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입질의 추억이여.
학창 시절 아침 등교 시간은 늘 분주하다. 그 시절은 아늑한 밤의 시간을 더 즐기는 시절만의 낭만이 있는 터라 새벽잠이 늘 고팠고, 5분만, 5분 만의 게으름이 30여 분의 시간을 잡아먹기도 하기에 발 빠른 행동은 도움이 된다.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엄마가 정성스레 싸 주신 도시락을 챙겨 들고 30여분 거리의 학교로 출발한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출발하지만 초 다툼으로 등교 준비를 했음에도 교문을 앞두면 뛰는 일상은 한결같다.
교문을 지키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 교문이 닫히기 직전에 교문을 통과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할 만큼의 위기상황에 근접한다.
학생주임 선생님은 단 1초의 지각도 허락지 않겠다는 의지로 연속적 시간을 체크하고, 간신히 교문을 통과한 나는 1초의 가름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계절이 침묵의 시간으로 바뀔 즈음부터는 교실로 들어서면 늘 먼저 하는 일은 난로 앞에 모여 도시락을 난로 위에 얹어 놓는 일이다.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거부하기 위한 기초 행동으로 친구들이 교실에 들어오면 들어서는 순서대로 도시락은 탑을 쌓아 간다.
오독오독 씹히는 고소한 누룽지 밥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서슴없이 도시락과 난로와의 밀접한 접촉을 시도하고, 늦 들어온 친구들은 맨 꼭대기의 아찔함을 느끼며 로열층으로의 진입에 기대를 걸며 시간에 순응한다.
어느 만큼 시간이 흐르면 도시락의 위치는 필히 바뀌어야 탄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지루한 기다림에도 늦 주인들은 동요함이 없다.
지금은 학교에서 주는 급식으로 점심 끼니를 때우지만 우리 시절은 도시락이 유일한 끼니 대용이었고, 밥 위에 계란 부침이 널찍하게 얹어져 있으면 그나마 화려한 도시락이었다. 개중에는 한참 먹을 나이에 아침을 거르고 온 탓인지 수업시간에 몰래 도시락을 까서 먹기 시작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짜릿한 경험을 안 해 본 친구는 거의 없을 정도로 나도 그 대열에 간간히 끼어들곤 하였다.
새벽잠에 겨워 아침을 거른 날은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꼬르륵 거려 수업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정당한 이유를 세워 놓고 소심한 일탈을 계획, 시도한다.
선생님이 돌아서서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 우선 최대한 소리를 줄여 살그머니 도시락 뚜껑을 연다.
우리 시절에는 도시락 내에 반찬 그릇이 함께 있어 마른반찬을 담기도 하였고, 도시락도, 젓가락도, 양은이나 스테인리스 재질이라 달그락 소리를 최대 줄여야 했으며, 도둑 입질을 위해서는 냄새 유발 물질의 반찬은 절대 안 되는 이런저런 고충이 있었다.
일단 밥 한 술을 뜨고 선생님의 행동을 관찰하며 기회 포착을 위해 대기상태로 저작운동의 시작을 조절한다.
선생님의 칠판 쓰기가 지속적 행동으로 이어지면 효과적 입질이 가능하겠으나, 선생님의 칠판 작업은 아이들 학습태도도 함께 주시하며 수업을 진행하기에 도둑 입질은 그리 수월치가 않다.
선생님이 칠판을 향해 돌아서 설명을 시작하면 첫 입질이 시작된다. 기다림의 갈증에서 오는 배고픔인지, 시장이 반찬이 되어 그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달콤하고 고소하고 짜릿하다.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향하여 돌아서신다. 우리를 향하는 눈빛이 날카롭다.
우리는 시선이 마주치지 않아도 열일하던 저작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수업에 몰두하는 학생의 자세를 취한다.
입안의 즐거움은 뒤로하고, 시선은 칠판을 향하여 열공하는 척하며, 표정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고개는 가끔 한 번씩 끄덕여주며 이해의 표시를 보낸다.
초 단위로 작업이 진행되면 어느 사이 빈 도시락이 시간을 알리며 수업이 종료된다. 45분에 걸친 짜릿한 작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락 까먹기 행동은 허기진 배를 채웠다는 만족감보다는 들키지 않고 작업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간혹 가다 도둑 입질을 하다 들키거나, 도시락을 엎은 친구들도 있는데, 그 친구들은 여지없이 먹던 도시락을 들고 벌을 섰으며 그 와중에도 선생님의 시선이 분산될 때를 노려 도시락 반찬 하나씩을 집어 먹으며 주변 친구들을 웃게 만들기도 하였다.
드디어 오전 수업이 끝나고 배고픈 청춘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도시락을 먼저 까서 먹은 친구들은 매점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고, 누룽지가 된 도시락 주인은 오독오독 간식처럼 누룽지를 즐기며, 일부 친구들은 도시락에 고추장을 넣고 나물 반찬들을 섞어 넣어 쉐키쉐키 흔들어 비비며 맛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그 흔드는 행동 자체가 식욕을 상승시켰음인지 그 비빔밥은 일품요리가 되어 맛은 최고가 되는 것 같다.
일부 점심 도시락의 순시를 끝낸 청춘들은 한결같이 매점을 향하여 돌진하고, 크림빵이며 단팥빵, 라면땅이며 인디언 밥 등 여러 종류의 간식거리를 사들고 교실로 들어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 점심시간을 끝낸다.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들인데, 지금도 마음은 여지없이 그 시간들 속에 즐겁게 머물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할까. 흘러간 시간이 아쉽다고 할까나.
그리운 시간들이 있기에 돌아보는 추억의 시간에 의미도 있겠거니 생각하며 양은 도시락, 석탄 난로, 주전부리, 친구들의 재잘거림, 도시락의 추억 모두가 행복한 시간들이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그 시절의 친구들도 모두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