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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딤 Jun 08. 2024

잘 살아지지 않는 와중에

친구들에게 불안 증세가 있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했다. 술을 잘 안 먹는다는 내 말에, 어떤 이유가 있냐는 물음에, 먹는 약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는 멈칫했지만 이내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고, 다른 병으로 둘러대는 꼴도 웃기고, 숨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아주 작은 형태로. 어떤 문턱에 걸리지 않고 쉽게 통과될 수 있게끔 조각내어 내가 겪는 불안을 설명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하지 않고 사는 법은 없어. 불안과 함께, 불안을 잘 관리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는 거야. 이 불안한 시대에 불안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비정상인 거야.


우리는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살아지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살아내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서로의 긴 시간과 생각을 들여다 보았다.


네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친구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 할, 그런 귀한 말을 건네주고서는 말끝을 흐렸다. 친구가 울고 있었다.



내 작은 집, 침대에서 친구들은 잠들어있고, 나는 평소처럼 푹 잠에 들지 못해 새벽같이 하루를 시작했다. 익숙하게 의자에 앉아. 루틴처럼 전날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들이 내 집에 온지 이틀이 되었고, 우리는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타인에게 무뎌진다. 오직 내 자신에게만 예민해진다. 어제도 그런 순간이 많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정에 초조해지고, 이상한 책임감을 느껴 방어적인 말을 하게 되고, 깊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너무 버거워서 그저 행동만을 위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불안정함을 티내고 싶지 않았지만 숨쉬듯이 바닥이 드러났다. 모두가 잠든 새벽, 소파에 앉아 내 밑바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빙산의 일각이지. 나는 또 다시 나를 미워하는 방식으로 새벽의 적막을 채웠다. 하지만 평소같았으면 적막과 고요만 가득했을 방 안에 다른 소리들이 있었다. 색색. 친구들이 색색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엄마는 잠을 자고 있는 나를 표현할 때 항상 이 의성어를 썼다. 너 아까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잘 잤어. 그저 잠을 잘 잔다는 이유로, 그런 사랑 가득한 단어를 내 가까이 있게 했다. 흐릿한 적막 속에서 친구들의 숨소리가 색색 들렸다.


깨우지 말아야겠다.


조심조심 침대 방문을 닫고 거실쪽으로 나왔다. 색색. 푹 잠 들어있는 소리. 우리 엄마가 듣는 소리를 내가 듣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잘 잤으면, 잘 자주었으면.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잊고, 아무런 짐도 어깨에 지지말고 그저 좋은 잠을 잤으면. 너희를 정말 사랑하긴 하나봐. 말로는 낯간지러워서 전하지 못할 마음들이 집안 이곳저곳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 내 집, 내 공간에서 편안히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도했다. 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 어느 공간에서 어떤 생활을 하든 편히 잘 수 있게 해주세요. 아주 깊고 좋은 잠을 잘 수 있길. 그저 색색 숨을 내쉬며 곤히 잘 수 있기를. 그래서 일어나고 나면 모든 아픔이 잊혀져 있기를. 모든 상처에 새 살이 돋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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