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땅바닥을 쳐다보니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햇빛에 반짝인다.
"엇, 살아있는 화석 같은 동전이라니."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우려다가 금방 철회한다.
"이까짓 100원짜리 동전 하나 집어서 뭐 하게..."
그 동전은 그만 내 앞에서 무시를 당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100원짜리 동전 그 자체야 별 가치가 없지만, 100원이 모자라서 대선 공탁금을 납부하지 못하고 있다는 농담처럼, 사태의 결정권을 쥘 수도 있는 데!
그러면 2억 9천9백9십9만 9,900원은 쓸모없이 덩지만 큰돈 아닌가!
"아, 미안합니다 100원이 모자라네요. 물건 하나를 반납해야 하겠어요."
"아니에요. 다음에 오실 때 갖다 주세요"
오로지 현금만 소지하고 있으며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킷이라면 이런 사정이 통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100원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보다는, 나머지 지불능력을 유효화하는 장면이 더 크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셈에서 빼면, 전체가 무효가 되기도 하고, 기성의 고정점을 탈피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도 한다. 그 미미한 가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
여기엔 곡해된 면도 있다. 아무리 100원이 사태를 정지시키거나 회복시키더라도, 100원을 제외한 부분이 없으면 동전 하나의 역할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디밀고 3억 원의 가치를 주장하거나 음료수 한 병의 값을 치르는 셈이라 양해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슈퍼마켓 주인은 차라리 무료로 음료를 제공할 것이다.
100원이 100원으로서의 본바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럼 3억 원은 100원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어떻게 3억 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3억 원 자체라는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 100원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이다. 100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화폐 최소단위가 '전'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인위적 관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식할 수 있는 최소단위를 '전'으로 고정하면, 100원 역시 이 작은 바탕이 모여 이뤄진 것이다.
그렇게 모인 100원이 '백 원'이라고 표시되면 그래도 머리가 좀 덜 어지럽다. 그런데 '100원'이라면 갑자기 현기증이 이는 것 같다. 마치 관념상으로 '0'이 백개 모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100'은 백단위가 하나 있고, 그 아랫자리는 비어 있어, '101'이거나 그 밖에 '100'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적으로 '100'이 되려면 '10'자리 이하는 공백으로 남겨야 한다. 그럼 '100,000,000은? 그보다 훨씬 큰
천문학적 숫자에는 보다 큰 공백이 필요하다. 수용할 수 있는 여지 측면에서는 천문학적 숫자가 압도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빈자리를 메꾸는 데에는 그만큼 허술하기도 하다. 그만큼의 무시도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100'은 덜 소외시킨다. '10'자리와 '1'자리['전' 자리는 무시(?)하기로 하자!] 에서만 공백을 남기지 않는가!
땅바닥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이토록 어지러운 생각을 동원하다니!
아직 남아 있을까?
되돌아가는 길에 얼른 주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