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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선영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젯밤 꿈에 네가 죽었다며 오늘 하루 조심하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구두를 벗어 조수석 아래에 놓아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 답문을 보냈다.
- 그래. 조심할게. 고마워.
- 잘 지내지?
선영이 물었다. 나는 답문을 보내려다 말고 선영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선영의 프로필에는 두어 살 된 여자아이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주스 컵에 담긴 빨대를 입에 물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였다. 사진 옆에는 ‘아무렴 어때’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렴 어떠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어서 저런 문구를 써놨다고 나는 짐작한다. 정말 아무렴 어떠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문구를 써놓을 리 없었다. 프로필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자’라고 적어 놓은 사람치고 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한때 ‘차분하고 고요하게’라는 문구를 내 프로필에 써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내 마음이 어찌하지 못할 만큼 혼란스럽고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선영과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했는지 헤아려보니 2년 전이었다. 선영을 마지막으로 본 건 4년 전, 선영의 결혼식장에서였다. 선영은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했다. 그날 나는 좀 울었다.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절을 올리고 선영의 부모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선영의 등을 토닥이는데 문득 뭉클해지고 말았다. 선영은 울지 않았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피로연까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고 정말이지 예뻤다. 보석상자 속 새하얀 공단 위에 놓인 진주 같았다. 하객들 모두 선영의 모습에 감탄했다.
신랑의 모습도 떠오른다. 눈매가 가늘었고 입술은 큰 턱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것처럼 굳게 다물고 있었다. 과묵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과묵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날 그를 처음 보았고 축하 인사 한마디 나눈 게 다였다. 결혼식장 입구에 놓인 화환으로 미루어 보아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2년 전에도 선영은 네가 꿈에서 펑펑 울더라며 잘 지내냐고 연락해 왔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그때도 지금도 잘 지내지 않는다고 말할 이유가 없었다. 어젯밤 나는 남자와 잤다. 한쪽 벽면이 유럽 도시의 풍경으로 된 모텔방에서였다. 벽지에 찌든 니코틴이 도시의 스모그처럼 자연스럽게 배어있었다. 남자가 코로나 진단 키트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나는 배달전문점에서 주는 자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 한 병을 꺼내놓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 줄이 그어진 진단 키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마스크를 벗고 담뱃갑을 열자, 남자가 재떨이에 휴지를 깐 뒤 생수를 조금 부어주었다. 친절하다는 내 말에 남자는 이를 보이며 웃었다. 남자의 목덜미에서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났다. 제모할 때가 지난 내 다리를 자꾸 쓰다듬는 건 거슬렸지만, 손가락을 잘 쓰는 점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