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이야기

by 정민쓰







전 겨울이 좋아요.





전 요즘 어른들이 오시기 전에 잠깐 건물 밖으로 몰래 나가곤 합니다. 쌓여있는 눈을 손으로 한가득 퍼서 하늘로 뿌리면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겨울엔 선생님도 원장님도 날씨가 추워서인지 일찍 오지 않으세요. 그래서 아침은 제가 눈을 만지고 놀 수 있는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에요.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작년 겨울엔 눈을 가지고 놀다가 복도에 신발자국을 남기는 바람에 원장님에게 심하게 매를 맞았어요. 그래서 이제 저는 눈놀이를 하고 나면 복도에 들어가기 전 외투를 벗어 바닥에 깔고 신발밑창을 외투에 빡빡 문질러 닦습니다. 원래 흰색이었던 외투는 거의 검은색이 되었지만, 이렇게 된 지는 이미 오래되어서 딱히 더러워진 티가 나지는 않는답니다.




위층의 언니오빠들은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언니오빠들은 한동안 아예 보이지도 않았지만요.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예전처럼 아침 일찍 창 밖으로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방 창문에서는 이곳의 정문이 보입니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높은 벽돌담이 끝나는 지점에는 '보육원'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달려있는데, 이곳이 정문이에요. 전 언니오빠들이 정문을 나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곤 해요. 종종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등교하는 언니오빠들과 눈을 마주치곤 하지만 실제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어요.











방안에 들어와서 다시 침대에 몸을 묻고 꾸꾸를 껴안은 채 언 몸을 녹이고 있으면, 창 밖에 주방이모가 정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게 보여요. 오늘은 좀 일찍 오셨네요. 주방이모는 어김없이 담배를 물고 마당에 침을 뱉었어요. 주방이모는 원래도 일찍 오시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엔 날이 추워 원장님이 자주 안 오셔서 그런지 점점 주방이모가 출근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겨울은 아침을 못 먹은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요즘 들어선 점심도 잘 못 먹었습니다. 주방이모는 식사를 만들면서도 이따금씩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혼자 분을 못 이기듯 주방도구를 던지거나 욕지거리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끼니를 조금 굶더라도 주방이모와 많이 안 마주치는 게 차라리 나아요.




아! 그리고 꾸꾸는요, 제 유일한 친구예요. 눈나라에 사는 이쁜 공주님이에요. 2년 전인가 어떤 분이 커다란 소포에 수많은 과자와 인형들을 보내주신 적이 있거든요. '후원'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안에 들어있던 것 들은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다 가져가긴 했지만 맨 밑에 있던 곰인형은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거든요. 너무 탐이 났는데 마침 근처에 구경하고 있던 저한테 원장님이 곰인형을 던져주셨어요! 전 너무 행복했답니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전 언젠가 꾸꾸가 살던 나라에 가서 평생 함께 놀고 싶어요. 매일 꾸꾸에게 속삭이지만 꾸꾸는 언제나 도저히 속내를 알기 힘든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죠. 곰인형이니까요.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르는 척해야 해요. 안 그러면 눈물이 나거든요.












원래 이곳은 여러 아이들이 한 방에 모여있었나 봐요. 지지난달에 주방 쪽에서 주방이모와 원장님이 대화를 하는 것을 엿들었거든요. 주방에서는 펄펄 끓고 있는 카레냄새와 독한 담배냄새가 동시에 퍼져 나오고 있었어요. 두 분은 언니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애들을 모아놓으면 지난번에 언니오빠들처럼 작당모의를 할 거라고 했어요. 무슨 이야기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저녁 식사시간에만 다른 방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라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다들 생기 없는 눈을 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저도 쉽게 말을 걸진 못하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방 가운데에 있는 식사테이블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주방이모가 무서웠어요. 다른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면 어김없이 저를 때릴 테니까요.




