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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습작소 10화

버려진 이야기들

이야기

by 정민쓰






나는 산세베리아 화분이다.

벌써 여러 해 동안 이 풀을 내 몸에 담고 살고 있다.




내 옆으로는 나와 나란히 열을 맞추고 있는 화분들이 있다. 같은 자리, 같은 자세의 삶이지만 나와 꼭 닮은 화분들과 나란히 서서 햇빛을 쬐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그리고 가끔 바로 앞 커다란 창을 열면 보이는 아담한 정원의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쓰다듬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끔 베란다 창을 열 때 나타나는 시커먼 짐승은 다소 짜증이 난다. 내게 얼굴을 대고 킁킁대는 그놈의 코는 불쾌하기 그지없다.

이 집의 꼬마아이가 가끔 그 짐승을 몰고 오면 언제 내 안에 담긴 산세베리아가 뜯어 먹힐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결국 그 꼬맹이가 그 녀석의 엄마에게 짐승을 데려온 것을 걸려 혼날 때마다 속이 얼마나 안도감이 들고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의 일은 항상 비슷하다.

꼬맹이의 할머니가 몰래 다가와 훌쩍이는 꼬마아이를 달래준다. 때로는 삐걱거리는 낡은 고철바퀴 위에 아이를 태우고 할머니가 뒤에서 밀어주기도 했다. 그 장면은 몇 번을 봐도 나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재밌는 광경이었다.




나에게 물을 주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주로 아까 말 한 할머니가 물을 주지만 아주 가끔 그 꼬맹이의 엄마가 물을 주었다. 난 그중에서 특히 할머니를 좋아했다.




나와 함께 일렬로 서 있는 화분들은 모두 같은 산세베리아 화분이다.

전부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내 안에 담겨 있는 산세베리아만 별나게 잘 자란다.

그리고 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거실창가,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에 내가 놓인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할머니가 나를 유독 아주 사랑해 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죽은 남편과 멀리 출장 간 아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현재의 고독함을 푸념하기도 하며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항상 열심히 그녀의 말에 대답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녀의 관심과 따뜻함이 좋았기 때문에.




기뻐 보이는 날보다 슬퍼 보이는 날이 훨씬 많은 그녀에게, 연로하여 자주 콜록거리는 그녀에게, 난 전혀 힘이 되지 못했다. 난 그저 산세베리아 녀석의 뿌리를 꽉 붙잡고 가끔 예쁜 꽃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내 산세베리아가 가장 예쁜 꽃을 피웠던 건 오직 그녀를 위해서였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보다 꼬맹이의 엄마가 나에게 물을 주는 일이 잦아졌다.

꼬맹이의 엄마도 나에게 물을 주며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할머니와 달리 오직 귀찮음만이 가득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었다. 내 피부가 건조해지고 산세베리아가 말라가던 것이.

더 이상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꼬맹이의 엄마가 나에게 물을 주는 것도 뜸해졌다. 할머니가 없는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화분들과 함께 말라비틀어진 나는 하릴없이 담벼락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시커먼 짐승을 구경하다가 서러워 눈을 감아버렸다. 그저 눈을 감고 다가올 미래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말라비틀어진 산세베리아가 담긴 화분들과 함께 처음 보는 낯설고 거친 흙바닥에 놓여있었다.




아무래도 우린 공터에 버려진 것 같았다. 내 주변에는 나와 함께 줄지어있던 화분들도 다 같이 모여있었다. 집에 있었을 때 종종 날 괴롭히곤 하던 시커먼 짐승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에게 코를 들이민다. 그 녀석 너머로 커다랗고 네모진 까만 덩어리와 집의 꼬마아이가 타고 놀던 바퀴 달린 고철도 보였다.




난 야옹거리며 울어대는 저 까만 짐승이 하는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난 그저 다시 한번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싶다












저는 바이올린 케이스입니다.

요즘 들어 몸이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제 위에 먼지가 가득 쌓여있거든요. 톡 건들기만 해도 먼지가 사방으로 날릴 모습을 상상하니 오히려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는 어두운 구석에서 수십 년을 보냈어요. 한때는 저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법 나이가 많습니다. 아마 제 안에 들어있는 바이올린과 나이는 비슷할 겁니다

만약 이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말이죠.




이 녀석은 수십 년간 저의 친구이자 말동무였습니다.(활 녀석은 말을 안 했거든요.)

