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타세요? 그게 배려였을까?
고대 병원에서 진료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긴 진료와 검사로 지친 몸을 이끌고,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같은 라인에 사는 한 아빠와 다섯 살쯤 된 딸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빠, 우리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나는 그 순간 알아버렸다.
이 사람은 우리를 피하고 있다.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이니 같은 층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가 발달 장애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더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때 주원이는 그 아이를 바라보더니 앞으로 다가가려 했다.
나는 조용히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주원아, 거기 가지 말어.”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런데 주원이는 기다린 순서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타려 했다.
나는 급히 손을 뻗어 막으며 말했다.
“주원아, 내리는 사람이 먼저야. 그리고 먼저 기다린 분들이 타야 해.”
그 순간, 그 아빠가 손짓하며 말했다.
“먼저 타세요.”
나는 순간 망설였다.
이게 배려일까?
아니면 ‘그냥 빨리 가세요’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주원이도 얼른 타고 싶어 했고, 상황이 애매해 조심스럽게 “죄송합니다” 하고 먼저 탔다.
지원사 선생님도 따라 탔다.
그런데, 그 아빠는 딸과 함께 타지 않았다.
지원사 선생님이
“같이 타시죠.”
라고 했지만, 그는 짧게 답했다.
“그냥 올라가세요. 저는 다음 거 탈게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선생님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주원이가 뭐가 어때서 저러는 거예요?”
“진짜 저런 어른들이 문제예요. 너무 속상하네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벽을 바라보았다.
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아, 이 사람… 우리를 피한 거구나.
“너희 아이는 절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싫었던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건,
이 순간을 겪고 있는 주원이다.
나는 어른이니, 이런 순간이 불편해도 참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주원이는?
아직 세상을 다 모르는 주원이는?
이런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주원이는 어떻게 느낄까?
어느 날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때,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하고 스스로를 움츠리게 되진 않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지고, 어른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위축되진 않을까?
그런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걱정된다.
그게, 정말 두렵다.
나는 주원이가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내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
그런데, 주원이가 배워야 할 건 우리만이 아니다.
세상도 배워야 한다.
다른 아이들도, 어른들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순간, 만약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자녀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게 정말 아이에게 올바른 행동으로 보이신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아이도 누군가를 대하는 어른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