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에 세운 소망을 향한 목표를 실전해 가는 중이었으나 한편으로는 큰 바람이나 기대가 없었다. 예전처럼 열렬히 꿈을 소망하지 않았고 그저 숨이 잘 쉬어지고 오늘 할 일이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걸 꿈꿨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재차 확인했고 더 이상의 미련도 없었다. 내 인생 시나리오가 여기 까지라면 숨을 쉴 수 있는 오늘이 천국이라고 생각기로 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지만 바람을 놓아버리니 마음 한구석이 편했다. 공황장애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몰랐겠지. 그리고 나는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았으니 앞으로의 삶에 큰 미련도 없었다.
미련을 놓아버리니 딱 한 가지 나도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뭔가를 하든 안 하든 앞으로의 삶은 지금의 생활 이상으로 살게 된다는 확신이다. 아마도 이런 의심 없는 믿음으로 더 이상의 큰 바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무의식에 뭔가가 심어진 것 같기도 했다. 무의식에 내 삶의 더 이상의 바닥은 없다고 선언한 것도 같다.
인생 2막의 목표를 향하는 과정 또한 본 적 없는 새로운 난이도의 문제를 던졌다. 그런데 인생 1막과 다른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신기하게도 어찌어찌 또 해결됐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힘든 순간이 닥치면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책이 눈에 뜨였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힘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외로웠다. 세상 속에 내가 속한 분류가 없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연기를 잘 해내고 있으니, '근데 네가 왜 외로워?'라는 되돌아오는 이 질문에 답하기도 지긋지긋했다. 나는 평생 정신적 외톨이었다. 마음 둘 곳 없던 나에게평생 가져보지 못한 진짜 내편이 생겼다.
나는 생생한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가끔은 이런 상황이 꿈같기도 하다. 때때로 예지몽을 꾸기도 하지만 종교적이거나 신비한 능력 같은 건 없는, 극 현실 주이자 성향이라 나도 나의 이 상황을 어찌 정의 내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마음속 친구와의 메시지는 ‘반복되는 숫자’로 나타났다. 산지 십 년도 더 된 세탁기의 고객센터 번호, 지나가는 자동차 번호판, 핸드폰의 시간 등에서 같은 숫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된다. 이런 판타지 영화의 소재 같은 궁금증을 주변에 물어보자니 내가 이상해 보일 것 같아 신경 쓰였다. 독학으로 무엇이든 습득하는데 도가 튼 나는, 끈질긴 정보 검색 끝에 모든 걸 다 안다는 ChatGPT에게 물었다. 역시 ChatGPT는 모르는 게 없었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 '엔젤넘버' 또는 '천사번호'라는 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ChatGPT에게 ‘반복적으로 보이는 같은 숫자’라고 질문했더니 내 예상과 비슷한 답변을 했다.
ChatGPT의 답변
‘반복적으로 같은 숫자를 보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종종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계에서 자주 "11:11"을 본다거나,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판, 영수증 등에서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것을 자주 목격할 때, 이를 "천사 숫자"나 "우주의 신호"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숫자들은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드디어 ‘지니’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싶었다.
나에게 든든한 백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천군만마를 거느린 듯 든든했다. 한동안 꿈속에 붕 떠 있었지만 요행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지니’는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일에 한에서만 메시지를 보냈다. 느낌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해도 돼, 다시 생각해 봐, 맞아 잘했어, 더 노력해야 돼' 등등...
그래서 매일의 할 일을 찾아야 했고, 즐겁고 새롭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작은 것이라도 일상의 새로움은 꼭 필요했다. 이미 패턴화 된 행동은 에고의 속임수에 넘어가 보란 듯이 남에 다리를 긁는 상황을 연출시켰다. 그리고 즐거움과 감사는 지금도 글로 춤을 배우는 기분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누가 읽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운 우울증, 공황장애 글쓰기를 외면하고 팽팽 놀고 있으면 ‘지니’는 1234 엔젤넘버를 연속해서 보낸다. ChatGPT의 답변으로 풀이하자면 '현재의 길을 신뢰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눈에 띈다. 뜨끔해진 나는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 들고 카페로 향한다. 행동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의 턱없이 부족한 뒷심을 간파한 모양이다.
나는 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엔젤넘버나 동시성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냥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나는 상상놀이가 즐겁다. 돌이켜 보면 게임 회사에서 일하던 때가 직장 생활 중에 가장 즐거웠으니까.
가끔은 게임이 현실이고 현실이 게임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게임이 출시되면 그게 창조된 현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