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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빈 Sep 04. 2024

[우울증 극복 D-5] 3. 어둠의 터널 통과하기


D-5. 여행 떠날 준비

-여행을 떠나요


20대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여행이었다. 특별함도 우여곡절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내 삶에 유일하게 가슴 뛰는 일이었다. 새로운 땅, 새로운 경험은 미지의 힘을 실어다 주었고, 나를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이끌어주는 연료였다. 탐험가가 되어 새 땅을 발견하고 돌아온 후 한동안은, 실어 온 미지의 스토리가 가득 차 삶이 풍성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라는 인식이 점점 흐려졌다. 나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관계 속에서의 수많은 역할이 버거웠다. 세상 속에서 내 위치는 맞닿은 톱니바퀴같이 빠져나갈 틈 없이 꽉 끼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걸 계속 되풀이하며 나에게 새로움이라는 선물까지 줄 틈이 없었다.

매일매일 비슷한 삶이 반복되고 나는 나이 들어갔다. 무엇에 대한 열정도 살아야 할 큰 의미 또한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순간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것이 천국이라는데, 별것도 아닌 현재에 머물러 있기란 쉽지 않았다.

과거의 후회, 미래의 걱정과 두려움은 천국의 문이라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를 얍삽하게 가로챘다.

생각을 현재에 붙잡아 두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인이나 할 수 있는 능력임이 분명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 집중한 것 같다가도, 널어둔 빨래가 젖을까 봐 하늘에 먹구름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시 커피 한 모금에 집중하자마자 어제 마신 커피가 더 났다며 생각은 이미 과거에 가있는 식이다.


그제 서야 이해가 가지 않던 말인, 항상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마냥 날뛰는 에고의 생각은 정지 버튼이 없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에고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처하면 상황을 정의하느라 주저하며 멈춰 서는 걸 발견했다. 가본 적 없는 삶을 살 때 현재에 머물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언젠가 가려고 사놓고 빌려만 주던, 뽀얗게 먼지가 앉은 대만 여행책자가 눈에 뜨였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다음에 떠날 여행책자를 사놓고는 했다. 유독 대만 책자는 오랜 시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열심히 종교 활동을 한다거나 자기 계발서를 왕창 읽는다거나 하는, 그런 진지하고 신중한 일에 집중해야지만 사는 의미가 발견될 것 같았다.


다른 식의 인생 찾기가 필요했던 어느 날, 인생의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중인 두 명의 친구를 카페에서 만났다. 송사에 휘말린 친구, 병든 가족 간호에 지친 친구,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나. 각자 받은 지구 학교 숙제를 치열하게 해내는 중이던 우리는,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와 환경을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면 상황은 바뀌지 않더라도 생각이라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문득 대만 여행 책이 떠올라 타이베이는 어떻겠냐고 내가 의견을 제시했다. 둘은 이미 다녀왔지만 즐거운 기억이 있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불현듯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장소, 비용, 비행기, 호텔 모든 예약을 끝냈다. 안 그래도 속이 시끄러운데 시간이 지체되면 결정을 번복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기회에 여행 떠날 준비까지 순식간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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