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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oboros May 16. 2024

insomnia 1

이것 또한 빛나는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1-

insomnia

 8월의 햇살은 너무 뜨거웠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민서처럼 과체중인 사람에겐 고역이었다. 민서는 100kg에 육박하는 몸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탈 돈이 충분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제대로 숨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을 골라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땅바닥을 보며 걷는 습관이 있었는데 2년 전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고작 열다섯이지만 그녀의 인생엔 이미 굵직한 사건들이 그녀를 가로질러 온몸을 짓밟아놓은 것 같았다. 이민서. 그녀는 그저 조용히 쉴 곳을 원했다. 그녀의 인생에 간섭한 사건들은 그녀를 무기력자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처럼 친구를 만나 떠들거나, 게임을 하거나, 티비를 보는 일도 민서에겐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향한 곳은 정신병원 이었다. 일 년전부터 그녀는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한시간을 걸어 겨우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땀범벅이 되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접수를 했다. 다행이 그녀를 오랫동안 봐온 카운터 직원이 어렵지 않게 그녀의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잠시 앉아 기다리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때 까지 민서는 땅바닥만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민서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민서의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진료실의 풍경은 단조로웠다, 의사선생님 뒤로 펼쳐진 책장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있었고 창문은 없었다. 늘 그렇듯 의사선생님께서는 “어서오세요” 하며 그녀를 반겼지만 민서는 그의 웃는 얼굴이 약간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지냈나요? 별일 없었죠?” 그가 물었다.

“네, 뭐 큰 일은 없었어요” 민서의 대답을 들은 의사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잠 자는 건 좀 어때요, 여전히 꿈을 꾸나요?”

민서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네, 꿈을 꿔요, 대부분 불쾌한 꿈들이에요”

“자다가 깨는 것도 여전하고요?” 그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네, 한두시간정도 자고 나면 꼭 깨요”

“깨고 나면 뭘 먹는 것도 여전한가요? 폭식은 좀 어때요?”

민서는 그 질문을 불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몸을 보면 금방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서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전하죠”

“약을 좀 더 늘려 봅시다. 일주일 뒤에 볼게요 늘 말하지만 병원 꾸준히 오셔야해요”

“네”


 진료는 간단히 끝났다. 민서는 잠시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돈을 내고 일주일치 약을 받아왔다. 아무렇게나 약을 가방에 쑤셔 넣고 다시 한시간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녹초가 되어 온집안의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었다. 그 다음 컴퓨터를 틀고 자신의 좋아하는 애니맨이션을 재생시킨 뒤 순식간에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 컴퓨터 앞에 가져다 놓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지만 민서는 꾸역꾸역 그 많은 양의 볶음밥을 다 먹어치웠다.


  오래된 주택인 그녀의 집은 집 내부가 나무로 마감되어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었지만 민서는 그 집을 싫어했다.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한여름엔 너무 더웠고, 너무 낡고 오래된 집이라 겨울에는 웃풍이 들어 발이 시렸다. 그러나 없는 살림에 그녀의 부모님은 집을 고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1층은 세를 주고 그녀의 가족들은 2층에 살고 있었다. 가족구성은 평범한 정상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오빠 민석, 그리고 민서. 강아지 한 마리.

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들은 조금 지쳐있었다. 아빠는 직장에 지쳐 퇴근 후에는 TV만 보기 일쑤고 엄마는 직장과 집안일을 겸하느라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더군다나 집에만 있는 민서까지 신경 쓰려니 엄마는 항상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오빠 민석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민서는 오빠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저 어서 어른이 되어서 이 집을 나가면 지긋지긋한 친오빠를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매주 받는 용돈 만 원 중에 오천 원씩이나 저금통에 몰래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모인 돈이 이십여만 원쯤 되었다. 민서는 저금통을 책장 깊숙이 넣고 책으로 가려두었는데 가끔 저금통을 꺼내 흔들어 보고는 뿌듯해하는 게 취미였다. 그리고 그녀의 강아지 ‘보니’. 보니는 어릴 적 민서가 길에서 주워와 키우겠다며 고집을 부려 가족이 되었다. 보니가 집에 왔을 때 민서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려 열여섯의 소녀가 되어있었다. 민서가 자란 만큼 보니도 나이를 먹어 열 살(추정)이 되었고 윤기 나던 털은 푸석해지고 초롱거리던 두 눈은 조금 탁해진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도 민서는 보니를 가장 사랑했다.


