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제 차 사이드 미러를 부딪히고 그냥 달아나면 어떡해요! 가만히 보니 운전석 문짝도 살짝 긁혔구먼."
3차로에서 2차로로 좁아지는 길에서 따라오던 화물차가 내 차를 충격하고는 그냥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화물차는 감지하지 못했는지 그냥 지나쳤다.
"뭐야 저 차. 따라가 잡아!"
신호에 걸려 바로 쫓지는 못했지만, 어느 주유소 앞에서 마침내 그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무슨 접촉하는 걸 못 느꼈어요. 근데 우리 차엔 아무런 흔적도 없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그 화물차엔 아무런 흔적도 없다.
이리저리 들러보아도 그렇다. 아마도 대형 화물차라 컨테이너 밖의 불룩한 볼트에 충격한 모양이다.
"암튼 블랙박스에 녹화되어 있을 테니 보험사에서 판정하겠죠."
며칠이 지나 내가 가입한 보험사 담당자로 부터 연락이 왔다.
"화면을 보면 뒤에서 따라오던 화물차가 합류지점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 곁을 지나면서 사이드 미러를 치는 장면이 있어요. 근데 거기는 좁아지는 도로라 직진하는 차량에 우선권이 있어서..."
"아니, 그래도 내 차가 먼저 합류해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었는 데..
"그래도 교통법규상 불리한 입장이고, 괴실 비율은 통상 7:3이나 8:2 정도임을 참작하세요."
이게 뭔가? 순식간에 피해자가 가해지가 되어버렸다. 결국 복잡한 다툼을 내려놓고는 자차 보험으로 내 차를 수리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지나고 보면 블랙박스 녹화 영상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이 많다더니 그 꼴이군!"
주유소에서 그 화물차 운전자와 이야기할 때는 자신의 과실임을 인정했었다. 좁아지는 도로임을 서로가 감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블랙박스는 그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 나의 주장이 잘못되었으며, 변명할 구실을 그 컴컴한 공간 속으로 집어삼켜 버렸다.
이 무수한 해명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지다니!
어떤 권리나 주장을 그릇된 방법으로 관철시키려는 의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세상이 보다 투명해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변명은 밝은 것에서 발생해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긴다. 다소 게림찍하다.
이 뚜렷이 보이는 세상에 활개 치는 일들이, 사실은 그 조명을 줄여나가면 삼켜진 공간에서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그런 말이 합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의사소통은 당사자가 사태를 이해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그런 수많은 불일치에서 사실은 어둠을 뚫고 삐져 나온다. 엄청난 해명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면서도 끝내 다 밝은 곳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것이 '소통'인 한에서 말이다.
그래서 변명은 필요하다. 변명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그 여지를 좁혀나간다.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물리력을 불러내는지도 모른다. 질식할 정도로 진실만 내세우니, 숨이 막힌 변명이 폭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