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금주(金作)114일째
불멸의 화가 반고흐 전시회에 다녀왔다.
오픈 30분 전 도착했다. 온라인 예매와 현장 발권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에 걸맞게 기다림의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22분의 대기문자가 도착하고 나는 네덜란드에서 온 반고흐의 원본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 속에 속해 함께 기다렸다.
입장했다.
입장하니 관람객이 더 많았다. 나는 미세한 게걸음으로 발을 옮기며 하나하나 그림을 마주했다. 감상하다 보니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마치 아주 큰 이구아나가 천천히 비늘을 움직이는 듯 다닥다닥 촘촘히 서로 붙어 이동하며 그림을 감상했다. 그만큼 관람객들이 많았다.
출구로 나오니 시간이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흘러있었다. 피곤했다.
최진석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영화나 드라마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아. 빠르게 전개되어야 빠져들거든, 그래야 재미있거든, 전시회나 박물관은 다녀오면 피곤해. 하나하나 생각해야 하거든."
확실히 공감되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처음 보는 우드의 감성이 차분히 베인 카페에 들어왔다. 쉬면서 반고흐 작품의 여운을 느끼기 위해 다이어리를 펼치고 검정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손 위로 검정옷의 소매와 검정 외투가 보인다. 케이크에 앙증맞게 얹어진 블루베리도 검정들과 같이 있으니 애도 검정이라 인정해 줄 수 도있겠다는 색감으로 보였다.
나의 관람 포인트는 반고흐의 노동에 대한 가치부여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람들의 노동의 흔적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었다. 얼굴의 주름들, 손등에 굵은 핏줄, 햇빛과 땅, 씨를 뿌리고 호미질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씨 뿌리는 사람 그림에서 붓터치에 소름이 돋았다. 그림에서 하늘의 리듬과 바람이 느껴지다니.. 이 태양 아래서는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신비의 기운도 받았다. 이것이 원본을 직접 보는 이유일 것이라 생각 들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놀라움이었다.
몽마르트르 언덕그림도 있었다.
이곳은 집과 술값이 저렴해 예술인들이 많이들 머물렀다고 한다. 고흐도 여기 머물며 술을 즐겼다.
녹색술, 독하게는 70도까지도 있었다는 그 독한 술을 마시며 예술의 감각을 살리곤 했는데 그 녹색술 때문에 예술혼의 그림이 나오기도,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 가엽고 철저히 외롭게 지낸 생이다. 그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이제는 책정할 수 없는 가격의 그림들과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정말 잊힐 수 없는 불멸의 화가가 되었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지만 예술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술과 친했던 시절, 술에 거하게 취해 걸으면서 급하게 다이어리를 꺼내어 썼던 글들이 생각났다. 다음날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꼬부랑글씨에 웃고 귀여우면서 느글느글한 내용에 한번 더 웃었다.
부끄럽지만 글은 이렇다.
길을 걷는다.
장미꽃들이 내 옆을 계속 지나간다. 어린 왕자 생각이 난다. 길들인 장미꽃은 아니지만 이 길도 자주 오면 나에게 특별한 길이 되고 꽃이 되겠지.
길을 걷는다.
보도블록 위를 걷는다. 오늘따라 금을 밟지 않고 걷고 싶다. 저절로 모델워킹이 된다. 오늘 이 길은 나에게 런웨이다. 나의 미묘한 다른 행동이 새로운 결과를 줄 수 있다.
술기운에 어느 아파트의 길게 뻗은 길의 장미를 보고 어린 왕자 생각이 났고, 희미한 선을 피해 걷고 싶은 충동이 생겨 나름 일자로 걷고 싶어 졌고 그 모습이 모델 워킹처럼 느껴졌나 보다.
내 안에 My와 술이 합쳐진 글, 말 그대로 마술글이다.
온전한 나로 예술을 창작을 하려면 얼마나 노력하고 정진해야 할까?
프랑스 화가 앙리마티스 생각이 번뜩 난다. 내가 간직한 기억 속의 이 화가는 행복하게 작품을 만드셨고 85세 돌아가셨다. 건강상 유화물감의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자 종이를 오리고 평생 누워서 까지 작품을 만들었다. 항상 긍정적인 삶이 둥근 곡선의 포근한 선으로 표현됨을 느껴 이분 작품을 보고 있으면 따뜻하고 행복했다.
술이 예술의 힘을 한층 높이는 창의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맨 정신에는 시도도 못했을 글이나 그림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겠다 생각 든다.
나는 금주 중이고 평생 술을 먹지 않을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로지 스스로 나만의 독창적인 창의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 문장이 떠올랐다.
예술은 인간경험의 바탕이야.
인간의 시각경험으로 미술이, 청각경험으로 음악이, 언어경험으로 문학이 탄생한다네.
김지수작가의 이어령의 마지막수업 중에서
'스스로 깨닫고 지혜와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야겠구나!.'
우리는 모두 다이아몬드이다. 예술가들은 각자 자기 개성으로 예쁘게 다듬어진 다이아몬드이다. 각자 저마다의 빛으로 아름답다. 우리도 나만의 멋진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보자.
오로지 내가 주체로써 빛나는 존재말이다.

해맑금주(황금金창조주作)-삶을 해맑게 황금으로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