 지금은 오후 두시쯤 되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온 집안을 달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또래들처럼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만 민서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저 검정고시 준비를 하다가 남는 시간에는 늙은 강아지 보니를 쓰다듬거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는 보지도 않는다던가, 서투른 솜씨로 기타를 연주하는 게 다였다. 가끔 산책을 나가곤 했지만 그마저도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동네 귀퉁이를 빙빙돌다 돌아올 뿐이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민서를 ‘학교에도 가지 않는 불량학생’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불량학생보단 ‘부적응자’에 가까웠다. 반쯤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와 집에 숨어 은둔자의 생활을 했다. 그 흔한 검정고시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중등교육과정이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그녀의 자퇴(엄밀히 말하면 자퇴가 아니다. 그녀는 정원 외 관리자로 빠져나왔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특유의 고집을 부려서라도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했고 결국 원하는 데로 되었다.

 

 민서는 무기력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땐 모두가 고개를 저을만큼 엄청난 고집을 부리기도했다. 학교를 나오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민서에게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라 하소연도하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해보고 빌어도 보았지만 민서는 굳건했다. 어른들은 민서를 설득하기위해 친구들과의 우정이나 지금 이 시기에 학교에 있지 않으면 안돼는 이유들을 줄줄이 나열했지만 그건 민서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일이 되었다. 결국 정원 외 관리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여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학교에 남아있는 몇몇 친구들과는 가끔 문자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녀는 그나마 있는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건강한 편도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밖에 오래 나가있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았다.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서 떨어져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며 눈물 흘리는 엄마를 보아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녀는 사실 엄마 품 보단 폭신한 이불과 베개를 더 편안해했기 때문이다.

 

 무릎 위에서 보니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민서는 조심스레 보니를 들어 바닥에 내려주었다. 보니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걸을 때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지만 보니는 예쁜 강아지다. 민서는 보니의 눈이 참 순하고 예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니와 눈을 맞추고 서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보니도 그런 민서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민서가 자신을 바라보면 피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맞춰주었다.

민서는 보니를 데리고 짧게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창밖을 보고는 이내 포기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보니는 금방 지칠 것이다. 민서는 생각을 바꿔 밤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8월 17일. 오늘은 민서의 생일이지만 집에는 민서 혼자였다.

앞서 말했듯 민서는 친구를 잘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서 온 세 통정도 되는 생일축하 문자에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하고는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두었다. 부모님은 출근을 했기 때문에 저녁 늦게나 집에 올 것이고 오빠 민석 역시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야자를 하고 밤늦게 집에 올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늘 그렇듯 집에 혼자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민서는 생일라서 그랬는지 조금 특별한 혼자 있는 날처럼 느꼈다. 더구나 엄밀히 따지면 혼자가 아니었다. 보니가 발 밑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민서는 선풍기를 보니 쪽으로 틀어주고 주방으로 갔다. 아까 먹었던 김치볶음밥이 소화가 되기도 전이었지만 민서는 냉장고에서 사과 두개를 꺼내 또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다시 터덜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보니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핸드폰에 뜬 이름은 '혜진'이었다. 그녀는 민서가 중학교에서 사귄 첫 친구였다.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어떻게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지 의아했지만  일단 민서는 전화를 받았다.

"뭐하고 있어? 공부해?" 혜진의 목소리는 발랄했다. "아니 병원에 갔다왔어. 너무 덥다"

"그치? 오늘 날씨 장난 아니야."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야? 핸드폰 안냈어?"

"당연하지 공폰냈어, 나 걸리면 안돼 빨리 끊어야해"

"무슨일인데?"

"너 오늘 생일이잖아. 애들하고 오랜만에 만나자고 언제든 너 편할때."

만나자는 제안에 민서는 조금 망설였지만 자신을 신경 써준 혜진의 제안을 거절 할 순 없었다. "나는...그래, 다음주 주말이면 괜찮을 것 같아"

민서의 대답에 신이 난 혜진은 빠른 속도로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한뒤 수업이 시작되었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갑작스런 소식과 번개같은 혜진의 목소리에 조금 지친 민서는 다시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보니 옆에 발라당 드러누운 민서는 천장 무늬를 바라보았다. 학교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은 반가웠다. 특히나 혜진은 오래된 친구였고,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몇 안돼는 친구였기에 더욱 반가웠지만 의도치 않게 민서에게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민서는 학교와 연관된 모든 것을 끊고 싶었지만 친구들만은 그럴 수 없었다. 친구들을 떠올리는 것은 좋았지만, 친구들을 떠올릴 때 족쇄처럼 함께  떠오르는 ‘얼굴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얼굴들은 민서가 학교를 나오게 된 원인이자 민서가 가장증오하는 얼굴들이었다. 그 얼굴들이 떠오르면 민서는 늘 우울함과 무기력감을 느꼈다. 가끔은 상상 속에서 나마 그들을 이겼지만 상상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는 것은 허탈함 뿐이었다.


 민서는 조용히 일어나 책상 밑을 뒤지기 시작했다. 부모님 몰래 숨겨놓은 칼날을 찾았다. 테이프까지 둘둘 감아 손으로 잡기 좋기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민서는 그 ‘칼’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바지를 걷어 조심스레 종아리에 가져다 두었다.

