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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by justit

한참 쏟아붓던 비가 어김없이 폭염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천에 물이 불어 천지를 삼킬 듯했다. 사나운 물살에 쓸려 풀들은 저마다 허리가 꺾였다. 그런 광포함을 이겨낸 풀들은 이제 뜨거운 햇살에 몸이 타들어 간다.
"이 놈의 잡초들! 베어내고 뽑아도 계속 올라오니..."
구청의 작업 지시를 받은 관리업체 인부들이 진땀을 쏟아내며 잡초를 베어 내고 있다. 그 지독한 물살에 머리 꼭대기까지 잠겨 질식할 때에도, 밤새 거센 바람도 견뎌냈는 데, 예초기인지 삭초기인지에 동강 몸뚱이가 떨어져 나간다.
저항하다 엎어지며 신음도 못하고 잘려나간 줄기로 비린내만 사방에 흩어진다.
'잡초'
말 그대로 잡스런 풀이다. 어디 꽃이라도 예쁘게 피웠으면 한 귀퉁이 이름이라도 얻었을 텐 데....
아니면 유용한 약재로라도 쓰였으면 함부로 다루지는 않을 텐 데...
사람들은 이래저래 꽃으로, 용도로 식물을 구분하다가 그에 이르러서는 이름을 다 붙이지 못하고는, 잡초라는 것으로 뭉뚱 거려 버린다. 여기에서는 모두 평등해진다. 벌어진 아스팔트 틈새에 싹을 틔운 것이든 산삼 옆에 같이 자라던 풀이든 모두 '잡초'이다.
이름을 얻기 위해, 그리고는 세상의 빛이 되겠다는 대의가 정작 밝음을 잃을 때조차 잡초는 그대로이다. 이 익명성이 갖는 것의 이점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차피 그 속성이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 잡초는 제법 그럴싸한 이름을 얻기도 한다.
'민초'같은 그냥의 덩어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읽는다. 내버려 두면 꺾이고 베일 이 풀쪼가리들이, 어느 순간 세상을 지탱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힘없이 엎어져도, 내가 있었음을 항의하는 짙은 비린내를 내뿜는다. 잡초는 그렇다. 인간이 귀히 여겨 좋은 자리를 내어 주거나 애써 돌보지 않아도 어느 자리에든 얹힌다. 바퀴가 구르며 할퀴는 아스팔트 갈라진 틈에서도, 매일의 오물을 뒤집어쓰는 하수구 바닥에서도 잡초는 일어선다. 누가 자리를 지정하지 않더라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렇다.
그런데 그마저 제 위치를 빼앗겨 뜯겨 나간다.
그런 처사에도 애달픈 위로는 없다. 대신에,
"이놈의 잡초! 제초제를 뿌리든지 해야지 원. 성가셔서...." 하는 푸념만 함께 한다.

'grasshopper', '풀뿌리 민주주의'....
익명을 탈출하는 방법은 다른 것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잡초들이 이름 한 번 불려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은 아니다. 잡초는 그 통칭을 다른 존재에게 빌려줘 '메뚜기, 따위로 이름을 덧 얻는다.
그런데 그 명칭은 '풀 속에서 뛰는 것'으로 겨우 한구석 존재를 드러낼 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풀뿌리 운동'처럼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의 운동'같은 고귀한 정신을 고스란히 상징하기도 한다.
잡초는 이런 것이다. 그 어디에도 붙지 못할 것 같지만 그 어디에도 붙을 수 있는 무한한 개방이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나 어떤 존재에게든 밟히고 뜯겨 나간다. 감탄을 빚어내기보다는 귀찮은 존재이더라도 말이다. 꽃조차 품지 못해도, 새벽이면 이슬을 매다는 아름다움을 그린다. 언제나 그 몫은 풀밭에 앉은 나비, 바람이 지어내는 운율에 답하는 흔들림으로만 기억되지만 말이다. 잡초는 그처럼 멋진 부름을 희망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배경을 만들어 내는 고귀함이다. 짓밢히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도, 거기에서 일어서는 함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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