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은 사회학자가 만들어낸 거짓말’이라는 친구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누구 하나 부인하지 못했다.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행복의 음모론'을 꾸며낸 친구는 정답이 없는 세상이 어렵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행복이 별게 있겠냐며, 이렇게 건강하고 가족과 친구가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을 냈고 모두들 끄덕거리며 어설프게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각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하나씩 떠있는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행복의 의미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저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를 텐데 어째서 우리는, 누군가 제시한 의견 안에서 통일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 행복 찾기는 생각해 볼 겨를 없는 어려운 주제였다. 생사를 넘나드는 동화 속 주인공인 왕자나 신데렐라 급은 돼야 행복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와 상관없는 아주 먼 이야기 같았다.
음과 양이 하나가 되듯 불행과 행복은 한 세트다. 우리는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에 불행을 겪고 있는 중이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죽을 만큼 불행해봐야 행복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도 공황장애로 숨을 쉴 수 없게 되어서야, 숨 쉬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듯이.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숨쉬기를 해내고 지극히 당연한 일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불행 끝에 붙어있는 행복이 곧이어 따라 등장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행복을 정의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금수저 왕자도, 예쁜 신데렐라도 아니라는 현실에 한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문제'라는 불행을 만나면 곧 이을 행복이라는 또 다른 문을 열 수 있다는 걸 안다. 물론 문을 열기까지의 고통은 여전하다. 태극모양 안에 꼬리와 머리가 서로 맞닿아 하나가 되듯이, 불행과 행복이 한 세트인 것은 확실하니 조금 더 힘을 낸다. '문제'로 보이는 '태극'의 작용은 심장이 뛰는 한 끊임없이 계속 반복될 테지만 한지점의 사건으로 더 이상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움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무언가를 찾아 나서도 이 작용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문제’로 보이는 문을 열어야 한다면 '자유의지'로 원하는 방향에 있는 쪽의 문을 힘차게 밀어보는 거다.
우리는 확률을 배웠고, 성능 좋은 계산기도 갖고 있다. 실패할 확률이 50% 이상인 일에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낭비가 될 수 있고 잘못되면 감정 소모도 클게 뻔하다.
잘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것들을 분리해 뇌 속 폴더에 정리했다.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폴더에 들어있는 항목들은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확률을 아는 똑똑한 에고가 패스한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합리적이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것에만 심사숙고 끝에 도전한다. 나 또한 가능성의 폴더에 있는 경험을 꺼내 되풀이하며 실패 없이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삶이 늘 똑같았고 사는 것이 지루했다.
현재의 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능성의 폴더 밖의 호기심 폴더의 데이터를 골라 도전해야 한다. 춤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춤을 배웠고, 어색한 마음으로 감사일기도 썼다. 버스를 탈 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목전에서 맴돌기가 일쑤였다. 난생처음 혼자 살아보기도 하고 들어만 봤던 명상을 한다고 책을 보고 어설프게 흉내도 냈다. 꺼리고 하찮게 여기던 것들 속에서 벽으로만 보였던 미래로 통하는 새로운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험한 모든 것들은 내 인생에 반짝반짝한 보석이 되었다.
우리는 사주를 받아 들고 세상에 태어난다. 사주팔자는 음양오행을 분석한 통계로 개인이 가지고 태어나는 개성과 경향성이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운이 정해진대로 흘러가게 된다.
나도 사주에 정해진 데로 사업자 성향으로 운 좋게 국가사업 지원금을 연속해서 지원받을 수 있었고, 8~9년 주기로 거액을 도둑 맞거나 떼였다. 사주에 나와있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주기별로 몽땅 없어질 돈을 뭐 하러 열심히 벌 것이며 우울증 기질을 갖고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비슷한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주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찾아보기로 했다.
사주는 분명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바뀔 수 없다면 천지만물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위배되니, 일정 요건에 부합하면 바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변하기 힘든 것이 '환골탈태' 즉 독한 마음으로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운명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주팔자를 고쳐쓰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나의 경향성을 알아야 했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피하기만 하던 작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했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행동으로 기억하는 습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그 습관이 당연해지고 또 다른 습관이 굳어져, 예전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의 내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올해가 가기 전에 물이라면 일단 피하고 보는 내가 수영강습에 등록할 계획이고 타로카드도 배워 볼 예정이다. 습관이 된 도전은 늘 그렇듯이 장애물로 보이는 문과 함께 등장할 게 뻔하다.
새로운 시작을 할 때면 의례 만나는 미로에 갇혀 힘들어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이 ‘요번엔 또 뭐냐며’ 핀잔 섞어 말할지 모르지만, 바닥을 치면 그 후로는 올라갈 일만 남는다는 걸 알기에 또다시 도전을 즐겨보기로 한다.
우리 모두는 자아의 신화를 살아간다.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일들은 확률로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던 나는 늘 우울했다. 절대 통과할 수 없어 보이는 콘크리트벽에 문이 있다는데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부딪쳐야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마음으로 문이 있다는 곳에 문이 있다는 상상을 하며 나를 얼르고 달래 변화의 무대에 올랐다.
일단 비워야 새로워질 수 있다는 말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실천하며 나의 우울증 공황장애 극복기가 시작된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단순한 비움으로 한 시작은 또 다른 예기치 못한 행동들로 연결됐다. 모두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들이었지만 ‘행동하기로 한 작은 결정’들이 모이고 쌓이니 벽에 진짜 문이 생겼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 문이 열렸다.
겉보기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문 너머로 들어온 이곳은 편안하다. 착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풍요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찾았으니 배우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 모든 것이 '빛'이라는 세상과 만났다. 자기만 우선시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언젠가 인과의 법칙으로 조정받게 되는 '균형의 법칙'도 배웠다. 결국엔 큰 하나로 완성되어과는 작용을 알지 못해 세상살이의 일부분만을 보고 억울했고 슬펐다. 눈앞에 불행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행복'하기로 결정한 우리는 더 이상 정해진 운명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창조자가 되었다.
내 삶의 스토리를 말한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구학교 숙제가 끝난 것 같아 후련하기도 하다. 누군가 나와 같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글을 쓰며 몰입해 있는 동안은, 천국 문이 빼꼼하게 열려 힐끗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한 세상에 사는 상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