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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n 27. 2024

전쟁의 서막

결혼하고 처음 있는 몸싸움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만나면서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때가 있었던가? 


핸드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날 밀쳐내는 그 사람의 눈빛은 내가 알던 그이가 아니었다. 결국 힘에서 밀려 뺏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아려 오는 팔을 살펴보니, 내 팔 곳곳이 벌겋고 손톱자국에 피가 올라온다.

 

"안 보여주면 이걸로 이혼이야."

서러움과 화남이 동시에 밀려왔고 결국 내 입에서 그 말이 내뱉어졌다.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헤어져본 적 없던 우리였기에 이혼이라는 단어는 그이에게도 충격이었나 보다. 급하게 메시지 전체를 지운 손길로 나에게 핸드폰을 건넨다. 평소에 쓰지 않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메신저. 친구목록에 있던 단 한 사람. 내용을 읽어보지 않아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전에 만나던 여자친구인데 그냥 잘 사나 안부정도 물은 거야. 정말 별 얘기 안 했어. 근데 자기가 기분 나빠할까 봐 지운 것뿐이야. 날 믿어줘. 제발. 이혼이라니..."

그것도 뚫린 입이라고 내뱉어지는 변명을 듣고 있노라니 역겨운 기분마저 들었다.

 

아무 말 없는 내게 또다시 설명을 해온다. 삐이-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이 목소리가 멀어진다. 조명 없는 깊은 터널에 아득하게 들어와 있는 것처럼 내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이 보이지도,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는 몸과는 달리 심장은 막 달리기를 끝낸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목이 죄어온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정신이 들었을 땐 나는 누워있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날 흔들고 있는 당신이 눈에 들어왔다. 화낼 힘도 따져 물을 의욕도 없었다.

 

나의 공황과 과호흡은 그날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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