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회현역에 도착했다. 문이 닫힐 때쯤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면서 당황하신 듯 "나 여기 내려야 돼요?" 하신다. 어디 가시냐고 묻기도 전에 할머니는 지하철 문밖으로 사라지셨다.
비 오는 날이었다. 우산을 펴지 못한 채 택시 문을 열고 나오는 아주머니에게 우산을 씌어 주었다. 아주머니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여기가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지하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어느 외국인이 "투원"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여러 번의 반복에도 여전히 투원이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기는 "원투"(12)라고 했더니 급기야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다. 수원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실패 없이 넉넉히 살아지는 곳,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런 곳으로 만들려면 과도한 정의감과 회초리로 무장한 사람들보다는 선한 영혼의 광합성으로 향기로운 양분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