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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습작소 12화

유전

이야기

by 정민쓰








뜨거운 바람이 불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 어머니가 아침 일찍 출근하시며 쥐어줬던 오천 원. 동네 골목대장 녀석에게 빼앗겼었지.

어린 날의 트라우마란 생각보다 무섭다. 코흘리개적 기억에 몸을 움츠리며 아직도 현금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걸 보면.






도시 외곽지역이었던 우리 동네는 흔히 말하는 베드타운이었다.

밤에는 일에 지친 어른들이 집에서 소소한 안식을 누렸다. 해가 뜨기 무섭게 모든 차가 우르르 빠져나가는 빽빽한 단지 앞 주차장. 그 아스팔트 바닥은 표면을 보호해 주던 자동차가 떠나가자 뜨거운 여름햇살에 자신의 살을 내비쳤다. 아스팔트 바닥에 끓듯이 피어오르던 아지랑이마저도 어린 동네꼬마들은 낭만적인 신기루라 여겼었다. 흐르는 땀방울마저도 어렸던 우리들은 바지 고무줄이 닿는 부위에 난 땀띠를 긁으며 옷가지를 집게와 검지로 잡고 펄럭거렸다. 미약한 부채질로 땀방울이 미세하게 기화하는 냉기조차 행복이었던 건, 아직은 행복의 범위가 관대한 나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낮 시간 동안은 남편이 직장에 출근하고,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나와,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놨다. 나만 빼고.

해가 질때쯤,아이들이 놀이터 어귀에서 흙먼지가 얇게 코팅된 옷들을 꾸짖음의 손길로 어머니께 털리고 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몇 번을 보아도 나한텐 너무나 생경한 장면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나도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머니가 날 데리고 놀이터에 함께 와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잔혹하다. 내재된 유아적인 잔혹함은 어떤 의미에선 어른의 그것보다도 지독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건지, 아니면 유전자적으로 무리 속 개인의 본능이 각인되어 있는건지, 몇몇 덩치 큰 아이들은 무리를 형성하여 서열관계를 어린 사회에 욱여넣었다.

내 오천 원도 그 놈들에게 뺏겼지.

그 무리의 대장 놈은 아직도 기억난다. 퉁퉁한 몸매에 보이스카웃 반바지, 무릎까지 올린 긴 양말, 그리고 무엇보다 돼지 같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높은 목소리.




난 모든 아이들과 잘 어울렸지만, 어머니와 함께 놀이터에 나오지 않았기에 그들과 진정으로 같을 순 없었다.

직접 배우기도 전에 몸으로 체득한 박탈감이란 감정은, 나만 어머니가 놀이터에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이 여러 달 반복되자 누구보다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가 어둑하게 져가고 있는 놀이터에 모두가 어머니와 집으로 귀가하고 나만 남았을 때, 그 골목대장 놈이 빼앗아 갔던 오천 원은 분명 나에게 있어 어머니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느낌에 그날 밤 집에서 퇴근한 어머니를 봤을 때 유독 강하게 끌어안았던 것 같다.








그날의 바람은 조금 덜 뜨거웠었다.

그때 즈음엔 아이들과 노는 내 눈빛은 순수함과 뒤섞인 열등감으로 평소보단 조금 날카로웠을 것 같다. 그날의 용돈은 내 속옷의 고무줄밴드 사이에 끼워놨었다. 내게 세상 전부인 어머니와 연결고리를 혹여나 뺏기지 않도록.




그날은 특별했다.

없다고 믿어왔던 아버지를 만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정한 손길과 눈빛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분명 아버지였다. 골목대장 패거리가 등장할 시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정히 다가온 아버지가 소홀해서 미안했다며 나를 안아줬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는 처음 내가 '박탈감'이란 감정을 느꼈을 때처럼 충격적인 것이었다. 난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속옷밴드에 끼워 놓은 지폐가 바닥에 떨어졌다. 주으려 했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가는 바람에 주울 수가 없었다.




'근데 이렇게 따라가면 어머니가 날 찾으실 텐데'




그날 그렇게 나는 유괴되었다.














나는 아이를 유괴했다.

내 마음속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것, 그리고 나처럼 무언가 결여된 눈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데려와 따뜻하게 보듬어주며 서로의 공백을 위로하는 행위야 말로 유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유괴는 절대 악질적인 범죄가 아니다. 방치된 가엾고 어린 영혼을 위한 구제활동이며 자선사업이다. 다소 과격하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이 모든 걸 이해 못 하는 인간들이야 말로 악질적인 범죄자들이다. 사실상 '유괴'라는 것은 '구조'와 같은 말이니까.



사람들은 으레 어린아이와 관련한 일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게 굴곤 한다. 타인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대하는 것은 엄격하면서 막상 본인이 아이에게 짓고 있는 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누구보다 사랑으로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같이 자식을 만들 애인도, 누군가를 입양할 여력도 있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양은 진정한 의미의 '구조'가 아니다. 난 반드시 눈에서 공허함과 외로움이 비치는 아이를 '구조'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나는 아이의 식사를 차려주었다. 그 아이는 처음 놀이터에서 데려왔을 때,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의 눈이 내 시야에 분명하게 들어온 순간,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빠르게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의 공허함은 나와 닮았다. 이 아이의 눈이 말해주고 있다. 분명히 진정한 의미의 '부모'가 결여된 눈이다. 그리고 내 확신은 정확히 들어맞은 것 같다. 반드시 잘 키워내어 아버지의 자리를 내가 채워줄 것이다.




아버지의 세상은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자신의 사상을 가르치는 법이다. 이 아이에게는 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물려줄 생각이다.






나에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때, 그리고 부모의 방임에 시달리던 때에 생겨난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것이 사랑이라니. 공허의 공간에 어린 나는 순수함 대신 다른 것들을 채워 넣었다. 어딘가 왜곡된 사랑임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가 배운 것이기에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아이의 순수함은 생각보다 강했다. 순수함이란 원초적이고 야수적이다. 공허함과 왜곡된 사랑이 순수함과 섞이면 어린아이는 외부세계에 잔혹함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낳았고 그것은 아직도 나에게 무거운 무게추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그날의 땅거미가 지던 놀이터. 나와 비슷했던 눈빛.







식사를 마친 아이에게 씻으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이전 부모의 때를 벗겨야 했기에. 그 쿰쿰한 냄새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직접 악취를 벗겨내주려 했지만 기특하게도 아이는 혼자 씻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씻으러 간 사이, 나는 아이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꺼냈다. 내가 어린 시절 입고 다니던 보이스카웃 반바지였다. 오랜만에 반바지를 꺼내어들자 그 미약한 바람에 밑에 깔려있던 구겨진 오천 원이 들썩거린다. 그 날 돌려주러 놀이터에 갔었는데. 이 오천원을 어린 시절 그 아이가 아버지 손이 이끌려 사라지는 걸 본 날에 돌려주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난 그때 그 아이가 아버지와 손잡고 사라지는 모습을 먼 곳에서 지켜봤을 뿐이었다. 그 녀석,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씻고 있는 아이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정리하려 수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욕실 앞으로 갔다. 이 불쾌함이 잔뜩 묻은 옷들은 다 태워버려야 한다. 이 아이의 이전 부모의 세상이 잔뜩 묻어있을 테니까.



이 녀석이 벗어놓은 속옷사이에 꼬깃꼬깃한 지폐가 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지폐를 왜 속옷 안에 넣었을까. 숨긴 걸까. 대체 이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가르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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