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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12. 2024

좌충우돌 정생물의 첫 출근

신규 교사 정생물의 시작

임용 합격 후 교육연수원에서 신규 교사 연수를 받고 있을 때 발령이 났는데 나는 신설 고등학교에 발령이 났다. 고등학교 발령이 나서 정말 기뻤고, 중학교 발령을 받은 친구들도 약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개학 전 발령받은 선생님들이 모여서 업무 분장을 발표하고, 시간표를 작성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했다. 신규 교사로 완전 쫄아서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앗... 이런... 고등학교 은사님이 두 분이나 ㅋㅋㅋ 한 분은 내 고등학교 1, 2학년 담임이셨던 분인데 교감선생님으로 계신 것이 아닌가? 또 한 분은 내가 수학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이셨는데 안 그래도 신설학교라서 고1 밖에 없는 학교라 교사가 20명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그중 2명이 은사님이라니...


내 업무는 방송 및 홈페이지 담당이었고, 신규 교사를 못 믿어 담임을 주지 않겠다는 교장선생님의 의지로 비담임에 ㅋㅋㅋ 신규 교사를 못 믿어 과학 수업도 많이 주지 못하겠다는 동료 과학 선생님의 의지였는지 당시 3 단위의 고1 과학 수업 중 1 단위를 내가 배정받고, 창의적 체험활동 1 단위를 배정받았다. 당시 화학과 선생님 한 분과 생물과 나 - 이렇게 두 명의 과학 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고1 과학 안에 들어있는 물화생지 중에서 화학 선생님께서 물리와 화학 파트를 담당하고, 나는 생물과 지구과학 파트를 담당했다. 생물 교과 신규에게 주어진 창체 수업은 아이들에게 독서 교육을 하는 것이었는데 독서 교육? ㅋㅋㅋ 국어 선생님께 자료를 받아 단편 소설 읽고 네 컷 만화 그리기, 모방 시 적어보기 등의 학습지를 만들며 국어과 신규 교사가 할 만한 일을 했던 것 같다.


과학 수업은 재미있었고, 나름 잘 진행했던 것 같다. 부산 생물 임용 1등이라는 뽕? 에 차 있었으므로 학습지도 열심히 만들고, 열심히 가르쳤던 기억. 물론 잘 가르치지 못했고, 시험 문제도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허술했다 ㅋㅋㅋ 24살의 어린 신규 교사를 만나 고1부터 고3까지 과학, 생물 I, 생물 II 수업을 다 듣고 수능을 친 내 첫사랑인 첫 제자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어설픈 수업을 듣고, 정돈되지 못한 시험문제를 풀면서 공부해서 수능을 쳤으니 ㅋㅋㅋ 그래서 지금도 연제고 1기 아이들을 만나면 사과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선생님이 24살이면 진짜 어렸는데 우리가 말 안 듣고, 못할 짓을 많이 했다며 그때 데스노트에 우리 이름 쓴 거 아니죠? 이러면서 농담을 한다 ㅋㅋㅋ


방송 담당이었던 나는 개학 전에 시보기를 세팅하여 종이 제시간에 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가장 급한 업무였다. 내가 세팅을 하면 종이 잘 울리는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2월에 친구를 데리고 출근하여 부탁했던 기억 ㅋㅋㅋ 은사님인 교감선생님은 제자이자 신규 교사인 나에게 신설학교라서 방송 시설이 아주 좋으니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맡은 업무도 아니고, 나는 기계에 관심이 1도 없는 생물과인데 뭐래?' 이랬던 것 같다. 그 시절 엠지였나? ㅋㅋㅋ 물론 내 업무가 방송이라 내 자리는 교무실에서 방송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 바로 옆자리였는데 그래서 열받을 때마다 방송실에 숨어서 노래를 듣곤 하며 방송실을 내 아지트로 삼았고, 종이 치는 시간에는 음악이 켜져 있으면 같이 송출되기 때문에 듣고 있던 노래를 꺼야 되는데 노래에 심취하여 타이밍을 놓쳐 종과 함께 노래가 나가기도 했다. 그러면 방송반 아이들이 뛰어 내려와서 아 또 선생님일 줄 알았다며 ㅋㅋㅋ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20대까지만 해도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하면 친구들이 종종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말해주기도 했고, 그 시절 라디오를 즐겨 들었기 때문에 내 꿈 중 하나는 라디오 디제이였는데 방송 담당을 하니 그 꿈을 펼쳐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만 해도 방송반 아이들이 해야 되는 여러 가지 활동 중에 음악 방송이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음악 방송이었나 영어 듣기 방송이었나 방송반 아이들에게 말해서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교내에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릴 듣고, 아이들 중 몇 명이 "이 목소리 예쁜 학생이 누구냐?"라고 방송반 아이들에게 물었고, 듣게 된 대답이 "정은경쌤" ㅋㅋㅋ 아이들이 실망실망 대실망 했겠지 ㅋㅋㅋㅋㅋ


이렇게 생물 신규 교사로서 하루하루 좌충우돌하면서 설렘 가득하게 학교 생활을 했고, 3월 17일 첫 월급을 받았다. 엄청 적었다. ㅋㅋㅋ 그래도 첫 월급이라 선생님들께 떡도 돌리고, 부모님께 선물도 사드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잘 보내고 있었는데 17세 남고생에게 24세 신규 여교사는 어떤 존재였을지 ㅋㅋㅋ 인터넷에서 보게 된 이 글 보고 진짜 나도 공감했는데 ㅋㅋㅋ

좌충우돌 정생물은 남학생 반에서 창체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교실 앞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 눈물을 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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