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진짜 '생존 가능성'이란
‘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라는 부제를 달았으니, 생존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테마가 이 삶에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그 가능성을 어떻게 점치시는지요. 부쩍 다른 業과, 다른 이들이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관심이 커집니다.
저보다 두세 살 정도 어린, ‘음악감독’ 한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나름 드라마 쪽에서는 불러주는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대략 10년 전쯤 여차저차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가, 작년에 또다시 우연찮게 점심을 한 번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무에서 학벌을 따지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 친구가 나름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명문대 인문계열] 출신인데 [음악]으로 밥벌이를 잘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해서 ‘충만한 꼰대력’으로 물었습니다. 어찌 잘 해낼 수 있는지, 또 지금의 진로는 어떻게 결정한 것인지. 인문계와 예체능을 동시에 섭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지에 대한 부러움도 조금은 섞어서요.
그리 물었더니 그 친구가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자신이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은 말 그대로 ‘gift / gifted’라고. 부모님이 음악을 하셨던 분들이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는 운동에, 누군가는 그림 같은 것에 물려받은 재능이 있겠지만 자신은 상황마다 악상이 떠오르는 능력치를 선물 받은 것 같다고.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때는 제 업의 미래를 그리 불투명하게 그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요즘은 그의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새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재능’이라는 커다란 개념에 대해서도 고민해 봅니다.
‘나는 무엇을 타고났는가?’라는 질문에는 사실 딱히 답할 것이 없는 듯합니다.
그리고 '확연히 차별화되는 능력치를 어디에서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생(국민학생) 시절, 운동을 꽤 잘했습니다. 잘 뛰었고, 공을 예쁘게 잘 찼습니다. 당시 학교에 유명했던 축구부가 있었는데,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너무 나빴거든요. 매번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 없는 살림에 비싼 안경을 계속 깨 먹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다시피, 전문적인 운동부 활동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반 대항 운동 경기는 거의 모두 대표로 뛰었던 것 같지만, 사실 운동 능력이라는 건 딱 그 정도까지였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손재주도 없진 않았습니다. 그림도 곧잘 그렸거든요. 미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솔찬히’ 돈이 들어갑니다. 엄두가 나지 않던 사치였습니다. 그냥 국영수를 열심히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체육이든 미술이든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었더라면 말 그대로 전문가로서의 다른 삶이 있을 수도 있었겠으나, 아마 재능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을 거라 진단해 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데에는 개인의 의지 못지않게, 자라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감각들이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그런 축적된 조건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불렀지요. 집안 사정이나 교육의 결, 성장 과정에서 스며든 분위기 같은 것들이 어느새 가능한 선택의 폭을 만들어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그 영향을 비껴가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운동부나 미술 쪽을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선택지는 좁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습죠. 그럼에도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개인이 구조 안에서 나름의 선택과 실천을 이어간다는 개념이니,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 해석은 그의 본래 의도와도 어긋날 겁니다.
아마추어의 선을 넘는 습득력까지는 정말 빠르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센스는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 ‘업’이 될 정도의 유의미함을 갖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프로페셔널이 될 정도의 재주와 탤런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두 가지 영역뿐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그렇습니다.
이 사실이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지점입니다.
지금의 업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 넘게, 조금 운 좋게 꾸역꾸역 유지해 왔을 뿐입니다.
20년 전엔, 방송국 자체가 절대 권력이었습니다. 요즘 쓰면 조롱받는 ‘언론고시’라는 말도 고유명사 같았으니까요. 제가 입사했을 당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던 한 선배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스튜디오 카메라 – 통상 EFP 카메라라고 부릅니다 - 가 전국에 일곱 대 있던 시절에 방송 생활을 했어. 지방 축제에 나 혼자 가도 군수가 버선발로 흰 봉투(?)를 들고 마중 나왔어. 내 친구 드라마 PD가 여배우보고 가랑이 사이로 기라면 기어 지나갔어. 너흰 끝물이야.” 10년 정도 차이가 나던 한 선배는 항상, “여기 일은 명문대 필요 없고 지방 4년제 정도만 나와도 충분해, 오히려 걔들이 일을 더 잘하는 것 같아”라고도 했습니다.
통상 전문직으로 표현되지만, 방송업의 주변에서 맴도는 일은 제 짧은 생각으론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물론 이후 생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이젠 반드시 ‘언론고시’를 통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게다가 그 사람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비대해졌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PD님, 작가님, 감독님, 기자님입니다. 저는 종편 채널이 생기기 전에 일을 시작한 세대이니, 그 희소함의 빛이 바래가는 과정을 ‘정타’로 맞았습니다. 원래 전문직이라는 건 결국 되기 어려워야 하고 숫자도 적어 희소해야 가치 자체가 올라가기 마련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이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당장 이 일이 끊기면 조금이나마 비빌 언덕이 없다는 뜻입니다. 뼛속까지 월급쟁이인 저는 장사꾼으로서의, 자영업자로서의 피도 없어서 매번 배우자에게 놀림을 당하는 부류이기도 합니다. 막말로 ‘치킨집을 차려도 퍼주다 망할 것 같기만 하다’라는 평을 받는 저는 그래서 더 고민스럽습니다. 최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다시) 인기인데, 퇴직 후 사기당하는(?!) 김 부장처럼 될지 걱정입니다. 김 부장의 현명한 부인처럼, 2막의 준비를 서둘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만 부쩍부쩍 커집니다.
2025.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