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혼밥
오늘도, 혼자, 조금 이른 저녁을 먹습니다.
사무실 앞 단골집에서 라면 사리를 넣은 김치찌개 하나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맥주도 한 병 시킵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편이라, 이 정도는 뭐랄까, 스스로 허락한 작은 의식 같은 것입니다. 1만 5천 원 정도의 한 끼. 법인카드로 긁을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사치 같은 느낌도 드는, 일정한 패턴입니다. 메뉴 선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리를 넣느냐, 넣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고민이 거의 필요치 않다는 점도, 입가에 무언가 묻어도 부끄러울 일 없다는 점도, 사소하지만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홀로 먹는 식사는 늘 조용합니다.
말할 필요가 없고, 상대의 감정을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음식이 나오면 조금씩 떠먹을 뿐입니다. 웬만하면 휴대전화를 잘 보려 하지도 않습니다. 속이 따뜻해지면 오늘도 무사히 한 끼를 챙겼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이런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 루틴은 점점 말 그대로의 의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사이의 온기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닙니다.
식당의 다른 테이블에서 들리는 웃음, “이 반찬 맛있다”처럼 누구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말, 술잔을 건네는 손짓 같은 평범한 교류가 간혹 마음을 건드립니다. 그런 순간에는 옛 생각이 스칩니다. 그 감정이 그렇다고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고독이 다시 자리를 잡고, 저는 조용히 혼자 먹는 편이 더 낫다고 스스로 정리합니다.
노동에서의 은퇴는 곧 관계에서의 그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맞춰줄 필요가 없고, 저를 찾는 사람도 없이 지내는 조용한 삶. 흔히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그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고요함을 마음속에서 이상적인 형태로 그려왔습니다. 오해를 낳고 갈등을 쌓는 관계의 부재. 혼자 있을 때만 유지되는 일정한 균형감. 어쩌면 우아하게 독서하며 하루를 나거나, 아니면 이불속에서 쇼츠를 보며 뒹굴뒹굴하기만 하는 차분한 적막함.
하지만 조금 솔직해지면, 그러한 소망 속에도 작은 흔들림이 있습니다.
사실 큰 회사에 있을 때 대인 관계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선배들이 적잖이 있었고, 후배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받는 꼰대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허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번개' 같던 교류는 이젠 옛일이 되었을 뿐이지요. 가끔 그립고, 자주 외롭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사람을 피할수록 사람을 떠올리게 되고, 관계가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온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온전히 가시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존재를 찾습니다. 이 모순이 어쩌면 제 소망에 대한 기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사람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한나 아렌트가 그랬다죠. “노동(labor), 일(work), 행위(action)”가 인간 활동을 크게 나누는 세 가지 틀인데, 그중 가장 고귀하다는 ‘행위’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만 가능하다고요. 개인이 혼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차원. 서로 말하고 반응하고, 때로는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한 인간의 이야기와 정체성 같은 것이 생긴다고요.
그 관점에서 보면, 관계에서 은퇴하겠다는 제 바람은 제 삶의 한 축을 스스로 약화/악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관계가 번거롭고 고단한 것임에도, 그 관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나의 흔적’ 같은 게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저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편이 좋다고 말하니, 저는 그동안 제 감정의 절반을 외면하며 살아온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혼밥’은 그렇게 단순한 끼니의 때움이 아니라, 제 마음속 모순을 고요하게 드러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부대끼고 싶다가도 결국 혼자가 편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마음.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갈망하는 성향. 그 두 감정은 늘 교차합니다. 멀어지고 싶어 하면서 완전히 끊어내지도 못하는 모습. 그 틈이 제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맥주를 한 잔 들이켭니다.
이리도 찬 맥주는 어쩜 들어가자마자 몸을 뜨겁게 만드는 걸까요. 취기가 고민을 잠시 또 흐릿하게 만들었습니다. 잠깐의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고, 외로움이 크게 몰려오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얇은 안도감 같은 것이 조용히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감정은 이름 붙이기 어렵습니다. 안정인지, 체념인지,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일지, 혹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닌지. 알 듯 모를 듯한 그 기분이 하루의 끝에 남습니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시고는 저는 그 정도면, 오늘 하루를 조용히 버텼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술이 또 그렇게 머릿속의 셔터를 내려주며 오늘의 의식이 끝납니다.
2025.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