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질환 일기
'새로운 대처 방법 만들기'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양극성장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건 '양극성장애 환자의 일기'니까.
양극성 장애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본적으로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지만, 보통은 조증삽화가 두드러지는 1형과 우울삽화가 두드러지고 짧게 경조증 삽화가 나타나는 2형으로 구분한다. 그동안에는 정신건강의학계의 영원한 스타 '우울증'에 가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양극성장애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럼 글쓴이는 어디에 속할까?
나는 1형과 2형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울증에도 여러 세부 유형이 있듯이, 양극성장애도 여러 유형으로 나뉘는데 1형, 2형, 급속순환형, 순환성 기분장애로 나뉜다.
나의 진단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세불명의 양극성장애'다. 상세불명의 양극성장애는 양극성장애의 특성을 띄고 있지만, 명확한 특징이 그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을 때 진단된다. 간혹 '너무 심각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심스레 말을 얹자면, 그런 것이 아니고, 여러 이유로 유형에 속하지 못했을 뿐, 다른 양극성장애보다 심각하다거나 위험한다는 뜻이 아니다.
명확한 조증이 있었음에도 병식이 약하여 의사에게 전달이 안 됐을 수도 있고, 나처럼 만성적인 환자의 경우에 여러 증상이 혼재되어 뚜렷한 특징을 찾아내기 힘들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나의 경우, 거의 몇 년 이상 우울한 사건들의 연속을 겪으며 우울한 무드가 지속되었다 보니 더욱이 우울증으로의 진단이 더 적합했을 수도 있다.
양극성장애는 처음 진단이 어려운 질병 중 하나이다. 대게 양극성장애가 우울삽화로 시작하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었다가 추후 기분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고 양극성장애로 진단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바로 이 케이스고, 이 책의 제목이 여기서 나왔다. 모든 질병이 그렇듯 개인에 한정 지어 발병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나의 경우 조증의 보고가 잘 되지 않았고, 조증의 시기가 찾아오면 '상태가 괜찮아진 것'으로 착각하여 갑작스레 병원에 발길을 뚝 끊거나,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다시 우울증이 찾아오면 원래 다니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을 방문하는 등의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양극성장애로의 진단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스스로 깨닫고 한 군데 병원을 지정하여 오래 다니더라도 나는 나의 기분 상태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자기 보고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진단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비교적 다른 질병에 비해 자기 병식이 옅기 때문에 꾸준한 병원 내원과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도, 그걸 알고 실천에 옮긴 것도 비교적 최근이다.
양극성장애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조증의 시기가 가장 힘들고 어렵다. 조증은 달콤한다. 살아가면서 우울 속에 순간순간 반짝! 하고 기운 넘치고 '살만하다'라고 느끼게 해 준다. 그게 나중에 뒤돌아보면 조증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조증으로 인해 살만해진다. 마치 내리쬐는 태양처럼, 나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 조증이다.
생각해 보면 조금 억울하다. 나는 조증의 시기에 숨이 트이고 에너지 넘치며 살만하다 느끼는데 그게 ‘증상’이라니. 나는 과연 ‘살아간다’고 할 수 있나?
이렇게까지 딥한 생각을 할 필욘 없지만 종종 조증이 끝나갈 무렵이면 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나의 경우 조증은 ‘활기참’으로 시작해 ‘분노’로 끝나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기에, 더욱 부정적인 생갓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흔히들 ‘조증’을 과도하게 밝고 명량한 상테러고 생각하는데 과민하고, 과도하게 몰두하거나, 짜증스럽고, 공격적인 모습도 조증에 포함된다. 나는 밝고 명량한 것과 과민하고 공격적인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 보통 명량하게 시작해서 공격성으로 끝을 맺으니 나는 나 스스로가 쾌활해지거나 밝아지면 스스로를 경계한다. 특히나 특별히 기분 좋읗을 일이 없음에도 그날의 기분이 ‘유난히’ 좋다면, 평소에 관심 갖지 않던 것들에 눈이 가 소비 욕구가 샘솟는다면 그건 조증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종종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이 있을 테고, 관심 갖지 않던 곳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겠지만, 하루 이틀 정도 자속되다 평소의 차분한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양극성장애 환자의 조증은 시작되면 보통 1주 이상 지속되고 그 1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한 번은 관심도 없던 화장품에 눈이 가고 외모 꾸미기에 흥미가 들어 던 피는 데로 뭣도 모르고 비싼 화장품을 몇십만 원어치를 사들이고, 마용실에서 돈을 펑펑 쓰고, 옷을 사재고, 외출할 때마다 과도하게 외모에 신경 쓰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외출 전 2~3시간씩 외모를 점검하는 게 피곤할 만도 하고, 갑자기 안 쓰던 곳에 돈을 쓰기 시작했으니 돈도 문제였지만 당시에는 그 심각성을 못 느꼈었다. 조증이었으니까. 주변에서도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나를 칭찬하고 심심피 않게 이성으로부터 대시도 받았다. 주변에 반응이 좋다 보니 나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겼었다.
조증이 사그라들고, 카드값과 더 이상 내게 무가치해진 옷가지와 화장품을 보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