그녀는 스스로 상처 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왜 그러는지 모른 채 얼굴들이 떠오를 때마다상처를 늘려가고 있었다.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엄마는 고성 과 협박과 부탁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고, 민석은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았으며 아빠는 말이 없었다.

민서는 스스로 그 행위를 일종의 벌로 생각했다.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었던 자신에 대한 벌. 왜 그녀가 스스로 벌을 주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유도 찾지 못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아”

손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손이 미끄러져 생각보다 상처가 깊고 크게 남았다.

민서는 정신을 차리고 휴지를 둘둘 말아 종아리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잠시 상처를 꾹 누르고 있다가 피가 어느 정도 멈춘 듯싶어 능숙하게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대충 칭칭 감은 다음에 걷어 올린 바지를 내렸다. 이제 밤늦게 돌아온 엄마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완벽했다. 민서는 집에서도 늘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엄마에게 상처를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엄마가 특별히 그녀의 몸을 샅샅이 뒤지는 것도 아니었다. 민서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내었을 때는 옷에 피가 묻어있거나 민서가 씻을 때 벌컥 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오면 그녀의 몸에 난 붉은 상처를 보고 엄마가 그녀를 크게 혼내곤 했다. 왜 엄마가 자신이 씻을 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민서는 늘 그것이 불만이었기에 엄마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다. 그러나 엄마에게 그런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이제는 문을 슬며시 잠그고 씻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을 싫어했다. 닿는 것도 싫어해서 늘 긴 옷으로 몸을 가리고 다녔다. 지금처럼 푹푹 찌는 여름에도 늘 긴바지를 고수하고(상처를 가리기 위함도 있지만) 최대한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고 애썼다. 민서는 누가 봐도 과체중이었고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어른들은 통통하고 얌전하니 귀엽다고 하지만 민서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서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행위도 일절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 거울을 깨버린 일도 있었다. 손에서는 피가 철철 나고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놀라 달려온 부모님이 왜 그랬느냐고 타일렀지만 그녀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저녁쯤 되고 나니 제법 선선해져서 민서는 보니를 끌고 잠시 산책을 다녀왔다. 보니는 십분 쯤 걷다가 멈춰 서서 물끄러미 민서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신호인지 포착한 민서는 보니를 끌어안고 동네를 하염없이 걸었다. 매번 산책은 이런 식이었다. 보니는 오래 걷질 못해서 어느 정도 걷고 나면 민서가 보니를 안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산책의 전부였다.

 걸을 때마다 낮에 낸 종아리의 상처가 아렸지만 민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리가 아파 천천히 걷다 보니 평소보다 산책이 오래 걸렸다. 집으로 돌아온 민서는 집안을 둘러보며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가족들이 올 것이다. 그러면 조용히 쉴 수 있는 민서의 공간은 사라진다.


 민서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입에 물고는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지난 주말에 해준 예능프로그램의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민서는 그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웃긴 장면이 나와도 민서는 잘 웃지 않았다. 별로 재밌지 않기 때문이었다.

민서는 스스로 감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 착각이었지만 무엇을 봐도 쉽사리 감정이 일거나 무언가를 느끼는 일이 적어진 것은 확실하다. 그녀는 두해 전부터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가진 정신질환의 영향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도 있었지만 이내 곧 그만두곤 했다.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현관 쪽을 바라보자 웬일인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보기 드물게 환한 미소로 품에 꼬물거리는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민서야, 엄마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그녀는 짐도 내려놓지 않고 재빠르게 민서에게 다가와 품에 안은 꼬물거리는 살구색 강아지를 민서에게 건넸다. 그 강아지는 너무나도 작아서 민서의 두 손에 올려놓아도 될 정도였다."늘 동생이 갖고 싶다고 했잖아"

민서는 강아지를 받아 든 채 두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손 위에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보니는 이제 막 눈을 뜬 거 같은 작은 강아지를 신기하단 듯이 냄새를 킁킁 맡기 시작했다.


 민서가 동생을 갖고 싶다고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아주 어릴 때였다. 누군가 돌볼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자기 여린 생명이 덜컥 다가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당황했지만 두 손안에 있는 작은 강아지를 보니 민서는 곧 기분이 좋아졌다.민서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척 좋아해서 길에서 보니를 만났을 때도 덜컥 안고 집으로 데려왔었다.

열심히 강아지 냄새를 맡고 핥아 주는 걸 보면 보니도 녀석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녀석은 깡깡거리며 우렁차게 울어댔고 배가 고픈지 민서가 먹다가 아무렇게나 놓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열심히 핥았다. 그걸 보고는 엄마는 가방에서 강아지 사료와 작은 밥그릇을 꺼내 사료를 조금 부어 강아지 앞에 놓아주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녀석은 눈 깜짝할 새에 사료를 다 먹어치워 버리고는 아장아장 걸어와 보니와 민서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민서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보나라고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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