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돌고 돌아서
평소와 같이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를 떠올리지 않는 날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다 문득,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구나, 지나간 일은 이렇게 조용할 수 있구나 싶었다.
마음이 점화되고 나면 생각의 공간이 커진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타 들어버린 마음은 다른 사람으로 다시 불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나다 보면 더 괜찮아지게 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나도 정상적인 어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평범하게 연애하는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상대가 아무리 나를 좋아해 줘도,
분에 넘치는 사랑과 애정을 쏟아부어도 왠지 쉽사리 마음이 가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면 미련도 없었고, 후회도 오래가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 마음이 텅 빈 느낌만 남았다.
상대방을 100중에 100만큼 사랑하자고 다짐을 해도 그건 다짐에 불과했다.
좋아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을 땐 이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늦게야 알아챘다.
노력하면 원하는 목표치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사실이 허무했다.
동시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을 거스르며 올라가 보았다.
그 끝에는 그 친구가 있었다.
묘한 설렘, 흔들렸던 눈빛, 끝없는 이끌림, 속절없는 기다림.
이 모든 게 사랑이었다.
떠난 적도 없고,
돌아온 적도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박현우’
잊었다 생각했던 그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