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에고와 주거니 받거니 아무 말 대잔치를 신나게 벌이던 부슬비가 오는 날이었다. 지하철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실내로 한참 내려왔는데, 아직도 우산을 쓰고 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정리법이 시급했다. 문뜩 미루고 미뤄왔던 명상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침 조회시간에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명상의 시간을 심오하게 설명해 주셨지만 관심 없는 우리들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움직이거나 장난을 쳤다가는 선생님한테 혼이 날 테니 실눈을 뜨고 선생님이 어디쯤 계신가 동태를 살피며 장난을 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독학으로 명상을 접하게 되기까지는 선입견이 없었던 어릴 적 경험의 영향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명상을 떠올리면 단정하게 승복을 차려입고 큰 부처님 동상 아래에 앉아있는 풍경이 따라붙는다. 희미한 촛불아래 향내를 맡으며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추운 나무 마룻바닥에 옷을 단정히 여미고 앉아서 말이다. 내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적 선택 같은 느낌이랄까, 명상은 아직 불교적인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명상을 불교에서는 참선이라 부르기도 하고 교회에서는 묵상이라고 부르지만 불교의 느낌이 더 강하게 풍기는 건 사실이다.
나는 명상이 특별한 것이 아닌 조용한 마음 챙김의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받아 드릴 때 거부감이 크진 않았다.
그래도 명상을 한다고 눈을 감기까지 내 안에 설전은 굉장했다. 에고는 무슨 효과가 있겠냐며 말도 안 되는 일에 시간낭비 하지 말라고 떠들었고, 마음은 국내도 아니고 서양의 유명 인사들까지 동원해서 ‘명상해라 명상이 답이다’라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팽팽하게 대치했다.
'명상에 답이 있다'는 책 속의 수많은 설득 중에,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에 저장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의 글이 마음을 흔들었다.
‘완벽한 명상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창조주와 합일시킨 요기는 우주의 본질이 빛이라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에게는 물을 구성하는 빛과 땅을 구성하는 빛 사이의 구별이 없다. 물질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 3차원 공간과 4차원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은 요기는, 자신의 몸을 이루는 빛들을 땅과 물과 불과 공기를 이루는 빛들과 손쉽게 바꿀 수 있다. 의식의 해방을 가져오는 영안에 오랫동안 의식을 집중시킨 요기는 물질과 중력이 작용하는 무게와 관련된 모든 미망을 깨뜨릴 수 있다. 그리하여 요기는 우주를 절대자가 창조하신 형상, 곧 본질적으로 미분화된 빛의 덩어리로 본다. p440'
받은 알 것 같고 반은 미궁에 빠트리는 이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니 명상을 해봐야지만 이해될 것 같았다.
스티브잡스, 오프라윈프리, 빌게이츠 등 서양의 저명인사들이, 어떻게 명상으로 세상에 앞장섰는지도 궁금했다.
명상 정보를 검색하다 뉴욕도심 한복판에 명상버스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봤다. 유명한 건축가와 조명업체가 함께 설계해 led조명시설, 오디오시설 아로마 테라피까지 갖춘 최첨단 미래시설 같았다. 바쁜 직장인들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이 버스를 찾아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복 받고 있다고 한다. 명상은 평화와 안정, 조화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전통과 현대적 사고, 첨단 기술을 융합한 명상버스는 시선을 이끌고 있다.
기업들 또한 명상을 깊숙이 도입시키고 있다. 애플은 물론 구글은 직원들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마음 챙김 명상법 7주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이다.
명상은 불교에 뿌리를 두었지만 기독교가 중심인 서양문화에서 붐이 일고 있는 건 세계적인 트렌드로 보인다.
얼마 전 유럽여행 중 방문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 고가의 명상 도구들이 큰 섹션을 차지고 있던 풍경이 문뜩 떠올랐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부처님 머리상과 세숫대야 만한 종을 팔고 있다면 그 인기와 구매도를 실감할 만하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뇌 과학적 접근으로, 마음 챙김이나 명상을 학교 수업 과목으로 채택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명상이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수행자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명상에는 무언가 큰 매력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