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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바로 해명하세요

by justit

사실 작든 크든,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던 일이 어긋날 때는 힘이 빠진다. 그 기대가 자기 욕심이나 갖은
주관적 편견이 개입되었을 때는 그 정도가 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방어기제로 사전에 실망스러운 경우를 대비한다.
"나 말고도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데...."
"이 정도 노력으로 이런 결과를 바란다면, 도둑 x 아니면 천재쯤 되는 게지!"
그런 마음 다짐을 갖고도 막상 결과가 떨어지면 어깨가 축 처져 버린다.
"내 그럴 줄 익히 알았지만, 이건 문제가 있어!"
이젠 자기변명으로 아쉬움을 넘어 심히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건 채택되는 데, 그보다 훨씬 나은 내 것은 퇴짜를 맞아?"
여전히 주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져있는 것이다.
자기 속으로 중얼거리는 이런 말들은 누군가를 마주 보며 내뱉는 항의보다 더 치열하다.
그 후로는 그런 비분강개할 일 같으면 더욱 조밀하게 준비하고 더 애를 써 구성해야만 했다는 반성이 뒤따른다. 이런 자기 확신이 자기 오신에서 나옴은 자명하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기에게는 '이만하면 됐어."와 같은 매우 너그러운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딛고 일어서라'와 같은 말은 어쩌면 너무나 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실패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죠?"
만약 이런 말을 듣는다면 대단히 충격적이다.
"세상에 무슨 가학성 xx도 아닌 마당에..."
이쯤 되면 자기변명은 궤도를 벗어나 변태를 넘은 탈태가 된다.
"아차!"
그렇다. 여전히 현상태에서 약간의 변형을 의도하고 있을 뿐, 차라리 탈태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도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 따위의 자가당착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닌가!

"피의자가 2년간 학폭에 시달리다가 전학 간 학교까지 찾아와 칼로 협박한 가해자를 떨어뜨린 칼로 찌른 행위는 살인죄입니까?"
로펌 입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이 주어지는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아닙니다. 피의자는 방어할 수 없는 상황 에서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어, 정당방위가 성립합니다."
모든 피면접자가 동일한 결론을 내릴 때, 한 사람은 이렇게 반론한다.
"네, 살인미수죄가 성립합니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어 자력구제 외에 방법이 없었다면, 위법성 조각사유나 책임조각사유가 성립할 수는 있습니다. 면접자께서는 실인죄 성립 여부를 질문하신 것이지, 처벌에 관해 질문하신 것은 아니므로 이렇게 답변합니다."
일종의 말장난 같다. 그렇지만 그 답변은 정당하다.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한 장면이지만, 답변자는 분명 통찰력을 갖고 있다. 만약 현실에서 다수가 생각하듯 이런 섣부른 결론을 상정하는 것은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무죄임을 주장하는 입장과, 죄는 성립하지만 그것이 조각사유에 해당함을 주장하는 태도는 다르다. 그 드라마의 결론은 그랬다.
"피의자가 처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칼로써 방어한 것이 사회적 상당성 판단을 곤란하게 합니다. 다만, 검사 측에서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며 정황을 참작할 때 검사 측 요청과 같이 징역 1년 3월, 이에 대해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선입견으로 무죄를 예정하지 않은 변호사에게는 그나마 자기 위안이 되는 핑곗거리를 마련해 준 걸까?
더욱 차갑기만 한 검사 측 공감도 얻어 냈으니 말이다.
쓸데없이 드라마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 눟았지만, 그런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깨달음이다. 그러면서 긴 넋두리를 가라앉히려니, 사태를 꿰뚫는 이런 혜안이
실종된 게 아닌가!
변명이라면 바로 거기에 있다. 오늘도 변명은 참으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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