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아침에 눈뜨면 음악을 틀고 커튼을 젖혀 활기찬 하루를 맞이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꼼짝도 하기 싫게 무기력으로 다운되어 있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안 되겠다. 나가야겠다.'
집에서만 작업을 하다 보니 답답할 땐 무조건 나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보일러 목욕버튼을 누르고 샤워할 준비를 하는데 이런....샴푸가 없다.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다른 점들이 많다. 이유는 조금 특별한 딸아이로 인해 자연스레 굳혀진 우리 집만의 규칙이 있다. 그중 한 가지.... 샴푸는 1회용만 쓴다는 사실.... 통으로 된 샴푸를 쓸 경우, 딸아이는 5일 안에 다 쓰고 말 것이다. 엄마아빠만 통으로 된 샴푸를 쓰자하니 녀석만 1회용 쓰고 있는 사실에 대해 녀석이 꽤나 서운한 눈치였다. 해서 엄마아빠도 똑같이 1회용 샴푸를 쓰고 있는데..... 오늘 아침, 샤워하려고 보니 샴푸가 하나도 없다. ㅠㅠ 우리 집이 다른 집과 또 다른 한 가지.... 딸아이의 물건에 대한 애착으로 녀석이 몰래몰래 물건들을 가져가 챙긴다는 사실이다.
하..... 마트를 갔다 와야겠다.
샤워를 하지 않은 상태라 이 몰골로 나가도 되려나 10초간 거울 앞에서 눈싸움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가자.....
<딸의 존재감이란...>
아빠가 엄마 좀 쉬라고 주하를 본가로 데려갔다.
매일.."아냐 아냐 난 괜찮아." 해도 남편은 내게 혼자 있을 시간을 의무적으로 내어 주던 일상들.... 그러다 작품을 나가는 요 며칠... 내가 예민해져 있던 탓인지 남편에게 노골적으로 딸아이를 데려가 달라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집안은 정적이 흐르고 나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또 힘들어했다.
비도 오는데 딸이 없는 아침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일단 나가자 하고 반려견 체리를 태우고 강 건너 카페에 왔다. 그 오랜 시간이 흘러도 카페 한편에 자리한 딸아이의 선물. 몇 년 전 딸, 주하가 이 카페에 선물로 주고 간 손수 만든 화분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중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엄만 본격적으로 (딸아이와 한 몸이었던) 우리의 삶들에 확실히 선을 긋기 시작했다. 엄마도 숨좀 쉬자며 그렇게 딸에 대한 신경을 끊고 지냈다. 모든 부분에서 좋은 점만 있을 수 없다는 건 한 해 한 해 삶이란 걸 살면서 깨닫기도 했다. 엄만, 딸과 멀어지는 대신 엄마의 힐링을 택했던 녀석의 중학교 3년이었다. 그날들엔 학교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았으나 학교를 탓하기 전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엄마인 넌 그럼 그때 뭐 했니?'였다. 해서 누굴 탓할 수 도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그렇게 저장이 되어있었다.
매일을 딸아이가 학교에 가면 엄만 이곳 카페로 와서 남한강을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연필하나에 작은 스케치북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며 나름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알게 된 곳이었다. 남한강 앞에 자리한 이 뷰카페.
그렇게 우린 딸아이를 키우면서 카페 하나하나, 우리의 단골로 뚫어 놓기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나 오랜만에 들렀음에도 예전 그대로의 편안함을 느끼며 부슬부슬 비 오는 날 남한강을 바라보며 반려견 체리와 함께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며칠 전. 딸아이와 함께 일상을 보내다 카페에 가서 엄만 라테 한잔 녀석은 팥빙수를 사 오는 길이었다.
사장님께 많이 달라는 녀석의 주문에 사장님이 큰 컵에다 준다 하시는 걸 많이 먹으면 안 되는 녀석이기에 늘 엄만 말리고, 늘 녀석은 많이 달라 주문을 한다. 좋은 카페 사장님들을 만나면 딸내미는 VIP손님으로 우대를 받곤 한다.
엄만 이미 커피를 손에 들고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데 녀석은 집에 가는 동안 한입도 못 먹고 귀하게 팥빙수를 집까지 모셔갔다. 이유인즉슨. 차에서 먹으면 위에 뿌려진 토핑과자들이 바닥에 흘러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깟 토핑 몇 개 흘리면 어때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식탐 많은 녀석에겐 코딱지만 한 콘푸라이트 과자하나 흘려버리면 세상 다 잃은 듯 그렇게 아까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꺼내어 봤을 땐 짠한 딸내미가 보고 싶었다.
비 오는 오늘 아침, 그렇게 카페로 가서 혼자 라테 한잔 들이켜고 돌아오는 길.
나의 작업실이자 우리의 집 대문엔 저렇게 작가의 집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초인종도 예스러운 종을 달아놓았다.
신랑의 말데로라면 내가 참 예민한 사람이었다.
한데 웃긴 건 정작 본인인 난 전혀 그런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왜 예민해? 어디가? 어떻게?'
초인종도 외부인이 와서 띵똥 하고 눌러, 안에서 그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대는 상황들이 연출되는 게 싫어, 저렇게 종을 달아 빈티지한 멋을 더하고 싶었다. 저 종과 집에서의 거리는 꽤 된다.
저 종을 누군가 와서 흔들어 댄들 집안에서 그 소리가 들릴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아무도 오지 말아라 그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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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탄 대문도 좋다.
치렁치렁 올라온 넝쿨들도 마음에 든다.
오랜 시간 이곳에 자리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안정감, 편안함들이 전해진다.
내가 일군 이 구역에 누군가 발을 딛는 게 싫을 뿐이다.
신랑에게 주문해서 만들어진 우편함.
때가 탔지만 그래서 좋다.
대문 앞에 걸린 꽃장식.
매년 새 걸로 갈아주고 있다.
그리고 나팔꽃 넝쿨....
고맙다. 올해도 예쁘게 피어줘서....
화가 모드 루이스처럼 나도 집, 전체를 예쁘게 칠해 볼까 고민하며마당에 서서 한참을집 이곳저곳 뚫어져라 응시하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