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짐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비어져가는 집 안을 보니 눈가가 시큰해졌다.
간소하게 꾸린 짐가방을 미처 챙기지 못한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
엄마는 이곳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더 멀리 갈 거라고 했다.
차로 5시간 넘게 걸리는 곳으로 이사 준비를 마쳤을 때.
문제가 생겼다.
돈이 묶이게 되어서 남은 잔금을 치를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마음이 급해져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아빠가 무언가 손을 쓴 것이었다.
집에서 빨리 나가던 이유를 그때 알았다.
이사 당일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울분 섞인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으로 소리 내서 우는 걸 옆에서 봤다.
“엄마...”
위로도, 해결도 해줄 수 없는 이 상황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나와 내 동생의 표정에 불안이 드리운 걸 봤는지,
엄마는 당장 오늘 잘 곳을 이곳저곳 알아봤다.
이틀을 생전 처음 보는 숙소에서 지냈다.
엄마는 동생을 잘 챙겨달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바삐 움직였다.
나와 남겨진 동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숙소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왔었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엄마 생각을 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 사이의 일 때문에 너희 고생시켜서 미안해.”
“괜찮아.”
“나도 괜찮아.”
동생과 나는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만 했다.
엄마는 이틀 만에 모든 일을 해결했고 우리는 예정일 보다 하루 늦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마치니 밤이 되었다.
지칠 법도 한데 엄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 마음에 들어?”
한시름 놓은 얼굴이, 대답 대신 표정으로 보여줬다.
새로운 도어록 비밀번호를 정할 때,
우리 세 식구가 같이 처음으로 출발하는 날을 기리기 위해 이사한 날짜로 설정했다.
“행복하자.”
예전 집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던 사람들이 여기 오게 되니깐 말이 많아졌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