아마 이 녀석은 그때 그날에 결국 죽어버린 것 같습니다. 살아있을 때 잘해줄 걸 그랬어요. 전 내심 녀석을 많이 질투했었거든요.




한때 저는 이 녀석과 많은 곳을 돌아다녔었습니다. 큰 공간과 아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한 적도 있어요.




제가 이야기 안 한 게 있는데요.

저와 바이올린이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피부가 희고 손이 따뜻했던 여자아이 덕분이에요. 그 아이는 저희를 아주 좋아했어요. 저희도 이 아이를 많이 좋아했었고요.




어렸던 그 아이는 저희를 데리고 어디든지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를 따라 무언가에 실려 동네를 매일 돌아다닌 덕분에 당시 저는 어지간한 동네사람보다 이곳의 지리를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돌아다니던 아이는 가끔씩 마주치는 아이의 친구들이나 동네어른들에게 저희를 자랑하곤 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제 안에 있는 바이올린 녀석을요. 조금 섭섭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우린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동네를 쏘다니며 흙먼지가 잔뜩 묻은 저와 바이올린을 툭툭 털면, 콜록거리면서도 그 아이는 어찌나 행복해하던지요.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잘 때도 우릴 껴안고 자던 그 아이가 부모님에게 혼나는 모습을 봤을 때는 괜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린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어서 아이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아이가 다시 저희를 껴안고 잠들었을 때, 저와 바이올린은 그 모습이 귀여워 얼마나 키득댔는지 모릅니다.




아이는 매일 저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내어 바이올린을 켰어요. 저는 구석에서 아이와 바이올린을 지켜보며 항상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바이올린이 아이의 따뜻한 손길을 독차지하는 게 부러웠거든요. 그래도 바이올린을 켤 때 보이는 아이의 행복한 얼굴은 제 모든 질투를 사르르 녹여주곤 했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크더라고요.

어느새 아이는 본인의 어머니만큼 키가 컸어요.




저는 그날 밤이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방에 있던 저와 바이올린에게도 들릴 정도로 방 밖에서 고성이 오갔지요.




저와 바이올린은 왠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들려오는 음성들을 통해서 그 아이와 저희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예감은 정확했습니다. 문을 박차고 방으로 들어온 아이의 아버지가 저를 거칠게 열고 바이올린을 꺼냈습니다. 그로 인해 제 지퍼가 고장이 났습니다. 저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가 걱정될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내팽개친 후 바이올린 녀석을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현이 팅팅거리며 나가는 소리는 분명히 바이올린의 비명이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바이올린을 아이가 다시 제 안에 넣어줬습니다. 아이도 바이올린도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방의 어두운 구석에 우리를 옮겼습니다. 바이올린은 한참을 서럽게 훌쩍거리다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녀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죠.



그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을 혼자 암흑 속에 있던 저는, 들려오는 소리로 바깥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밖에서 가끔씩 구슬픈 소리가 들려오곤 했어요.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분명 들짐승소리 같습니다. 오래전 아이와 동네를 돌아다닐 때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근데 오늘따라 그 소리는 처절할 정도로 크고 슬프게 들립니다.




처연한 그 소리는 왠지 바이올린이 살아있을 때 아이와 함께 가끔 불렀던 느린 노래가 떠오르게 합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녀석의 말로는 '장송곡'이라고 했던 것 같네요.










나는 고양이다.

나는 어느 풀숲에서 태어났다. 부모도 형제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있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기억할 뿐.




난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부스럭거리는 주머니를 뒤지거나 작은 회색동물을 잡아먹기도 하며 배를 채우곤 했다.

이런 삶은 지긋지긋하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고 생존은 나의 매일치 과업이다.

이곳은 따분하다. 매일이 똑같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과 항상 보이는 똑같은 두발짐승들 뿐이다.




이런 나에게 언젠가부터 흥미로운 두발짐승이 나타났다.




두발짐승치곤 작은 편이었지만, 내가 궁금한지 건방지게도 나를 볼 때마다 자리에 주저앉아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투쟁하는 강인한 몸이다. 작은 회색동물을 잡아먹을 때 그것이 나를 보고 얼마나 겁에 질리는지 알기나 하는가? 나는 나에게 손짓하는 가소로운 두발짐승에게 단 한 번도 반응해주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팠다.