원장님은 주방이모를 설득하는 듯 보였어요. 그 무서운 원장님도 주방이모 앞에서는 꽤 친절하게 말하곤 했어요. 주방이모는 항상 무언가 불안하고 갑자기 욱하며 감정을 주체 못 하곤 했으니까요. 아마 원장님도 주방이모에게만큼은 조심스러웠을 거예요. 원장님은 지원금을 위한 것이니 매일 이곳에 오는 게 귀찮아도 애들 밥 정도는 대충 차리라고 주방이모를 달래는 말투로 말하고 있었어요. 2층을 폐쇄했으니 그래도 애들이 많던 예전보단 수월하지 않냐면서요.


주방이모는 이제 직원들도 다 그만둔 마당에 이게 의미가 있냐고 계속 투덜댔습니다. 게다가 한겨울에 변변한 옷가지도 안 걸치고 떼거지로 도망간 2층 아이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나요.





두 어른의 대화는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분명 언니오빠들이 매일 아침마다 등교하는걸 제가 보는걸요.





그러고 보니 2층의 언니오빠들은 왜 식사하러 내려오지 않을까요?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의 문은 왜 늘 잠겨있을까요? 그런데도 언니오빠들은 어떻게 매일 내려와서 등교를 할까요? 그리고 전 왜 언니오빠들이 하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을까요?












이번 겨울은 많이 배고프지만 전 차라리 어른들이 이곳에 관심을 끄고 있는 게 더 좋았어요. 맞을 일도 없고 눈놀이도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전 한동안 좀 더 과감히 용기를 내어 꾸꾸를 안고 밖을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 두 번째로 눈이 내린 즈음부터 정문밖에 있는 수풀에서 누군가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아저씨였어요. 저를 노려보는 시선은 왜인지 모르게 섬뜩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섬뜩한 위화감은 그 아저씨가 무표정인채로 절대 눈을 깜빡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흰자가 없는 눈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문 밖에 서서 마당에 서 있는 저를 미동도 없이 바라보는 그 아저씨는 어쩔 때는 보이지 않다가도 문득 정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김없이 그곳에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서 있는 위치가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그 아저씨는 제 방 창문 바깥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게 되었어요. 제가 이 일을 말할 수 있는 어른은 오직 주방이모와 원장님 뿐이었는데 그분들은 이제 이곳에 자주 오지도 않았고, 제가 말해봐야 또 절 때릴게 뻔했습니다. 전 그저 혼자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어요.




야심한 밤이 되자 꾸꾸를 안고 자고 있던 저는 방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에 잠에서 깨었어요. 전 문득 혹시라도 그 아저씨가 아직 밖에 서 있을지 궁금해서 커튼 틈으로 창 밖을 확인했습니다. 이. 마당에 원장님의 자동차가 있었어요. 그리고 건물 안에서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원장님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두웠음에도 전 그 아이가 저녁식사시간에만 보던, 옆옆 방에 있는 아이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인지 손을 잡고 가는 둘의 모습에서 전 처음으로 원장님이 엄마 같다고 느꼈습니다. 원장님은 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차를 몰아 마당을 나갔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자동차불빛이 머물렀던 마당은 자동차가 떠나자 더욱더 어두워 보였습니다. 그나저나 원장님은 어른이라서 언니오빠들과 다르게 밤에 등교를 하는 걸까요?











전 종종 같은 꿈을 꾸곤 해요. 전 새빨간 장갑을 끼고 눈나라에서 눈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눈을 만지던 저에게 곰인형이 나타나 이만 갈 시간이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어요. 꾸꾸였어요. 제가 투덜거리면 꾸꾸는 그저 미안하다고만 말해요. 그렇게 전 잠에서 깨고, 손에 든 꾸꾸를 세게 껴안곤 했습니다. 꾸꾸는 가끔 얄미워요. 한창 재밌었는데.










어느 아침에도 저는 어김없이 창 밖으로 등교하는 언니오빠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했어요. 날이 이렇게 추운데 언니오빠들은 왜 입에서 입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에 정문 근처에 또 그 아저씨가 보였어요. 이윽고 언니오빠들이 아저씨 옆을 지나갔습니다. 언니오빠들은 처음 보는 행동을 했어요. 평소처럼 아무 말도, 표정도 없이 걸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그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는 거예요. 고개만 돌려 아저씨에게 눈을 고정한 채 걸어가는 언니오빠들의 모습이 기묘했어요.





