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일으키는 ‘투쟁 도피반응’의 고장 난 스위치처럼, 태곳적부터 DNA에 각인된 자동반응 같다. 돈은 하루에도 수차례 사용하는데, 매번 이런 결핍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인지 생각하는 방식에 진전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통장 잔고는 정직하게 늘 비슷했다.
소비할 때 느끼는 결핍감을 없애야 했다. 할 수 만 있다면 DNA를 꺼내서 결핍감 부분을 떼네고 다시 집어넣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결핍감을 감사와 풍요의 느낌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하루에 만 원 쓰기 프로젝트’를 해봤다. 하루에 한 번씩 나를 위해 만원씩 쓰며 풍요의 느낌을 몸에 학습시키는 방법이다.습관이 나를 만들기까지는 3일에서 3주가 걸린다고 해 2주를 실천했다.
[ 새로운 곳에, 하루 만원 쓰기]
>> 목 적 : 지불할 때 풍요가 몇 배로 다시 들어올 것을 느끼기
>> 행동 포인트 : 새로운 선택과 빠른 결정
>> 준비물 : 1만 원 (하루)
>> 방 법 : 새로운 장소 가보기, 물건구입
>> 유의사항 : 혼자 하기
하루는 숙제 같은 만원 쓰기를 해치우기 위해 집 앞 카페에 갔다. 카페 안에서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길인 바깥 풍경이 생경했다. ‘내가 저렇게 큰 나무 밑을 매일 지나다니고 있었구나’ 해 질 녘 노을이 창밖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며 이런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난 앞만 보고 걸었구나’ 새로움을 느낀 오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또 하루는,
*새로운 식당에 가보기도 하고 ( 평소 즐겨 먹지 않던 터키 케밥도 먹어보고 )
*데일리 에코백을 하나 사기도 하고 ( 집에 에코백이 많고 많지만 )
*이모티콘을 사기도 하고 ( 더 이상 찾아 쓰기도 힘들지만 )
*새 양말을 사기도 하고 ( 언제 신게 될지 모를 무지개 색으로 )
*내 머그컵을 사기도 하고 ( 있는데 또 사서 뭐 해? 했던 )
*9,900원짜리 티를 하나 사기도 하고 (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걸 사야지 했지만 튀는 색으로 )
*스킨케어 제품도 하나 사고 ( 무슨 효과가 더 있는지 모를 비싼 팩도 사고 )
가장 큰 변화는 늘 비슷한 일상이었는데 만원을 쓰기 위해 하루를 바삐 움직이게 된 점이다. 만원 쓰기를 하는 동안 매일 새로운 선택과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가며 활기차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새로움에 집중하는 동안은 편안히 숨이 쉴 수 있었다.
‘그동안 귀찮다는 이유로 나를 위해 새로움을 주지 못했구나’..
나의 무엇이 삶을 정체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지 않은 것은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위에 그냥 서 있는 것과 같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지만, 편안함과 동시에 에고(ego)는 또 다른 걸 찾아내 비교와 부러움이라는 술책을 부린다. 그러면 또다시 나를 우울의 터널 속으로 끌고 들어가기를 반복할게 뻔하다.
'만원 쓰기'로 새로운 ‘직감적 선택’의 감을 익힐 수 있었고, 에고(ego)가 고삐를 풀고 장황하게 떠들기 전에 새로운 경험으로 입막음할 수 있었다.그래서인지 에너지 소모가 적고 선택한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새로운 선택을 하고 경험하는 동안, 에고는 마이크를 잠시 동안 마음에게 넘겨줬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몰입’이라고 불렀다.
소비를 풍요의 느낌으로 바꾸기는 아직 부족하지만,
'만원 쓰기'를 할 동안의 기억들은 돈을 쓰는 새롭고 경쾌한 느낌을 몸에 남길 수 있었다.
소비할 때 드는 결핍의 느낌은 빛의 속도라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호출하면 언제고 그때의 느낌을 불러와 새로움으로 치환하는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