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정신질환 일기
사람들을 처음 만난다면 역시 ‘자기소개’가 먼저 아닐까 라는 뻔한 생각이 들었다. 이 글 자체가 나에 대한 ‘자기소개 백과사전’ 이지만 앞으로 혼란스러울 독자들을 위해 조금 지루한 내 얘기를 해 보겠다.
나는 1995년에 태어나 올해로 서른 하나다. 어릴때 부터 ‘여자 아이 치고 사내아이 같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정도로 활발했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으며 그 활발함이 과격함으로 변해버렸지만…. 또 꽤 예쁨 받고 자란 막내 딸이지만 슬프게도 인생의 풍파를 많이 맞아 나이에 비해 낡았고 비관적이다. 첫 정신질환을 진단 받은 건 열 네살 때 였다. 지금의 상태를 말하자면 불안정하다. 위태롭다. 내가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를 적자면 끝이 없지만, 축약해서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감정적으로 마모된 상태라고 느끼고 그렇게 느낀지 아주 오래되어버렸다. 내 감정이, 내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는게 서툴러서 타인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타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렇지 않으면 곧 잘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대부분 둔한 나의 무신경함 때문이다.) 나는 둔해서, 둔한 만큼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 매우 예민하다. 딱히 의식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몸에 밴 습관인듯 나도 모르게 상대의 말투, 문장의 뉘앙스, 단어의 의미와 의도, 목소리 톤, 나와 대화하는 상대가 처한 상황 등등을 따지고 고려하게 된다. 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마다 예외는 없다. 이렇게 매번 남의 눈치를 살피며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에너지가 많이 들고 힘든 일이다.
감정적으로 둔하고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예민한 것 외에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는데, 바로 양극성장애의 특징인 '감정기복'이다.
나의 경우, 우울이 내내 지속되다가 반짝하고 2~3개월 정도 강한 조증을 경험하는데 이 조증시기를 조심해야 한다. 우울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조증은 견디기 힘들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일에 과하게 열중한다. 취미생활 마저도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듯한 태도로 밤을 새서 하는 일이 잦다. 일례로, 뜨개질에 빠진 적이 있는데 목도리 하나를 '내 마음에 들게 완성'하려고 이틀 밤을 지새운적이 있다.
저정도면 애교다. 매우 고조된 기분으로 생활하다가 한순간에 감정이 분노의 형태로 폭팔한다. 분노가 터져야 나의 조증은 끝이나고 다시 기나긴 우울이 찾아온다.
자만하는 말 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울은 긴 세월을 동고동락한 사이여서 어느정도 다루는 법을 익혔다.
적절히 움직이고(운동이던 일이던), 잘 자고,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건전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생각이 너무 많을 땐 차라리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리고 털어버린다.
한가지 사건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 처럼 들릴테지만 위에 나열된 것들을 실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저것들을 해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것들을 습관이나 루틴 처럼 게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 그런데 조증은 얘기가 다르다. 내가 공들여 쌓은 습관과 루틴이라는 공들인 탑을 웃으며 무너트린다.
앞서 말했듯, 분노가 폭팔해야 끝나는 나의 조증은 아주 가파른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 같다. 감기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소실된다면, 양극성장애는 아주 가파른 그래프들이 번갈아 가며 그려지고, 하나의 증상이 사라지면,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는 아주 골치아픈 상태이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아주 지겨운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보통의 사람들도' 이런 강렬한 기분의 변화를 자주 겪는지, 겪는다면 얼마나 자주,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보통이라고 느끼며 살았는데 보통이 아니라 하니 그럼 진짜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고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보통은 아주 큰 충격이나, 사건을 경험해야 그런 변화의 폭이 큰 감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일상에서는 잔잔한, 우울과는 다른 '편안한' 상태이고, 걱정거리가 한, 둘쯤 있어도 신경은 쓰이지만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감수성 풍부한'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감정변화는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들다고 답했고 거기에 대고 '그럼 평소에는 뭘 느껴?'라는 나의 질문에 '그냥 평범한데?'라는 알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