그날 저녁에는 오랜만에 원장님이 저희를 보러 오셨어요. 처음 보는 자동차를 타고 오셔서 저는 순간 다른 손님이 오신 줄 알았답니다. 원장님은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예쁘고 고급스러운 봉투들을 가득 가지고 오셨습니다. 원장님과 주방이모가 저희와 함께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어요. 두 명의 어른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데도 같이 밥을 먹는 테이블은 휑 했습니다. 저녁시간에 모이는 아이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저를 포함해도 세명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밥을 먹는 척하며 곁눈질로 어른들 쪽을 보았어요. 주방이모가 옷들을 꺼내며 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 가득한 예쁜 외투였어요. 너무 예뻐 보였어요. 어른이 되면 저런 옷을 입을 수 있는 걸까요? 너무 부러웠어요.





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고 싶었어요. 원장님과 주방이모가 하는 대화는 정말 어른들의 대화 같아서 괜히 엿듣고 있으면 저도 어른이 된 기분이었거든요. 저는 꾸꾸를 안고 담배냄새가 풍겨오는 주방 문 바로 옆에 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른들의 말투는 들뜨고 신난 듯했지만, 무언가 불길했습니다. 원장님은 애물단지 같던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애물단지가 무슨 말일까요? 무언가 심상치 않았어요. 지긋지긋한 보육원도 이제 끝이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배가 너무 고파요. 전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이제 아침에 언니오빠들이 등교하는 것을 보고 나면 이 큰 건물에는 저 밖에 없습니다. 이제 저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주방이모는 어제 아예 오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부터 예쁜 옷을 많이 입고 오시더니 그 이후부터 식사를 만들어주는 일이 더욱 뜸해졌습니다. 건물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요. 고요함을 타고 추위는 더욱 매섭게 제 방을 덮쳤어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 이불속에서 필사적으로 꾸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하루빨리 눈나라에 데려다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어요. 꾸꾸는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꾸꾸의 플라스틱 눈은 물기조차 없었습니다. 제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요.





꾸꾸가 너무 미웠습니다. 하지만 꾸꾸를 미워해서는 안 됐습니다. 유일한 친구니까요. 꾸꾸를 껴안고 한참 울고 나니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전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건물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던 이유는 어른들이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에 어른들이 없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전 굶거나 얼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어느새 전 꾸꾸를 안고 어두운 1층 복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있었던 방들은 제 방과 똑같았어요. 하나같이 텅 빈 방 한구석에 꼬질꼬질한 여름옷 상의하의가 개어져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옷들을 보며 그간 식사시간의 기억들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옷차림을 떠올려보니 각 방이 어떤 아이들의 방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 전 방마다 놓인 아이들의 여름 옷가지들을 주워 겹겹이 껴 입었어요. 아이들은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방으로 갔습니다.




깜깜한 주방 불을 켜자 중앙의 식사테이블에 담배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기름이 살짝 번진 지역신문도 보였어요. 전 글자를 조금 읽을 줄 알아요. 신문에는 마을사진과 어지러운 전화번호들이 많이 쓰여 있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사진도 있었어요. 신문 귀퉁이에 기사를 보니 마을에 범죄가 횡행한다고 합니다. 미심쩍은 사람들이 목격되어 주의하라는 내용이 쓰여있었어요. 솔직히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신문을 읽으니까 어른이 된 기분이 들어 괜히 신났어요. 문득 이 건물이 다 제 것이라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와 함께 오래되어 흐물거리는 채소들이 보였습니다. 전 채소들을 허겁지겁 입에 넣고 씹었어요.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어요. 너무 배가 고팠으니까요. 냉장고 앞에 앉아 게걸스럽게 채소를 먹고 있을 때, 전 미세한 진동을 느꼈고 뒤이어 미세한 자동차 소음을 들었습니다. 전 주방 문으로 달려가 복도에 얼굴을 빼꼼 내밀어 정문 밖을 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자동차에서 주방이모가 내려 건물로 급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주방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게 분명했습니다. 그나저나 주방이모는 차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새로 산 것 같네요. 왠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 주방이모의 얼굴은 등 뒤에서 비치는 자동차의 불빛으로 보이진 않았어요. 하지만 위협적인 걸음걸이와 모습은 부드러운 털외투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전 지금 제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숨을 곳을 찾아야 했어요. 주방은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다른 방에 숨으려면 복도로 나가야 했습니다. 복도로 나가면 지금 현관에 들어오기 직전인 주방이모의 눈에 띌 수밖에 없을게 분명했습니다. 어느 곳도 도망갈 곳이 없었어요. 마음이 급해진 저는 복도로 내달리면서 꾸꾸를 바닥에 떨어트렸습니다. 꾸꾸를 집어 들려고 허리를 숙이자, 저는 주방이모가 큰소리로 저를 부르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 위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계단 위에서 언니오빠들이 제게 애타게 손짓하는 모습이었습니다.




