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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재 Oct 15. 2024

때로는 낯설고 다정하며 불안하게

10월 15일 출근길

  젊은 부부가 몸을 서로 가까이하고 서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 아니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감출 수 없는 미소. 남자에게 고정된 눈빛. 여자는 남자를 분명히 사랑하고 있다. 

  검은 카디건에 짧고 짙은 체크 치마를 입고 아이보리색 플랫 슈즈를 신었다. 제법 큰 키에 등허리까지 내려온 긴 머리까지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세상에 보이려고. 남자는 브라운색 짧은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종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계속 쳐다본다. 둘은 한쪽 어깨를 붙이고 서로 팔을 끼고 둘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번 버스가 왔다. 그들은 두 번째 이인 좌석에 앉았다. 여자는 거의 90도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 그렇게 정거장을 지나갔다. 하차는 여자만 했다.

  여자는 지하철 출입구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뒤쪽에서 출발한 버스는 여자의 옆으로 형체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여자가 흘끔흘끔 버스를 쳐다보더니 주목했다. 남자가 어떻게 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좀 더 나아가다가 신호등에 걸려 정차했다. 여자는 버스를 또 쳐다봤다. 이번에는 창문 너머 버스 안에서 남자가 손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유리창의 아롱거림 속 남자의 얼굴은 희었고 작았고 미소를 보인 듯도 했다.

  '한쪽만은 아닌 것 같네…!'

  여자는 손바닥만 한 핸드백을 옆구리에 메고 종이가방을 한 손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 남자의 시선을 뒤로한 채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내가 지나온 뒷모습이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다. 계단과 벽과 사각으로 갇힌 하늘만 보였다. 내가 늘 내려오기만 하던 지하철 2번 출입구. 낯설었다. 비슷한 장면이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신당역에 도착해 계단을 올라갔다. 오른쪽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왼쪽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줄지어 이동하고 그 줄을 지나치려고 헤쳐가며 걸어갔다. 계단으로 다가가며 한 번 더 되돌아보았다. 9시간 후 이곳을 지나가는 나의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내 뒷모습은…'

  왕복할 수 있는 이곳 환승통로에서 낯선 것은 나의 뒷모습뿐이었다.


  2호선 신당역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내 앞으로 남녀가 보였다. 이들은 앞의 연인보다 더 어렸고 서로 더 밀착하고 있었다. 30센티가 채 되지 않게 얼굴을 마주 보고 섰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피부의 윤기는 없었고 키는 170 센티가 안 되어 보였다. 남자는 검은 인조가죽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나**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검은색의 큼직하고 자연스러운 크로스백을 멨다. 영락없는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여자는 회색 코트에 청바지를 입었다. 가볍게 컬진 파마머리는 길었고 검은색 정장구두를 신고 있었다. 남자보다 한 뼘은 작은 키였다.

  '키도 그렇고 서로 어울리네…'

  남녀의 높고 낮음이 서로 어울렸다.


  정거장을 두세 개 지나며 그들의 대화는 끊겼고 이제 서로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한양대역에서 그들은 착석했다. 남자가 미소 짓는 것이 한 번 보였고 이내 각자 휴대전화를 봤다. 잠시 후 다시 보니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잠실역에 거의 다가갔을 무렵 다시 보니 여자는 없고 남자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헤어짐이 궁금했다. 여자의 눈빛은 어떠했을 까. 남자는 여자의 뒷모습을 어떤 표정으로 보았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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