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을 위한 너인 줄

행복한 동행

by marina


4월의 싱그런 초록 바람이 겨울 나라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하게 성질이 드세기만 하고, 마치 바람에 물결 일렁이듯 나무 잎새마다 흔들림도 격하고 매섭기만 하다.

거센 바람에 내 얇은 블라우스도 함께 어우러져 야속할 정도록 펄럭여 초록초록하게 물들어가고, 그 바람 지나는 길에 내 서성거림이 괘씸죄인지 그의 서늘함이 더더욱 내 옷 깊숙이 파고 들어와 나를 일시에 굴복시키려는 듯하다.

바람 지나는 길이라 해도 내 가던 길이 있으니 되돌아 설 수도 없는지라 미리 준비한 내 방호복 하나를 더 걸쳐 입으며 그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 대면서 두서없는 바람에 나 혼잣말로 짜증스럽게 한마디 톡 쏘아붙인다.


'너 길 잃은 북풍여. 시도 때도 없이 이게 무슨 난리야. 네 갈 길 찾아가!'


하루에 한 시간씩 일과로 하는 운동을 실행하러 나왔다가 거센 바람에 굴복하여 다시 집으로 귀가할 뻔하다가 방호복을 하나 더 걸치고 나니 견딜만하여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와 함께 길을 걷기로 한다.

계절에 걸맞지 않은 바람 탓인지 거리에는 적막감이 흐르고 인적이 드문 거리는 쓸쓸하지만, 친근한 사람과 둘이서 나란히 숲길을 걸으니 나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기는 하다.


이따금 씩 아침 새소리만이 우거진 나무 숲길의 정적을 깨고, 거친 숨결의 바람도 제 길을 찾아갔음인지 고요함만이 머무는 나무 숲 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숲길을 함께 걷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 간 말도 없고, 스침도 없이 그저 걷는데만 집중한다.

간혹 가다 한 둘씩 지나는 사람들도 침묵을 고수하며 걷기에만 열중하고, 우리 또한 묵계로 이어진 30여 년 지기이므로 소소한 것은 모두 초월한 동지이기에 스스럼이 없으며,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서로의 생각에 빠져들어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음에도 각자의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양 아랑 곳 하지 않고 사뿐사뿐하게 걸어간다.

어쩌면 깊은 사색에 빠져 운동의 의미부여보다는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갈래 길로 들어서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발걸음들이 잠시 멈춰지고, 갈래 길의 선택에 눈빛을 서로 교환하며 다시 같은 길을 혼자인 양 걸어가는데, 순간, 마음에 꽂히던 그의 눈빛이 생각나 뒤를 돌아보니 그가 눈을 치켜세우며 '왜?' 하는 눈빛을 보내며 다정히 미소 짓는다.


그는 늘 그랬다. 일상에서 다정한 말투와 나에 대한 존중과 무한 신뢰를 언제나 표시하곤 하였다.

그것이 무심한 성격 탓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존재에 대한 무한 신뢰는 늘 나를 편하게 하곤 하였다. 그러함에도 이기심이 조금 더 강한 사람이라 때때로 나를 섭섭하게도, 답답하게도 하였지만, 자기 삶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니 누구를 돌아볼 여력이 그렇게 많았겠나 싶어 나 스스로 토닥이며 그나마 내 감정에 동조하는 그를 이해하며 견뎌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공감력에 대한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로 늘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고 어느새 우리는 백발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도달해 있어 허무한 마음에 폭풍이 몰아치지만, 미운 감정이 앞섰던 마음에는 애잔함이 들어서는 것 같아 이제야 서로를 진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세월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갈림길에서의 다정한 미소에 내 마음이 동하였음인지 막바지로 들어선 숲길은 둘이서 보폭을 맞춰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

침묵 속 생각은 다르더라도 30여 년 지기로서 함께 가는 연륜의 길이 의지가 되길, 그리하여 함께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그를 보면서 따뜻한 내 마음을 텔레파시로 '마음의 편지'를 전해 본다.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다정한 눈빛에서 나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보았어요. 그대만을 위한 너인 줄 알았는데

그대 안에 내게 보내는 사랑도 있었군요.

지금 그 마음으로 늘 나를 바라봐 줄래요. 내 마음이 이렇게 설레는 건, 그대 사랑 안에 내 사랑도 함께 머물러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함께 걸어온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얼키설키 어긋난 감정의 벽은 이제 삭혀 허물어지고 쌓인 정으로 동지애를 느꼈음이겠지요.

우리 그렇게 살아봅시다. 곁에 있어도 늘 애틋함과 그리운 사람으로 그렇게 사랑하자고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마음, 그건 찐 사랑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연륜이 쌓이니 그게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당신은 늘 그랬을 거지만.


내가 좋아요? 내가 예뻐? 당신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있는 것 같아요? 나를 바라보는 그대 마음만큼 당신도 이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당신도 동행하는 길에 건강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야 우리가 되는 까닭은 사랑과, 인내와, 책임의 힘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서로 힘을 냅시다.


사랑합니다! 나의 동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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