2층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올라와 본 2층은 싸늘하고 먼지가 가득했습니다. 언니오빠들은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던 거겠죠. 바로 밑에서 주방이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2층에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열린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더러운 매트리스가 올려진 낡은 침대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텅 빈 방이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고 꾸꾸와 함께 침대 밑에 기어들어갔습니다. 언니오빠들이 걱정되었어요. 정신이 없는 통에 올라오면서는 깨닫지 못했지만 2층에 올라옴과 동시에 언니오빠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꾸꾸와 침대 밑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저는 층계를 통해 주방이모가 올라오고 있는 바닥 진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침대 밑에서 문 쪽을 주시하며 침대 안쪽으로 더욱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무언가에 막혀 침대 안에 더욱 깊이 숨어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침대 밑에는 저 말고도 이미 한 명이 더 있었거든요.












저는 몸이 굳어 그대로 엎드려 있었을 뿐입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 고개를 침대 안쪽으로 돌리자 안쪽에 누워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검은 안광은 분명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저를 먼 곳에서 지켜보던 그 아저씨였습니다. 침대 밑, 제가 방문 쪽인 바깥에 누워있었기에, 제 뒤에 먼저 들어가 있던 아저씨는 저를 보자 침대의 위쪽으로 기어 나갔어요.





전 분명 방문을 닫고 숨었었지만, 낡은 방문은 고장이라도 난 듯 천천히 움직여 반절 정도가 다시 열려있었어요. 까만 눈의 아저씨는 살짝 열려있는 문 앞으로 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모든 움직임은 너무나도 군더더기가 없었고 사람의 움직임이라면 자연스레 생기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어 아주 기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표정도 전혀 변화가 없었어요.





계단을 올라오는 주방이모의 발소리는 층계 중간에 멈추고, 이윽고 강하게 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상했어요. 분명히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은 열려있었는데 누가 다시 잠가 놓은 걸까요? 이성을 잃은 듯 한차례 주방이모의 괴성이 들리더니 불길하게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규칙적으로 큰소리가 반복될 때마다 제 가슴도 강하게 뛰었습니다.




몇 번의 타격음 이후, 큰 소리를 내며 문이 깨지듯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문 틈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주방이모의 정수리가 보였습니다. 주방이모는 잔뜩 약이 오른 듯 욕지거리를 하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어요. 죽여버리겠다는 온갖 저주의 말과 함께요.




손에는 주방 식기함에 꽂혀있던 식칼이 들려있었어요.











2층에 올라온 주방이모가 옆 방문을 차례대로 세게 열어보며 점점 이 쪽으로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이상한 아저씨는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저씨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안고 있던 꾸꾸를 절 마주 보도록 눈앞에 들고 흔들며 필사적으로 속삭였습니다.







- 알려줘. 난 어떻게 해야 해? 제발 말해줘.





꾸꾸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주방이모의 괴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주방이모는 저를 죽여버리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 제발 말해줘. 너무 무서워.





다른 방의 방문을 거세게 발로 차는 듯한 소리에 저는 몸을 움찔했습니다.

전 꾸꾸에게 얼굴을 묻었습니다. 무서워서 손발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습니다.








꾸꾸가 처음으로 제게 대답했습니다.



- 지금. 도망쳐.










