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 시점

이야기

by 정민쓰








관찰에 따르면,


지성체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단순한 집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발달한 지능은 사회구조의 안에서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다차원적인 여러 층을 만든다. 그리고 가로세로로 층층이 겹쳐진 레이어들은 변화무쌍한 경우의 수를 만든다.


그 무수한 경우의 수 중, 비슷하거나 똑같은 경우의 수를 선택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무리를 형성하여 그 안에 자신을 숨기고 집단 속 개인으로서 살아간다.


'신'을 믿겠다는 경우의 수를 선택한 그들 또한 집단을 이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모인 그들은 제법 그럴싸한 음모론으로 시작하여, 점점 믿음을 공고히 해가며 진실에 다가갔다.














길을 걸어가던 한 남자는 스쳐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쪽 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고 무심하게 지나쳤다. 떠 있는 두개의 달이 지나치게 밝은 탓이었을지, 남자는 평소보다 더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분명 이 남자는 제법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듯보였지만 단 하나, '종교'는 그의 이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종교를 믿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숭배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만큼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은 아닌듯 했다. 그는 언젠가 길거리에서 한쪽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포교하려는 사람들에게 '난 그렇게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니 가는 길을 방해하지 말라'라고 일갈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종교인들은 '우리 또한 여유롭지 않기에 오히려 종교 안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여유와 안식을 찾는다.'라고 대꾸했다. 남자는 맹목적인 말과 분위기에 소름이 돋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들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갔었다. 지저분한 바이러스라도 옮은 듯 가래를 끓어올려 왼 편 화단에 뱉으면서.













남자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남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세상이 너무 밝다는게 항상 불만인 듯 보였다. 남자는 가끔 달이 한 개만 뜨는 날을 제외하면 언제나 집 안에 암막커튼을 치고 생활을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어두운 그의 방에는 스탠드 조명만이 빛나며 남자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것은 직육면체의 유리상자였다.




그것은 개미집이었다.

남자는 일전 우연히 흙바닥에서 패인 땅으로 인해 노출된 개미집의 구멍을 보았었다. 그리고 남자는 개미집이 있는 한가운데쯤의 땅 일부를 통째로 들어내어 유리상자로 옮겨왔었다. 남자는 적지 않은 시기동안 이 개미들을 관찰하며 그만의 작은 유희를 즐겨왔지만 요즘 들어선 그 유희거리에서마저도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남자는 집의 전세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거처를 옮기게 되면 이 유리상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매일 혼자 중얼거렸다.










남자의 유일한 취미는 곤충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배우자 없이 마흔 평생 혼자 지내온 남자가 외로움을 달래는 방식은 집에 설치한 커다란 유리상자를 내려다보며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남자는 그날도 한참 동안이나 개미들을 관찰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혼이라도 빼앗긴 듯 한참을 유리상자 속 개미무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개미들의 행렬은 수학적이고 예술적이었다. 남자는 그 최적화되고 오차 없는 행렬에 황홀경을 맞이한 듯,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개미들의 사회를 관음 했다.




일부 개미들은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가장의 역할을 하는 개미들은 특정 시간엔 어김없이 일터로 출근을 했다. 이들 안에서 서로 반목하는 나름의 경쟁세력들도 형성되어 있으며, 개미사회를 존속시키는 나름의 법칙도 있는 듯했다. 움직임이 다소 튀는 개미는 바로 무리에서 쫓겨나 도태되거나 처형을 당한다. 이 모습을 보고 남자는 요즘 유행하는 '그' 종교를 떠올리는 듯 했다. 그는 그 종교를 '윙크쟁이 광신도 무리'라 속칭하며 이 개미들과 다를게 없다고 중얼거렸다.





남자는 개미만큼이나 간지럽게 기어올라오는, 사소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대해지는 외로움과 권태가 지겨운 듯 침대에 누워 입을 뻥긋뻥긋거렸다.




- 아무래도 저 유리상자는 처분해야겠지. 이 참에 더 좋은 걸로 하나 사자. 개미집이야 뭐 아무 흙바닥에서 또 찾아내면 되니까. 그나저나 저 큰 유리를 어떻게 버려야 하나.




유리상자의 양 옆에 놓아둔 낡은 스탠드 조명들이 이따금씩 팅팅거리는 소리를 내며 번갈아 점멸했다.












어느날 길을 걷던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남자는 두개의 달이 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남자는 달이 한 개 뜰 때의 조도를 더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오랜만에 남자는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났다. 마지막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특이사항이 없던 친구였을텐데 웬 걸, 남자를 만나자마자 친구가 한쪽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이젠 지긋지긋한 듯 친구에게 말했다.



- 미친놈.



