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사랑

by marina


-있는 그대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 그만큼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내 마음속의 나. 내면의 나 자신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운데 남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 비밀의 문을 열 수도 없을뿐더러 그 문을 열었다 하더라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하기보다 나를 먼저 살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그에 동조하고 행동하는 것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위로하는 길이고 나의 편안함이 곧 남을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근래 들어 기온이 급강하고 바람도 성난 듯하여 매일 반복하는 걷기 운동도 생략하고 집에서 숨쉬기 운동만 하기로 마음먹고 '멍 때리기'를 하던 중 갑자기 '나는 내 아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나'라는 물음표가 떠 올랐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터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온전한 마음으로 라는 건,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적 기복의 변화를 차단하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조건 없는 고결한 마음 그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과연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은 떨쳐 버리기 어려웠지만, 만약 이러한 마음이 동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여기에는 필시 어떤 조건이 붙는 상태이거나 특별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가슴 깊이 와닿는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건, 온 마음을 다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롯이 사랑의 방향이 한 곳으로만 집중되어 자신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고,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마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주는 그런 마음의 존재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조건 없고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부모님의 여러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조건이 있는 사랑도 많이 있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녀를 사랑으로 품는 부모님의 넓고 깊으며 그윽한 품은 지극하고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 부모님에 대한 우리 사랑의 정도를 물으면 '온전한 마음으로'라는 고결함에 대입시킬 수 없는 마음이고, 받은 만큼의 사랑이라고 답할 수도 없는 마음인 것 같다.


부모님에게 아무리 큰 사랑을 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도 극진한 마음으로 그 사랑에 답하여 부모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문 일로 여겨지며 진정으로 효자, 효녀라고 칭송을 받는 자녀는 요즘 같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 환경 안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끔은 언론매체를 통해 부모를 홀대하고, 외면하며, 배척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보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부모로서 보호의 책임과 의무, 최소한의 역할을 행하지 않고 외면했다면 자녀에게 최소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는 어른으로서 역할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 그만큼 윗사람에 대한 치 사랑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리사랑이 듯, 우리 자신이 부모님의 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대물림받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마음을 다 하도록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랑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보고 접하게 된다.


때로는 지나친 사랑으로 아이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해서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의 구분을 가르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허용하는 일로 빈축을 사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되는데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사랑할수록 사회인으로 올바른 성장을 돕는 것이 부모로서 행해야 할 도리이다.


안 되는 것의 정의를 가르치는 것이 창의적 생각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착각하여 해석하는 것은 경계를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일로 자녀의 바른 성장에 태클을 거는 것이며 나아가 사회인으로서 역할에 제약이 생길 수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부모님의 사랑은 오로지 자녀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우리가 애틋하게 부르는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에서도 들을 수 있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생략'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생략'


이 노랫말처럼 그 마음과 정성을 생각하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너무 허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노래의 내용을 보더라도 부모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보다 자녀로 향하는 사랑의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자기 분신인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하는 당연한 생각까지도 든다. 물론 이런 마음이 정당한 논리하고 말하지는 않지만, 부모보다 자식을 더 위한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어쩌면 그 행동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수집단은 가정이 형성되고 가족이 생김으로써 시작되며, 그 가정 안에는 떼어지지 않는 끈끈한 정과 순수한 사랑으로 채워진다.

어떤 필요에 의한 조건이 아닌 소수의 공동체 안에서 부모와 자녀, 가족이라는 혈연관계로 맺어져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공유하는 사랑의 감정인 것이다.

물론 부모의 인성이나 습관, 자녀를 대하는 태도, 부모의 가치관, 환경적 여건 등등으로 인해 사람마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사랑의 온도가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순수한 사랑의 깊은 뿌리는 가정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내 편이라는 신뢰가 형성되며, 사랑이라는 끈끈한 정이 생겨 함께 뭉쳐질 수 있는 특수한 관계이다. 그렇다고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서로 간 온전하다 할 만큼의 마음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긍정의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간에도 각자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이해도를 달리하고 감정의 척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온전히'라는 마음은 성립되지 않는 조건이 된다.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 온전히 그 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것에는 언제나 의문이 따른다.

부모님의 진정한 사랑을 보고 온전한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지만, 그도 사람에 따라, 여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고 듣고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사랑의 한계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붙이면 말이다. 하여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사랑, 온전한 이해와 온전한 포용이라는 건 인간관계에서 완성의 의미로 인지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비교적 희박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자체가 완벽하지 않은데 완성의 의미, 그 관계라는 게 성립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복잡한 세상사에서 자신 하나 챙기기 어려운데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부 예외를 둘 수도 있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온전함이란 신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없어 어머니에게 그 의미를 부여하여 신의 사랑을 대신 전하라 하였다지만, 어머니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지라 때로 신의 사명을 거역할 수도 있음을 이해하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온전함으로 향하는 지극 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한 마음으로 온전하게 사랑하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온전하게 포용하는 완벽한 완성은, 어머니만이 극복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어려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결론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도 그 완성의 길로 들어서 자녀를 온전히 포용할 수 있도록 깊은 사랑을 키워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자녀 또한 부모님의 그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자녀에게 주는 그 반만의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자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함께 해 보게 된다.


주고받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선한 영향력은 급격하게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서서히 물들어 가며 확대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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