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질환 일기
서로 환장 할 노릇이었다. 질문을 받은 입장에선, 평소엔 남한테 관심도 없고 우중충한 마이웨이 친구가 뜬금없는 철학적 질문을 해서 난감하고, 질문을 한 입장에선 답을 기대하고 용기내 질문을 했건만, 전혀 이해도 공감도 안돼는 답만 돌아온 것이다.
서로 난감해 답답했다. 서로 이해 할 수 없어서 너무나도 난감했다. 나는 감정의 편화 폭이 적은 평온한 상태를 몰랐고, 친구들은 매일 감정 변화가 극심한 상태를 몰랐다. 서로가 서로의 '보통의 상태'를 몰라 아무것도 말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내 문제를 요약하자면 세가지로 줄여 볼 수 있다.
1. 감정에 둔하다. (아예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2. 둔해서 눈치를 많이 보니 피곤하고 에민하다.
3. 양극성장애로 인한 심한 감정기복과 분노폭팔로만 끝나는 조증.
이 세가지가 어우러져 내 대인관계는 모든 순간 엉망이었다.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겠지만, 거의 끝이 좋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아름다운 이별' 따위 없이 소위 말하는 '손절'의 수준으로 관계가 끝나는 일이 잦았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왜 내게서 거리를 두고 떠나가는지' 그 이유를 제데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날 떠나간다 거나, 타인들이 갑자기 변심했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내가 화를 내긴 했지만 그렇게 심한건 아니였는데' 라고 느끼기도 했다. 제데로 된 자기객관화도 안됐을 뿐 더러, 남들과 다른 '감정 상한선'을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감정 상한선은 글쓴이가 만든 말로 타인의 감정을 허용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상한선을 말한다-
감정 상한선은 사람마다 그 차이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평균치'가 있기 마련인데, 나의 우울이나 분노는 그 평균치를 넘어 버려서 타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수치였고, 보통의 감정들은 평균치 보다 낮아서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매사에 상황만 보고 문제해결적으로 접근해 '감정'을 고려 못하는 인간 처럼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둔하고, 눈치를 보고, 예민한 서른 하나의 미성숙한 이 사람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살면서 무슨 일을 겪었길래 자기 감정 하나 알 지 못하고 조절 못하는 미완(未完)의 존재가 됐을까?
다들 한 번쯤 이런 깊은 고민 해보는거 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곤 한다. 나의 과거를 살짝 나열하자면,
방치된 어린시저르, 충격적이었던 성추행/폭행 사건, 한 순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은 집과 그런 상황에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며 가장 노릇을 해야했던 대학생 나, 그 빚덩이를 남기고 자살한 아버지, 아버지가 자살하자 모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어머니, 친족(형제)에 의한 가정폭력, 전 애인의 반복된 바람과 가스라이팅 등등
오, 예상되는 원인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너무 많고 참담해서 일일히 서술하지 않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모두 죽는 순간 조차 미완의 존재다. 완결의 존재가 있다면 그건 끝이 정해진 영웅소설의 허구의 존재 일 것이다. 무슨 증상을 겪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았건, 과거를 자책하거나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는 그거 현재 겪는 문제의 인과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작은 실마리 일 뿐이고, 과거보단 '지금, 여기'(here&now) 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의 결론을 토대로 나의 엉킨 과거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면, '연속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미성숙한 방어기제의 발현'과 '방치된 어린 시절로 인한 대인관계 학습의 부재'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해서, '관계와 감정을 적절히 배우지 못했다' 이다.
어린 시절부터 연속된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현실적으로 '사건'을 수습하느라 그 사건을 겪은 스스로의 감정을 제데로 살피지 못했다. 나의 상담사의 말을 빌리자면 감정은 여러 크기가 있는데 보통은 작은 테니스공이 날아와 나의 다리에 부딪힌다면 '이게 뭐지?'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것의 이유와 정체도 파악해보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주머니에 넣거나 그렇지 않으면 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아주 거대한 벽이 다가와 눈앞에 갑자기 펼쳐진 상황이라 그것의 전체적인 크기도, 정체도, 이유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은 바구니에 바닷물을 담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작은 바구니로 바닷물을 담으려다간 바구니가 바다에 가라 앉거나, 바구니가 방향도 못잡고 영원히 망망대해를 떠다닐 것이다.
누군가 그 바구니를 건저올리지 않는 이상.
그럼 미성숙한 대처 밖에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해버린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많은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소를 전전하고, 스스로 공부하며 얻은 결론은 '새로운 대처 방법을 배우면 된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과거의 잘못과 그 잘못을 저지른 자신에 매몰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까지 온 자신'은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과 미성숙함을 돋보기로 들여다 보느라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성과는 바라보지 못한다.
많은 사건과 잚놋을 거치면서도 제데로 학교를 마쳤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낸 경험이 있으며, 사건들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있고, 나아지고자 하는 자신을 제데로 바라봐주지 못한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나의 과거와 현재는 아주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