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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극복 D-3] 1. 꼭 나여야 한다는 착각

by 해피빈

D-3. 집으로 돌아가기

-꼭 나여야 한다는 착각


타이베이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깨달았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내가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착각일까? 나 또한 세상이 질서유지를 위해 정해놓은 시나리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 시나리오 속 역할을 슬쩍 내려놓으니, 누군가는 내가 하던 그 역할을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해내려고 노력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귀가 어두워 아침에 깨우기가 곤욕이었던 딸아이는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알람시계를 몇 개나 맞춰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방 일은 손도 대지 않던 남편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신선식품을 사 와 요리를 했다.


세상 모든 건 이미 완벽하다는 말이 이 뜻이구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어!'

이제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미안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어깨에 메고 있던 인생이라는 큰 배낭을 잠시 내려놓은 것 같았다. 배낭 속에는 내가 맡은 역할에 필요한 도구들이 가득했다.

상쾌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숨쉬기도 좋았고, 오랜만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느긋했다.


태극의 끝과 시작이 함께 물려 있듯이, 나는 끝과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에 섰다. 어쩌면 그 배낭은 처음부터 내 어깨에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상이 만들어낸 무거운 배낭은 이제 내 어깨 위에서 사라졌다. 앞으로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경쾌하게 나아간다. 심장이 뛰는 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다시 차오르겠지.


여전히 삼시 세끼 밥을 해 먹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매일의 일상은 계속된다. 달라진 것은 별것 아닌 나를 가둔 익숙한 반복에서 빠져나오기다.

식사는 집에서 해 먹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바쁜 날에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시킨다. 배달음식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빨래는 빨래방으로 가지고 가 대형 세탁기에 한 번에 돌리면 시간이 절약되고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정리가 안 된 집도 못 본 척하고 후다닥 운동을 나간다. 모든 게 심드렁한 날은 반복되는 일상을 내려놓고 새로운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무엇보다 나를 위했어야 했다. 세상에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데 그런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야 그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나는 내 편이야 했는데 나마저 나를 몰아세우니 우울했고 숨조차 못 쉬었구나.

나는 나에게 무엇도 될 필요 없다고 격려했고 남은 인생은 선택한 삶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도 재차 확인시켰다.


삶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나를 제한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니 몸과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다. 습관적으로 하던 노력을 '놓아 버리니' 각종 드라마에 덩달아 등장하는 일이 줄었다. 행동에는 당위성이나 이유를 찾지 않는 ‘그냥’ 하는 상태가 점점 늘어갔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어진 나는 무엇도 급할 것이 없었다.

이제는 에고가 시나리오를 연출해도,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얼떨결에 등 떠밀려 무대에 등장한다 해도 ‘관찰자’는 지켜볼 뿐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진정한 인생 2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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