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반의 확률
우리 세상살이가 생각한 대로 수월하게 잘 풀리고 원하는 결과치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유쾌할까만, 세상사가 어디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고 뜻한 대로 일이 잘 풀려나가겠는가.
오히려 어긋나게 돌아가는 게 세상사이다 보니 참 고민거리도 많아지고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복합적인 감정들도 수두룩하게 쌓이게 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레스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세상살이와 직면하게 된다.
경쟁 사회에서 끊임없는 노력은 계속해야 하고, 우열(優劣)의 현실과 맞서야 하며, 과정의 중요성보다는 결과치에 집중하는 사회적 인식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일의 흡족한 결과는 당연히 중요하며 그에 따른 노력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러나 과정의 체험을 통해서 학습함으로 얻어지는 경험치는 차후 만족한 결과를 내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므로 일의 성과 여부와 무관하게 그 가치는 더 값지다는 것을 누구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인데, 사회적 분위기나 사람들의 인식은 그에 머물지 않고 최고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가끔은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운 좋은 사람을 보게 되면 상대적 이질감과 박탈감을 느껴 되는 일이 없다는 푸념과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삶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에 끌탕을 하며 고민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보면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 선상에서 지향하는 방향의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늘 상 심사 숙고하며 그 희망을 이루는 마음의 나라를 매일매일 건설하고 사는 것 같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 지향점을 향해 전진 전진을 거듭, 소망을 성취하려 애쓰지만 막상 선택의 기로에 서면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선택지보다는 역 방향의 선택지를 잘 고르곤 한다.
운이 없어서인지,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반반의 확률에도 거의 원치 않는 방향의 선택지를 굳이 찾아 고르는 듯이 고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가벼운 예를 하나 들어보면, 유아(幼兒)들이 독립적 행동을 시도할 때 하는 행동 중 하나인 혼자 신발을 신는 행동을 관찰하면, 희한한 것이 대부분은 짝짝이로 신발을 골라 신곤 한다.
인지력이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불편하고 갑갑하다고 느낄 것인데, 유아기 아이들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성취감으로 인하여 우쭐거리며 즐거워한다.
물론 조금씩 성장하면서 인지력이 발달하면 편한 방편을 찾아가겠거니 하지만, 바꿔 신어 불편하겠다는 개념이 우리 오랜 습관에 의한 일관된 생각인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개념 정리를 스스로 해 보며 나름에 띠라 하는 행동이니 정답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가 겪었던 황당하면서도 억울하기도 한 게임 아웃의 이야기도 하나도 있다.
상황 설명을 하자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네 명, 참외는 달랑 두 개, 점심을 먹고 난 후라 과일이 당기는 시점이었고 어디 누구 하나 먹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여 네 사람이 참외 반쪽씩을 나눠 먹기로 하고 둘둘씩 짝을 지어 각자 참외 한 개씩을 골랐다.
한 팀은 참외의 노란 색깔과 짙은 향을 보고 맛을 짐작하여 골랐고, 다른 팀은 나머지 하나 남은 참외를 그냥 선택하여 먼저 껍질을 벗겨서는 둘로 나누어 먹으며 비교적 맛이 괜찮다며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맛있는 참외라는 확률적 성공을 기대하며 참외를 먼저 고른 한 팀의 참외 맛은 어떠했을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참외는 골아서 먹을 수 없었고, 그 뒤처리를 하느라 힘들었으며, 게임에서는 참패, 눈으로만 즐긴 꼴이 되었다. 그나마 참외를 맛있게 먹은 팀에게 박장대소의 선물을 안기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의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 정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한다.
둘 중의 하나인 선택지에서 조차 원하는 것을 고르지 못하니 다수의 선택에서의 확률 정확성은 가히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더구나 인생의 중대 결정에서 선택지를 고를 때, 목표 지향으로의 성공 확률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막하기만 할 것 같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전제를 붙이고 생각하면 마냥 행복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가질 수 있다면의 전제를 두면, 도전의식도, 성취에 대한 만족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소중함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원하는 대로의 욕심이 서로에게 위해를 가해 아비규환의 세상도 경험케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도 더불어 하게 한다.
일에 대한 성취와 기쁨은 도전함으로, 노력함으로 값지게 얻어지는 결과이다. 노력 없이 쉽게 얻어지는 결과는 쉽게 잃어버리거나 그 가치를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우리 삶의 중요 포인트에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선택의 순간이 도래하면, 운명의 신의 자비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잘 고를 수 있도록 초능력의 힘과, 투시의 능력을 동시에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바람은 욕심에 근거한 과욕으로서의 선택에 능력 사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에 조그만 여유를 갖기 위한 마음에서 능력 사용을 소원하고 자비를 구하려는 것이다.
간혹 가다 공짜로 얻어지는 소소한 기쁨에도 큰 감흥을 받기도 하기에 그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조금은 나태해지더라도 삶의 중요한 순간에 최적의 선택지는 늘 우리 편이길 기원하며 50% 이상 확률게임의 성공이 있더라도 여전히 인간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의지의 생활인이기를 또한 기도한다.
기대하지 않던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조바심 내며 이뤄지길 바라는 일은 비껴가며 속을 태우므로 허락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심술은 거두고 노력한 만큼의 가치는 인정되는 세상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