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3-4번 출입구부터 내가 늘 서는 1-3번 출입구로 걸어갔다. 출입구마다 두 명 내지 네 명이 서있었다. 1-3번 출입구에는 여섯 명이 그 앞쪽 출입구 쪽에는 예닐곱 명씩 서있었다. 뒤쪽 줄의자에는 한두 명씩 앉아 있고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가까이 앉아 열차가 오기만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1-3번 출입구 앞에 섰는데 곧이어 귓가에 안내방송이 들렸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응암순환행, …”

  2분이 채 안 되는 기다림이었다.


  신당역 2호선 쪽으로 움직였다. 2호선 승강장 10-4번 출입구부터 내가 늘 서는 8-3번 출입구까지 걸었다. 출입구마다 두세 명의 사람들이 섰는데 거대한 기둥들로 인해 승강장은 더욱 혼잡스러워 보였다. 8-3번 출입구는 계단이 있는 곳이라서 좁았다. 계단 옆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섰다. 사람들이 서두르며 내 앞을 지나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맨투맨을 입은 흔한 남자, 노란색 머리칼의 한눈에 튀는 여자, 정장 차림인데 어울리지 않는 중년 남자, 서둘러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은 남자, 반팔 폴로티를 고집하는 남자, 모직 카디건을 걸친 볼륨 있는 여자, 등산복 상의에 묵직한 등가방을 멘 여자, 파마머리에 둥근 몸매를 한 중년 여자. 이들은 모두 출근 중일 것이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기다림은 1분 30초쯤 되었다.


  잠실역을 나오니 시간은 8시 23분이었다. 출근길 58분 중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린 시간은 8분 30초였다. 걷는 시간을 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개략 40분이 된다. 

  서있거나 앉은 상태로 이동되는 시간, 40분.

  '이 시간도 어떤 다른 종류의 '기다림'의 시간은 아닐까?'


  짧든 길든, 싫건 좋건, 밋밋하든 흥분하든 출근길에도 ‘기다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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