친구는 웃으며 남자에게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이 세상은 신의 은총이 가득한 곳이라면서, 언젠가 그 은총이 끝나는 순간 찾아오게 될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남자에게 읊어댔다. 남자의 입장에선 고리타분하고 극단적인 종말론일 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친구가 하는 말은 언젠가 달이 아예 뜨지 않게 되는 날에는 정말로 모든 게 끝이라는 말이었다. 남자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대답했다.



- 달이 두 개인 거랑. 너희들이 말하는 세상의 종말이 당최 무슨 연관성이 있냐. 그 망할 한 쪽눈 깜빡거리는 것도 난 꼴 보기 싫어 죽겠다.



남자가 투덜거리자 친구는 대단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숙여 남자에게 가까이 한 채 목소리를 낮췄다. 친구는 속삭이듯 그런 말을 하면 신이 노하신다고 말했다. 이어서 친구는 달이 두 개인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왜 종종 간헐적으로 달이 한 개만 뜨는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따지듯 물어봤다.



- 그냥 세상이 그렇게 생긴 거잖아. 원래 달은 두 개야. 자연의 섭리같은 거라고. 그냥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거잖아. 제발 피곤한 소리 좀 하지 마. 하다못해 과학적인 접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 그런 것들을 왜 그렇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따지려면 너희들은 그냥 세상 만물에 다 종교를 만들지 그러냐? 종말론? 웃기는 소리들 하고 있네. 듣고 있으려니까 짜증 나게 진짜.




더 이상 유의미한 대화가 오고 가지 않으리라 판단한 듯, 남자와 친구는 만났을 때와는 달리 다소 서먹서먹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전구의 수명이 다해가는 스탠드형 전등은 이따금 점멸하며 이 유리상자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남자를 독촉하는 것 같이 보였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리상자 내부를 들여다봤다.




남자에게 등 뒤에 켜둔 TV에서 뉴스음성이 들려왔다. 대충 최근 들어 달이 한 개만 떴을 때와 두 개가 떴을 때의 주기가 짧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남자는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남자는 요즘 들어 혼잣말이 부쩍 늘었다.



- 요즘엔 주기가 짧네. 얼마 전에도 한 개만 떴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도 요즘 들어 달이 제 마음대로 뜨는 것 같은데. 나야 뭐 잘 됐지. 하... 그나저나 저 개미들은 진짜 어떻게 폐기하지.




다시 남자는 유리상자를 내려다봤다.

최근 혼자 튀는 행동을 하던 개미 한 마리를 개미떼가 달려들어 처형하듯 죽이는 것을 봤을 때, 남자는 엄청난 총기를 띈 눈빛으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처형당한 개미를 응시했다. 이번에 처형당한 개미는 조금 특이했다. 그동안도 계속해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개미떼에게 혼자서 공격성을 숨기지 않거나 혼자 대열을 이탈하려는 모습들을 보였었다. 결국 개미떼의 무자비한 처형식을 당한 그 개미는 무력하게 배를 까고 팔다리를 파르르 떨고 있다.




남자는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뭐가 그리 이상했을까. 늘 기어 다니는 개미가 반대로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는게? 배를 까고 죽어가던 개미도 적지 않게 봐왔겠지만 그에게 오늘따라 그 광경이 무언가 이질적으로 보인 듯 했다. 분명 죽어가는 그 개미는 이상할 정도로 곧장 유리상자의 위쪽, 남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유리상자의 좌우에 있던 스탠드형 전등들 중, 좌측에 점멸하던 스탠드형 전등의 전구가 '팍'하는 소리와 함께 꺼져버렸다.




전구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 얼굴에서 보이는 건 아마도 경악 이상의 강력한 충격으로 보였다.




아마도 이제 눈치를 챘나 보다.












남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아주 느리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창가에 다가갔다.

아까 말했듯 남자는 요즘 들어 부쩍 혼잣말이 늘었다. 그는 걸어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종교.. 그들의 인사법.. 깜빡이는 눈.. 한쪽이 꺼진 전등.. 두 개의 달.. 한 개의 달... 폐기.. 관찰... 개미집... 종말론...






남자는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남자는 겁에 질린 눈으로 시선을 까만 밤하늘에서 '달들'로 옮겨간다. 물론 이제 이 남자는 그것이 '달들'이 아니란 걸 알았겠지만.


두개의 달을 쳐다봄으로써,

그렇게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눈이 건조한 나머지 한쪽 눈을 깜빡였다.




그래. 안그래도 마침 싫증이 나던 참이었다.

이 남자가 눈치챈 것을 끝으로 이제 이 통도 폐기할 생각이다.

나는 오랜 관찰에 피로해졌던 양 눈을 꼭 감았다.




이 녀석들의 세상엔 이제 달이 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통은 어디다 버려야하나.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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