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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라 Apr 24. 2022

지구에 월세 내는 고양이

심장이 특이한 고양이와 산다는 건


심장이 특이한 고양이


    지난 11월 셋째 주말쯤부터 모카의 호흡이 가쁘기 시작했다.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놀기도 잘 놀았지만, 1분당 호흡이 60회가 될 만큼 숨이 찼다. 아기 고양이인 경우 분당 호흡수가 가 높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 냥이에게는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야생의 습성이 남아있어 적에게 약점을 숨기려는 고양이의 습성상으로도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만성 월요병을 가진 나는 동물병원에 갈 수 있는 월요일이 얼른 오길 바랐다.(참고: 윤쌤 유투브 - 고양이가 아플 때 보내는 신호 )

    월요일이 되면서 가쁜 호흡의 원인을 찾는 모카와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카의 중성화를 한 다니던 동물병원에는 아쉽게도 전문 기기가 없어서 가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후기가 좋은 내과 전문 동물병원을 먼저 찾았다. 수의사에게 모카의 증상을 나누고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 촬영 결과를 보며 의사는 모카의 심장이 너무 큰 상태이며, 폐수종 초기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원인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선천적인 문제로 보인다고 하셨고, 심장 전문 병원을 추천해주셨다.

    다음날 모카와 나는 추천받은 동물 심장 전문 병원을 찾았다. 심장 전문 병원에서 처음으로 받는 심장초음파 등,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이 숨을 가쁘게 하는지, 또 심장은 왜 커진 건지, 치료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카는 RCM(Restrictive Cardio-Myopahty/제한적 심근증)이라는 선척적인 심장병으로 진단받았다.(참고: 헬릭스 동물병원 블로그 - 고양이 RCM )

    첫 병원에서 선척적 원인으로 인한 증상임을 알았을 때, 왜 하필 모카이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의문이었다. 모카의 사랑스러움이 과해서 심장까지 하트 모양(비대한 심장을 하트 쉐이프라고 함)이어야 했는지, 자연의 과도함에 치가 떨리기도 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모카는 잘 치료받아 이제는 한 치의 가쁨도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어 담담하게 말하고 글로 옮길 수 있지만,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작할 때는 자주 무섭고 자주 슬프고 자주 비관적이 되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 오랜만에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모카는 아픈 증상이 있던 고양이가 아니라, '심장이 특이한 고양이'이다. 사랑스러움이 심장까지 넘쳐 실제로 심장이 하트 모양이었던 고양이, 심장이 조금 특이한 고양이일 뿐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평범하게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놀기도 잘 논다.



레벨 업한 집사와 생각보다 강한 모카  


    택시에서 질질 짜던 집사는 모카의 증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는 지식과 이성으로 무장한 집사가 차지했다. 치료 초기 질질 짜던 집사는 모카의 작은 움지임과 증상에 갖은 망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고양이 가루약 캡슐링을 처음 할 때 가루 하나라도 흘릴까 봐 전전긍긍하다 손을 더 떨기도 했다. 모카에게 약 먹이는 것을 실패한 날은 스스로 너무 바보 같고, 집사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웠다.

    온갖 고난과 고생을 겪은 지금의 집사는 엄청난 레벨 업을 했다. 모카가 심장이 특이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무지렁이 Lv.2쯤의 집사로 살았을 것이다. 현재는 체감상 Lv.37 정도 된 것 같다. 인간도 유전적으로 탈모인 사람 혹은 유전적으로 당뇨병에 걸리기 쉬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모카는 유전적으로 심장이 특이할 뿐이고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레벨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한 모카 덕분인 것 같다. 집사가 약도 먹이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모카는 많이 아팠을 텐데도 처음 감기약으로 인한 졸림 증상 이외에 매일 밥을 와구와구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조금이지만 재미있게 놀고 그리고 놀아달라고 떼쓰기도 했다. 모카는 마치 '특이한 체질이고 대수롭지 않음'을 먼저 안 것처럼, 평범하고 귀여운 일상을 보냈다.



지구에 월세 내는 고양이


    모카의 심장 크기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심장약을 끊었지만, 요즘 염증 관리를 위한 약을 먹고 있다. 언젠가 관리를 위한 약도 끊을 테고, 또 나이가 들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면 심장 증상으로 인해 다시 심장약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약이든 모카가 하루라도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값을 낼 것이다. 나는 집사로서 모카가 지구에 계속 살 수 있도록 월세를 낸다고 생각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말이다.

    가끔 지구에 내는 월세로 모카의 간식을 사주거나 가구를 샀다면 우리 집이 모카의 파라다이스가 되었을 것 같아 아깝기도 하다. 하지만 모카의 파라다이스보다 지구에서 함께 사는 모카와의 삶이 나에게 더욱 소중하기 때문에, 모카도 우리 집이 파라다이스가 아닌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오늘도 모카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이전보다 내 삶의 축복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모카의 지구 월세를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 또한 내가 힘들었을 때 위로해주고 응원해준 친구들과 가족들의 존재에 감사하며, 그들에게도 감사함을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모카가 오히려 불치병이 아니라 치료 방법이 있는 선천적인 특징을 가진 것에 감사하며, 모카의 병원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것에 감사했다.

    이전에는 '왜 하필 모카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아빠가 나에게 말해준 것처럼, 이제 모카는 나와 지구에서 잘 살아가려고 나에게 온 것 같다.


모카의 분당 호흡수가 빠를 때
병원이든 집이든 귀엽쥬
모카가 약기운으로 멍한김에 요정 케이프를 둘러봤어요,, 요정이야,요정
뭐든 똥꼬발랄은 막을 수 없지!
잘 먹고 잘 잔답니다(그리고 고양이도 잘 부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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