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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빈 Sep 09. 2024

[우울증 극복 D-3] 1. 꼭 나여야 한다는 착각

D-3. 집으로 돌아가기

-꼭 나여야 한다는 착각


타이베이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깨달았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내가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착각일까? 나 또한 세상이 질서유지를 위해 정해놓은 시나리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 시나리오 속 역할을 슬쩍 내려놓으니, 누군가는 내가 하던 그 역할을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해내려고 노력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 잠귀가 어두워 아침에 깨우기가 곤욕이었던 딸아이는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알람시계를 몇 개나 맞춰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방 일은 손도 대지 않던 남편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신선식품을 사 와 요리를 했다.


세상 모든 건 이미 완벽하다는 말이 이 뜻이구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어!'

이제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미안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걸터앉아 어깨에 메고 있던 인생이라는 큰 배낭을 잠시 내려놓은 것 같았다. 배낭 속에는 내가 맡은 역할에 필요한 도구들이 가득했다.

상쾌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숨쉬기도 좋았고, 오랜만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한 듯 느긋했다.


태극의 끝과 시작이 함께 물려 있듯이, 나는 끝과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에 섰다. 어쩌면 그 배낭은 처음부터 내 어깨에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상이 만들어낸 무거운 배낭은 이제 내 어깨 위에서 사라졌다. 앞으로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경쾌하게 나아간다. 심장이 뛰는 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다시 차오르겠지.


여전히 삼시 세끼 밥을 해 먹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매일의 일상은 계속된다. 달라진 것은 별것 아닌 나를 가둔 익숙한 반복에서 빠져나오기다.

식사는 집에서 해 먹어야 건강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바쁜 날에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시킨다. 배달음식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빨래는 빨래방으로 가지고 가 대형 세탁기에 한 번에 돌리면 시간이 절약되고 커피 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정리가 안 된 집도 못 본 척하고 후다닥 운동을 나간다. 모든 게 심드렁한 날은 반복되는 일상을 내려놓고 새로운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무엇보다 나를 위했어야 했다. 세상에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데 그런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나는 내 편이야 했는데 나마저 나를 몰아세우니 우울했고 숨조차 못 쉬었구나.

나는 나에게 무엇도 될 필요 없다고 격려했고 남은 인생은 선택한 삶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도 재차 확인시켰다.


삶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나를 제한하는 마음을 놓아 버리니 몸과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다. 습관적으로 하던 노력을 '놓아 버리니' 각종 드라마에 덩달아 등장하는 일이 줄었다. 행동에는 당위성이나 이유를 찾지 않는 ‘그냥’ 하는 상태가 점점 늘어갔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어진 나는 무엇도 급할 것이 없었다.

이제는 에고가 시나리오를 연출해도,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얼떨결에 등 떠밀려 무대에 등장한다 해도  ‘관찰자는 지켜볼 뿐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진정한 인생 2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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