무언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작은 쪼가리를 들고 그 작은 두발짐승이 손짓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가 준 것은 꽤나 맛있었다. 그것을 먹을 때 내 머리통을 살살 만지는 그 작은 두발짐승의 손길은 기분이 나빴지만 먹느라 바빠서 혼내주진 못했다.

그 작은 두발짐승의 뒤로 구부정한 늙은 두발짐승이 콜록거리며 다가왔다. 작은 두발짐승이 늙은 두발짐승에게 무언가 신나서 이야기했다. 나는 빠르게 도망쳤다. 아니. 도망이 아니지. 그 두발짐승들이 나에게 겁먹을까 봐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심심할 때마다 그 작은 두발짐승의 냄새가 나는 어떤 커다란 구조물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 구조물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담벼락의 가장자리에는 항상 고소한 냄새가 나는 작은 알갱이들이 무언가에 담겨 있었다. 난 깨달았다. 이 놈들이 나에게 식사를 바치는 것을.




어떤 날은 어슬렁거리다가 그 담벼락 위에서 담벼락 안을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이곳은 분명 두발짐승들이 모여사는 집인 것 같았다. 담 바로 아래는 작은 풀밭이 있고 그 앞에 집 안으로 이어지는 나무바닥과 집과 풀밭의 경계를 나누는 투명한 벽이 있었다.




가끔 투명한 벽이 열려있으면 안에 들어가려 했지만 번번이 큰 두발짐승이 화를 내는 바람에 도망쳐야 했다. 물론 도망은 아니고 못 이기는 척 물러서 준 것이지만.




종종 작은 두발짐승이 담벼락 위에 앉은 나를 올려다보며 펄쩍펄쩍 뛰는 시늉을 하는 걸 내려다보는 것은 꽤 재밌었다. 담벼락 주변에 항상 놓여있는 내 밥.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는 이 작은 두발짐승.

이 커다란 구조물은 이 녀석들이 날 위해 만들어놓은 내 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일상이 여러 날 동안 반복되었다.




내 생존에 대한 걱정은 매우 옅어졌고 이 녀석들이 점점 마음에 들게 되었다. 작은 두발짐승은 특히 나한테 애걸복걸했다. 날 만지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난 절대 쉽게 그 녀석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먹을거리를 바칠 때만 빼고. 담벼락 귀퉁이에 항상 차려져 있던 밥도 이 녀석이 주는 거겠지.

나름대로 기특한 녀석이다.




한편, 늙은 두발짐승은 자주 투명한 벽 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 늙은 녀석의 눈에서 물이 떨어지는 걸 가끔 봤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왠지 나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건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명 나쁜 기분이었다.




담벼락 위에서 투명 벽 너머의 그 녀석을 보며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크게 소리쳐 물어봤다. 근데 그 녀석이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양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자 난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늙은 녀석이 기특했다. 그래 그런 표정을 지어야지. 그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하여튼 이 녀석들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언제부터였을까.

늙은 두발짐승이 투명한 벽 앞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뜸해졌다.

녹색 풀밭도, 투명한 벽 앞의 풀들도 시들시들해졌다.

무엇보다 담벼락 구석자리, 늘 내 식사가 있던 자리도 더 이상 식사가 차려져 있지 않았다.




내 평범한 일상이 망가졌다. 배가 고팠다.

종종 이 집의 꼬마에게 작은 먹을거리를 받아먹는 걸론 배가 차지 않았다.

아무래도 담벼락에 식사를 차려주던 녀석은 꼬마 녀석이 아니었나 보다.




사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표현할 수 없이 허전한 이 기분이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 늙은 두발짐승의 눈에서 물이 나오는 걸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그때 내가 그 늙은 녀석에게 소리를 내자 그 녀석은 분명히 날 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었다.




지금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어디선가 그 녀석이 듣고 입꼬리를 올릴 것이다.

그래서 난 담벼락 앞에서 계속 힘껏 소리 질렀다.




대체 어디 간 거야. 어디 숨어서 눈가에 물을 흘리고 있는 거야. 빨리 밥을 내어줘. 다시 나타나서 입꼬리를 올린 표정을 보여줘. 보고 싶어.











나는 자전거다.

아주 낡아빠진 자전거다. 한때는 나도 내 쓸모를 다 하던 때가 있었다. 비록 지금 나는 딱지 같은걸 안장에 붙인 채 가로등 밑, 쓰레기 더미에 있지만.



