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40대 중년 남성의 생존 가능성에 부쳐 - 소소한(?) 말썽

by 윤그림

요즘 진행 중인 한 프로젝트 덕분에, 가끔 AI 동영상 제작 플랫폼을 이용해 직접 영상을 만드는 일도 번외로 하고 있습니다. 선각자와도 같은 한 피디 선배님으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미드저니]라는 이미지 제작 사이트부터 시작해서, [SORA], [Runway] 등의 영상 생성 인공지능도 조금씩 연구하는 중입니다.


어제는 방송에 쓰일 [AI 제작 영상] 하나가 필요해서, 딱 하나가 부족해서, 열심히 프롬프트를 넣고 “Generate” 버튼을 ‘열나게’ 눌렀습니다. 제가 원했던 건 간단한 듯 어려운, 어려운 듯 간단한 동영상입니다. 소위 ‘나이프 게임 Knife Game’이라고 불리는 장면. 손을 활짝 펴 탁자 위에 놓고 칼이나 연필을 손가락 사이로 찍어대는 그 위험천만한 놀이 말입니다. 영어로 번역된 문장을 프롬프트에 집어넣습니다. 처음에는 “나이프 게임을 하는 젊은 여성의 손, 탁자 위에 놓인 그녀의 손을 미디엄 클로즈업 샷으로.”라고 간단하게 넣어봅니다. 아쉽게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칼을 든 그림만 만들어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적어봅니다. “칼이 손가락 사이를 오가며 바닥을 번갈아 찌르는 ‘나이프 게임’을 하는 여성의 손을 미디엄 클로즈업 샷으로. 칼끝이 손가락 사이의 바닥을 순서대로 찌른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한 곳만 줄기차게 찍어댑니다.

사실 인공지능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AI에게서 좋은 답변을 이끌어 내는 것은 인간의 정교한 프롬프트일 테니까요. 다시 한번 최대한 친절히 번역된 문장을 입력해 봅니다. “칼끝이 왔다 갔다 하는 나이프 게임을 하는 손. 그 칼끝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찍고, 다시 검지와 중지 사이를 찍고, 중지와 약지 사이를 반복적으로 찍는다.” 이번에는 참고할 만한 이미지도 함께 첨부해서 넣어줍니다. 허나 야속하게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혹시라도 스스로를 해치고 싶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든다면:

988로 전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세요.

또는 Suicide & Crisis Lifeline(자살 & 위기 상담 핫라인)의 라이브 채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무료이며 비밀이 보장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해 줄 훈련된 상담사와 연결됩니다.”

라는 피드백만을 내놓은 채 영상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정책 위반’이라는 이야기지요.


말 그대로 야속합니다. ‘어째, 통제가 안 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냐...’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동영상을 만드는 일이 통제 불가능한 일 중 가장 작은 일이라면, 가장 큰 것은 (어쩌면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도 같은데) 바로 투자의 영역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돈은 아닙니다만 빚을 다 갚고 남은 약간의 목돈을 다양한 주식에 나눠 투자하고 있습니다. S&P도 있고, 국내 바이오 기업도 있고, 유명하지 않은 미장의 주식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소신대로 넣었고, 어떤 건 지인이 투자하라 하여 ‘무지성 매수’ 하기도 했습니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는 대략 3~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정말, 참, 이거 쉽지 않습니다. 저처럼 공부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채 주식을 매수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도박]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 사실 이 속성을 알고 있음에도 ‘이게 참 통제가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지의 증거일지 모르겠습니다. - 아주 다행스럽게도 본전 근처에서 빨강과 파랑이 왔다 갔다 하고 있긴 합니다만, 큰돈을 만질 기질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금 미장 주식의 손실이 –50% 정도 되는데, 크게 크게 보지 못하고 숫자를 보며 하루하루 낙담합니다. 꼭 이런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하다 원금 회복되자마자 후딱 팔아버리고는 안도하며 미래의 상한가를 날려버린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아이는 이제 사춘기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내년이면 이제 청소년이 될 예정입니다. 신경을 열심히 쓴다고는 하지만 제가 모르는 그녀의 영역이 점점 늘어납니다. 휴대전화의 패턴도 제가 전혀 건드릴 수 없는 수준으로 설정해 둡니다. 주말에는 친구와 따로 약속을 잡는 날들이 늘어납니다.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는지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패드를 오래 보고 있는 듯하여 잔소리를 조금 하면, 표정이 굳는 정도는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집니다.


약간의 비약을 더하면, ‘내가 조종석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조금씩 벗겨집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안정과 예측 가능성에 기대어 살아갈 때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계획이 틀어지고, 통제가 느슨해지고, 삶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 그 불안한 틈 사이에서 비로소 진짜 자기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고 했죠. 우리가 무언가를 꽉 움켜쥐며 유지하려 할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흩어지는 순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프롬에게 중요한 건 ‘지배’가 아니라 ‘관찰’이었고, ‘소유’가 아니라 ‘존재’였습니다. 삶의 균형이 흔들릴 때 비로소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동안 미뤄두었던 질문들과 천천히 마주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중년의 삶은 통제를 잃는 시간이 아니라, 그 틈새에서 ‘나 자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겠죠. 체력도 의지도 충만했던 젊은 시절처럼(?!) 모든 걸 조절할 수는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굳이 조절하지 않아도 하루는 흘러갑니다. 어쩌면 제가 어찌하지 못하는 영역엔 특별한 의미 대신, 그저 빈자리만 남는 것일 수 있습니다.

AI는 여전히 딴소리를 하고, 주식은 폭망 하고, 아이는 점점 자기 시간을 갖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점점 줄어듭니다. 대신 눈에 들어오는 건 소소한 일상 정도입니다.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 조용한 저녁, 그런 것들. 오늘은 그래도 취하고 싶지 않아서 무알콜 맥주를 한 캔 땁니다.


중년이란 결국 통제보다는 관찰에 가까운 시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글프지도, 대단히 자유롭지도 않지만, 적어도 큰 충격 없이 버틸 만한 어느 지점, 그 주변을 찾는 일.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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