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삼켜야 하는 약, 스무 알

10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시작

by 백연서

세 식구가 함께 지낸 지 1년쯤 되었을 때.

몸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바쁜 대학 생활을 핑계로 미뤄두었던 병원을 뒤늦게 찾아갔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아야 할 것 같다는 권유를 들었다.

어릴 때 맡았던 병원의 찬 공기가 내 코를 훑고 지나갔다.


“엄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 아무래도 정신과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해.”


엄마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가봐야지.”


별일 아니라는 듯 엄마는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예약일이 되자,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내 상태를 듣던 의사 선생님은 잠깐의 고민 끝에 전형적인 양극성 장애, 즉 조울증이라고 했다.


적막함까지 느껴지는 병원에서 건네받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바삐 움직이는 약사들 사이에 조용히 내 처방전을 두고 자리에 앉았다.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약을 다 받아 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까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약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불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다림 끝에 이름이 불렸고 약을 확인하는 순간.


“약이 복잡하고 개수가 많아서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대략 봐도 20개가 넘어 보였다.

하루에 먹는 약의 개수가.


약을 먹을 때 주의해야 될 점을 담아 듣지 못하며 약봉지에 적힌 내 이름을 봤다.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급히 약을 챙기고 약국을 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병원 다녀왔어?”


엄마가 퇴근하고 나에게 물었다.


“응. 조울증이래. 약 받아왔고 오늘 밤부터 먹으면 된대.”


엄마의 대답을 듣기 전 약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속으로 삭인 화가 다행히 나오지 않았다.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기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밤이 깊어 지자 약을 한 번에 삼켰다.


많은 양의 약을 넘기려고 하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급하게 화장실에 뛰어가 변기 커버를 올렸지만,

차마 다시 뱉을 수가 없었다.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넘어가지 않는 약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목에 걸린 약이 써서인지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한참을 진정한 다음 잠에 들 준비를 했다.


불을 끄고 누우니 1년 동안 애써 생각하지 않았던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 번호를 지운 지 오래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유일하게 외우고 있던 번호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이사를 가고 난 뒤 아빠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빠도 내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3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잠에 들기까지.


내일의 걱정까지 전부 다 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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