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꾸꾸를 껴안고 아저씨의 앞을 지나쳐 방을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다다르자마자 마침 조금 떨어진 방 안에서 나오고 있던 주방이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진하고 기괴한 화장을 한 주방이모는 두툼한 털 옷을 입고 있었기에 위험한 맹수 같아 보였어요. 주방이모는 무서운 표정으로 괴성과 함께 칼을 휘두르며 제게 달려왔습니다. 쇠붙이가 공기를 마구잡이로 헤집는 소리는 칼날만큼 날카롭고 서늘했어요.



전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렸어요.






몇 초만에 주방이모의 숨결에 섞인 담배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그때, 꾸꾸를 껴안고 움츠러든 제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습니다.










주방이모는 겁에 질린 것 같았습니다. 주방이모의 비명만큼이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식칼에도 당황스러움이 실려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방이모는 이 아저씨를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주방이모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앞을 막아선 채 가만히 서 있는 아저씨의 왼쪽어깨 부근을 마구 찔러댔습니다.




아저씨는 이상한 움직임으로 나무토막처럼, 무너지듯 쓰러졌어요. 정말 이상한 움직임이었어요. 왠지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달까요. 그리고 흥분하여 움직임이 커진 주방이모는 칼을 휘두르던 동작 그대로 쓰러진 아저씨에게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주방이모의 상체가 제 눈앞을 가득 채우며, 그대로 저는 주방이모에게 덮쳐지며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언가 따끔한 느낌과 함께 주방이모와 한 몸처럼 뒤엉키며 계단을 굴러 1층 복도까지 굴러 떨어졌습니다.











엎어진 제 가슴팍에 꾸꾸가 폭신하게 깔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시선 바로 앞에 목이 꺾인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주방이모가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주방이모는 입에 피거품을 물고 이따금씩 경련하듯 몸이 움찔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꾸꾸를 안고 벽을 짚어 힘겹게 일어났습니다. 복도 끝에 눈이 한가득 쌓여있는 건물 밖의 모습이 건물 입구의 모양대로 하얀 직사각형처럼 보였습니다. 이상했습니다. 며칠간은 눈이 안 내렸는데.





저는 꾸꾸를 안고 건물 밖을 향해 아주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찬 공기가 점점 강하게 느껴질수록 제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점점 몸이 말을 듣지 않았거든요. 이윽고 겨우 건물 밖으로 나와 몇 걸음을 걷던 저는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아 차디찬 눈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쓰러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제야 옆구리 부근이 너무나도 아프기 시작했어요. 옆구리에 손을 대어본 저는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며 손을 바로 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옆구리에 대었던 제 손은 마치 빨간 장갑을 낀 것 같이 변했어요.











전 힘겹게 꾸꾸를 안았어요. 눈나라에 데려다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제 저는 말이 나오지 않아 부탁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꾸꾸는 그저 곰인형인걸요. 전부 저의 허무맹랑한 망상인걸요. 절 눈나라에 데려다줄 수 있을 리가 없는 걸요.






근데 주방이모와의 난리통에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었는데요.

제 품에 안겨있는 꾸꾸는 어느새 왼쪽어깨잔뜩 찢어져, 때가 묻은 솜이 잔뜩 삐져나와있었어요.




.

.

.




아.


꾸꾸에게 사과해야겠네요.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고 누워있는 제 몸은 처음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지만, 지금은 조금씩 떨림이 잦아들고 있습니다. 아픔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요. 너무 졸립니다. 정말 너무 졸려요. 배도 고파요.




아저씨가 어느새 누워있는 제 옆에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어요. 그동안엔 플라스틱 같던 아저씨의 검은 눈이 촉촉해졌네요. 아저씨가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아저씨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지만요. 그리고 이제 집으로 가자며 손을 내밉니다. 건물 2층 창문안쪽에서 언니오빠들이 저를 쳐다보는 게 보입니다. 전 빨간 장갑을 낀 손을 내밀어 아저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졸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전 꾸꾸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 나도 미안해. 난 그동안 네가 공주님인 줄 알았어 꾸꾸야.





꾸꾸는 드디어 웃었습니다.

이제 눈나라로 함께 가는 거예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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