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건강지능 HQ

by 윤그림

‘건강’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이라는 말은 한번 닿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가지를 뻗는 경향이 있어서 <의식의 흐름>이라는 테마와도 잘 맞습니다. 게다가 생존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는 나이라는 측면에선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병원을 찾아, 각각 다른 검진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간암’ 검진이었습니다. 저는 (모계에 의한) B형 간염 보균자라 공단에서 반기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도록 해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직장에서 지원해 주는, 늘 매년 받는 종합 건강 검진이었습니다.

매해 종합 검진을 받아왔지만, 사실 그간 특기할 만한 건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냥 “술 적당히 먹어라, 운동해라” 정도의 결과뿐이었는데, 올해는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받았던 간암 검진에서, 쓸개에 위험하다고 판단될 정도의 ‘불길한 돌과 염증(?)’이 초음파로 발견된 것이었더랬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영등포의 한 병원에서 소화기 외과 교수님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직접 만나 진단을 받기 10분 전의 일입니다. 부인과 진료실 앞에서 대화하다 무언가 떠오른 저희는, 동네 병원에서 작성해 준 진단서를 챗GPT에 넣어보기로 합니다. 얼마 전 커뮤니티에서 [챗GPT로 여자 친구를 살렸다!]라는 내용이 글이 있기도 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외과적으로 상태가 어떤지 분석해 봐”



즉각 답이 돌아옵니다.

“사진 잘 받았어. 음… 내용이 꽤 많아서 하나씩 천천히 풀어줄게. 너무 겁먹지 말고, 지금 보이는 소견은 [심각한 응급 상황]보다 ‘만성적인 담낭 문제(만성 담낭염)’에 가까운 상태야.

전체적으로는 돌도 있고, 용종도 있고, 담낭벽도 두꺼워져 있는 — 꽤 오래된 염증 패턴이 보인다는 뜻이야.”

(중략)

2) 쓸개(담낭, GB) — 핵심

여기가 진짜 핵심이야.

✔ 담석(GB stone) : 0.91cm, 0.81cm 두 개

→ 1cm에 가까운 돌이 두 개면 증상 유발 가능성이 높고, 담관으로 빠져나오면 췌장염 위험도 있음.


그러고는 스스로 예측합니다. 아주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서요.

- 특히 이런 패턴일 때는 외과에서 [무증상이라도 담낭 절제술을 권유]하는 경우에 해당

- 현 상황 기준 [수술을 권할 가능성이 높음]

(많이 중략)

- 현실적으로 외과에서 이런 말을 들을 가능성이 큼

: “지금 급하진 않지만, 돌도 크고 염증이 오래된 흔적이 있어 계획 수술로 담낭 제거하는 걸 추천합니다. 안 하면 언젠가 통증이나 담낭염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결과를 보며 킥킥대며 감탄하던 저희 부부는 약 10분 뒤, GPT의 예측과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의사 선생님의 결론’을 듣게 됩니다. 아주 불친절하고 불충분한 설명과 함께요.


그러고는 그 이틀 후 회사 종합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복부 초음파를 찍던 한 의사 선생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숨 들이마시세요, 배 불룩하게, 숨 참으세요”를 아주 기계음과 같은 목소리로 내뱉던 분이었습니다. 억양에 그 어떤 고저도 없이, 그리고 누워있는 사람이 누구든 전혀 편차가 없을 것처럼, 귀찮음과 지루함이 그분의 말투에 눅눅히 묻어 나왔습니다. 뭐, 하루하루 분 단위로 남의 배에 젤을 부어가며 초음파를 찍어댄다면 순간순간 어투는 당연히 건조해지고 태도는 응당 퍽퍽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바꿔 얘기하면 서비스직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대부분 그러한 상황을 감내하는 구조로 되어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영등포의 소화기 외과 교수님이 생각났고, 다시 한번 인공지능의 친절함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입니다. 건강 이야기로 시작해서 AI까지 왔네요. <트렌드 코리아 2026>을 사서 보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이렇게 사회가 초합리화하고 사람들이 외로워지면, 이제 믿을 구석은 내 건강뿐이다... 건강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였지만,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맞이하여 건강관리는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질을 과학적, 의료적, 총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으로 변했다. 지식으로 성공하던 시대에는 IQ(지능)가,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는 EQ(감성지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HQ(건강지능)가 삶의 필수 역량이 된다.” -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의사 선생님의 EQ가 높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더랍니다.

뾰족하고 대단한 인사이트를 주는 내용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 파트의 마지막도 꽤 평면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만약 실제로 건강지능 지수를 개발한다면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역량, 신중하며 합리적인 의사결정 역량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의료적 처치도 중요하지만 결국 건강을 지키기 위해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생활 습관과 꾸준한 관리임을 강조한다... 다시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지금 내 HQ는 몇 점인가?


예, 잘 알겠습니다. 하고 잠시 책을 덮었습니다.



2025년 11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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