난 내 주인이었던 어린 꼬마아이를 아주 좋아했다.

사랑스러웠던 그 아이는 내 앞쪽에 있는 바구니에 커다란 검은 짐을 넣은 채 나를 타고 쌩쌩 달리곤 했다. 아이는 나를 다소 험하게 다뤘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이가 가진 순수함의 표현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그 아이로 인해 내가 쓸모 있는 존재였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몸이 커진 아이가 더 이상 날 찾지 않게 되었을 때, 난 창고에 처박혔다.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난 단 한 번도 아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날 쓸모 있게 해 주던 그 아이가 그리웠을 뿐이었다.




캄캄한 창고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 한 남자가 날 꺼내어 내 몸의 녹을 벗겨주고 체인을 갈고, 새로이 기름칠을 해주었다. 그리고 집의 작은 정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누군가에게 날 끌고 갔다.




사람이란 존재는 참 신기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몸이 작아지는 건가? 사실 그때 일은 아직도 조금 헷갈린다.

아주 오래전 날 타고 다니던 그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그 여자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그 여자아이는 한동안 나를 타고 놀았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자 금방 나를 싫증 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여자아이는 오래전 나를 타던 그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아쉽게도.




휘청거리며 핸들을 허우적거리던 여자아이의 뒤에 어떤 여자노인이 콜록거리며 다가왔다. 그녀가 내 뒤편에 있는 짐받이 부분을 잡고 아이를 태운 채로 나를 밀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노인에게서 아주 그리운 느낌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대체 어딨 을까. 그때 그 아이는.

언젠가 내가 쓸모없는 고물이 될 그날이 오기 전에 꼭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었다.

한 번만 더 그 여자아이를 태우고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바람을 맞으며 좌우로 스쳐가는 초록색들을 보고 싶었다.

그 사랑스럽던 아이. 눈이 총명했던 아이. 손이 따뜻했던 아이. 내게 꼭 필요했던 아이.




아쉽게도 난 내가 그리워하던 그 여자아이를 끝내 만나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날 찾지 않게 되었고 결국 난 이렇게 지금 가로등 밑에 버려진 신세다.












저는 평범한 노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을 날이 머지않은 평범한 노인입니다.




전 지금 누워있는 이 집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고, 같은 동네의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고로 남편이 세상을 일찍 떠나고 젊은 날 홀로 돈을 벌며 아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아들을 맡아주는 동안 저는 항상 도회지로 나가 일을 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제 삶의 유일한 즐거움은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부모님과도 데면데면했던 저는 이 답답한 집에서도 유일한 내 편은 어린 아들뿐이라고 여겼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홀로 아들을 홀로 키울 때는 몇 번이나 제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세상은 아들의 존재를 포로로 삼아 꾸역꾸역 삶을 이어나가게 하더군요.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아들을 번듯하게 키워냈어요.

흔한 이야기죠.

시간이 지나 아들이 결혼하여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고, 손녀가 생겼습니다. 아들은 일 때문에 항상 오랫동안 출장을 가곤 했습니다.




드디어 고된 삶에서 해방되자,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삶이 시작되었어요.




며느리는 이 집이 정말 싫은 모양이에요.

전 이 집이 싫었지만 평생을 함께 해오다 보니 우습게도 이 집이 아닌 곳에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이 집에서 사는 일은 좋고싫음의 문제가 아니었죠. 며느리는 언젠가부터 더 이상 식사를 잘 챙겨주지 않았고 저에게 비호의적인 태도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해합니다. 전 더 이상 아무 가치도 없는 노인이고, 저 역시 젊은 시절에 누구보다 이 집을 싫어했으니까요. 하물며 젊은 며느리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말이죠.

가끔 며느리가 본인의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오는 날은 더없이 서글펐습니다. 도회지에 터를 옮기고 싶어 하는 마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충이 적나라하게 들려올 때면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 집이 남의 집처럼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결국 며느리의 모든 말들이 그저 제가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말과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차라리 지금 이렇게 방안에 누워있는 제 상황이 마음이 편합니다.

더 이상 전 거동을 할 기력이 없거든요. 제 숨이 시시각각 약해져 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손녀딸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제 모습이 낯선가 봅니다.

