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에서

심중소회

by marina



오랜만에 복잡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니 가을 초입으로 들어선 농촌의 길목은 한적하고 고요하며 한가롭기 그지없다.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들만이 오밀조밀 모여 외로운 가을 길에 풍요를 선물한다.

원두막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도, 오곡백과의 풍성한 결실을 탐하는 손 바쁜 모습도, 상수리나무 아래 떨어져 뒹구는 도토리의 가을 이야기도, 코스모스의 엷은 미소와 미세한 흔들림을 함께 하는 적적한 바람의 수줍은 몸짓도, 지나갔거나 아직은 오지 않은 시간의 초입인 가을 길목이기에 더없이 그러하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일상은 감성이 살아 숨 쉬는 설렘이나 기대감은 없어지고 늘 새로운 날의 익숙함으로 시작되어 단순함으로 하루 일상을 끝내곤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낙오된 듯한 생활 모습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 조건들이 여유보다는 조급함을, 도전보다는 포기를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러 무기력해졌다는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아무튼 거울로 보이는 내 몰골은 그러하였고 마음까지도 허탈한 그런 마음이었다.

그로 인한 마음속 분노와 자책은 극을 향해 달리고 스스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토닥임은 그 효력을 보지 못한 채 나 자신을 외면하는 무심한 방관자가 되어 시간을 낭비하고, 내 역할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그에 어울리는 순수한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하나라도 치고 올라서야 하는 생존본능의 치열한 경쟁은 내게 부합되는 조건이 아니었고, 현실과의 괴리가 한계치의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 공간에서 나는 승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의지박약 했다.


봄과 여름이 그렇게 시간을 달리며 힘겹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와 더불어 살며 수많은 불만과 원망과 불안과 미움으로 나날이 시들어 갔다.

의욕이나 도전이란 단어는 내 생활 속에 존재치 않았고, 만사가 '귀찮음' 딱 그 단어에 꽂혀 허송세월의 극치를 보였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내 고통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교묘함을 보이며 생활 속에 먼지처럼 남아 있었다. 야금야금 나의 감정을 갉아가면서.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 길목으로 들어서는 초입부 어느 날에 난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차분해 짐을 느끼며 '운동을 해야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고 의욕이 생겨나기에 마음만큼이나 빠르게 발걸음은 밖을 향하여 걷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맑고 인적 드문 거리는 한가롭기 그지없어 마음이 편안해 좋았고 미약하나마 마음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일상이 조금은 편해지고 여건이 낙낙해지며 내 위치의 자각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가 나를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지나 놓고 생각해 보니, 결국은 이런저런 헝클러 진 감정들은 시간의 해결이었고, 감정의 다독임이었음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구나 자기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세세하게 평가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의 망각에 기대어 전반적인 삶의 여정에 대한 자체 평가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개개인의 복합적인 감정의 집합체로 인한 갈등에 삶이 힘겨워지고 고달파지는 무리수를 피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생존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과정 하나하나를 되짚어 극심한 감정노동을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순간에 열정을 다하고 결과에 순응하며 새롭게 헤쳐 나가면 되는 것을.

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허무한 것 같다.


오늘도 어느 때쯤인가 처럼 가을 길목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거리는 한가롭고 고요하며 한적하다.

내 젊은 날 이때쯤의 거리는 많은 사람의 도시 사냥에 한가할 틈이 없었는데, 지금의 거리는 대낮임에도 드문드문 사람의 흔적이 보일 뿐 아름다운 자연만이 한가로이 계절 안에 머물러 그 쓸쓸함이 더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독과 외로움의 감성이 계절 안에 머무르니 계절 가을의 기품에서 고상함도, 그의 고뇌도 가슴으로 전해져 와 오늘은 그에게 필히 나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최애의 계절 가을 그대여, 나는 그대가 좋습니다. 나의 고백을 받아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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