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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

by justit


블랙박스는 사고의 비밀스러운 원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색의 혼합에 대해 보면, 물감 같은 액체 성분은, 모든 색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고 한다. 블랙박스는 아마 모든 비밀을 다 흡수하여 사실을 밝혀줄 기록 장치라는 의미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물질이 매질이 되는 경우이고, 빛의 경우에는 빛깔을 다 혼합하면 흰색이 된다고 한다. 우주에서 블랙홀은 물질이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해 사라지는 곳, 화이트홀은 모든 것을 내어 놓아 탄생시키는 곳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세상에선, 검은색은 하얀색의 보색이다. 검은 것은 비밀스러운 것이고, 베일 뒤에 무언가를 감추는 것이라면, 흰 것은 공개적인 것이고 드러내는 것이 된다.

상징적 의미에 있어서는, 검은색은 죽음, 소멸, 음험함, 악 등을 표상하고 하얀 것은 그 반대 감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색으로 대비되는 감각을 가지고 보색, 그 반대되는 색을 적대적으로 감지한다. 그런데 보다시피, 매질이 액체인가 공기인가에 따라 모든 색깔은 한 데 뒤섞이면 검은색, 모든 빛깔이 혼합되면 흰색으로 된다.

그 둘은 충돌하고 대립하는 색으로 마주하는 것이지만, 스스로는 색깔이나 빛깔의 모든 것을 통합한 종합이다. 그런데 물감도 빛의 파장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그 색깔을 표상하는 것일 텐 데, 모든 것에 흡수되지 않는 색깔이 뒤로 남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이겠지만, 그것은 색깔과 빛깔에 흡수되거나 산란하지 않은 무색일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빈 것은 찬 것이고 찬 것은 빈 것이며, 하얀 것은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은 하얀 것이 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빛이 산란하면 낮이고, 그것이 차단되면 밤이다. 결국 색깔도 빛깔도 같은 걸 달리 두고 서로 달리 일컫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색깔은 단독이 아니다. 빨강과 노랑을 섞으면 주황이 되고, 주황+노랑은...... 하는 식이다.
그것이 색깔이면 검은 것이고, 빛깔이면 흰 색인 것으로 종합되는 걸 가지고 그토록 다툰다.

다시 말하면, 정작 공기같이 투명한 것은 색깔도 빛깔도 다 통과되어 무색으로 색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보이는 색깔, 빛깔보다는 보이지 않는 무가 훨씬 더 크게 뒤덮고 있고, 광활한 우주로 나가면 빛이 없어 오히려 충만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빛에 비치고 흡수되는 색깔을 두고 쉼 없는 색깔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인간은 속 비좁은 존재일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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