제 앞에 앉아 몸을 닦아주는 며느리의 뒤로 손녀딸이 제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전 갑자기 목이 간질간질해서 작게 기침을 했습니다. 제가 기침하는 것을 보고 며느리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쳐다보더니 잔소리를 합니다. 할머니는 기관지가 약한데 또 어디서 고양이털을 잔뜩 묻히고 왔냐면서요.




그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그 고양이가 걱정됐습니다.

내가 없으면 더 이상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을 텐데.

제 삶이 얼마나 재미없었으면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드는 생각은 들고양이 생각이라니. 웃기죠? 사실 제가 걱정 안 해도 들짐승은 알아서 잘 살 테고, 절 기억도 못 할 텐데요.




며느리가 했던 말처럼 전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약했습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이 내 생각을 해서 산세베리아 화분들을 여러 개 들여왔습니다. 공기정화에 좋다나요. 덕분에 제 삶에도 작은 일과가 생겼었어요.




솔직히 제 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도 소소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화분이 커가는 모습이 아들 녀석이 커가던 모습을 보던 때를 떠오르게 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전 평생을 재미없게 살아왔어요. 특별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무언가에 크게 쓸모도 없었고 아무도 날 찾아준 적이 없답니다. 아무리 삶을 돌이켜봐도 즐겁고 행복한 일 하나 없었습니다.




아. 하나가 있긴 하죠. 행복했던 기억. 하지만 행복했기 때문에 가장 아픈 기억입니다.

제가 아까 부모님과 데면데면했다고 했죠? 이것이 그 이유입니다.




전 어린 시절에 바이올린을 켰었습니다.

우연히 어머니가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부모님을 졸라서 바이올린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보며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게 제 낙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던 어머니가 종종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그게 얼마나 좋았는지 하루 종일 바이올린을 들고 다녔어요.




자전거 바구니에 바이올린을 넣은 케이스를 싣고 온 동네를 쏘다녔습니다. 바이올린을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몰래 집으로 돌아와 잘 때도 바이올린을 케이스채로 꼭 껴안고 잤어요. 부모님에게 항상 혼이 났지만 이 좁아터진 세상에서 매일 보고 만질 수 있는 친구가 생겼는데 어떻게 떨어져 있을 수 있었겠어요.




나름대로 바이올린 실력이 점점 늘어서 마을 어른들과 또래아이들이 모인 앞에서 바이올린을 켰던 날은 제 평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바이올린에 홀딱 빠져있던 어린 저에게 부모님은 자주 걱정의 말을 했었습니다. 수없이 반복된 그 말에 어느 날 전 짜증이 치밀어올라 부모님과 말다툼을 했죠. 아버지는 화가 나셨는지 제 방에 들어와 바이올린을 집어던졌어요.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졌을 때 전 제 안의 소중한 것들이 죽어버렸다는 생각을 했죠. 어머니도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어요. 내심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날의 충격은 단순한 꾸중과 훈육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어렸던 영혼을 부모님이 죽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저는 그 부서진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집어넣고 보이지 않는 방구석에 집어넣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 근처를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죽기 직전인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저 당연한 듯 짊어진 부역과 같던 삶에서 제게 유일한 행복이었던 것은 그 어린 시절에 끝나버렸습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 그래도 마지막으로 제 아들이 보고 싶어 미약한 제 숨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제 삶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흔적. 나를 태워가며 키워낸 내 아들.




출장 중간에 며느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제 앞에 왔을 때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은 꿈에도 모를 거예요.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다만 전 살아서도 세상과 말해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아 정말 불행하고 힘든 삶이었습니다.

저는 이 집에서 이제 눈을 감으려 합니다.

전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제가 잠들 곳도 이곳입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흐릅니다. 제 몸에 아직도 나올 수분이 남아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지난 세월이 너무 서러워 마지막까지 울상으로 눈을 감나 봅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요? 환청이라도 들리는지 희미하게 집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산세베리아 앞에 앉아 슬퍼할 때면 저에게 울어주던 그 검은 고양이. 집 안에 갇힌 저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던 고양이. 종종 그 작은 녀석이 도도하게 담 위에서 절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다행입니다. 녀석 생각을 하니 덕분에 이제야 살짝 웃음이 납니다.




죽기 전에 그 주마등이라고 하나요? 어찌 제게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요.

다만 그립고 어딘지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바람에 풀이 스치는 소리, 녹슨 쇠가 끼긱끼긱 마찰하는 소리.....

그리고 이 소리는...


분명 바이올린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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