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꼭 필요한 모습으로
뜨개를 전혀 모르던 시절.
뜨개는 내 영역이 아니라 생각했다.
기다란 나무바늘 두 개로 목도리를 만들고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수세미를 뜨다니!
나는 아마 평생 못하겠다 싶었다.
그랬던 내가 몇 년 전, '네트백 만들기'로 뜨개에 입문했다.
당시,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화제였는데, 주인공 동백이(공효진 분)가 들고 다니던 뜨개 네트백이 대유행했기 때문이다.
그 때야 비로소 내가 봐왔던 나무바늘이 대바늘, 쇠꼬챙이가 코바늘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난 정말 뜨개의 ㄸ도 모르는 생초짜였다.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떠듬떠듬
영상을 따라 해가며 내 뜨개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을 완성했다.
TA-da!
첫 뜨개였지만 배색까지 한 나름 완성도 있는 에코백이었다. 뿌듯한 마음에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메 보고 들어 보고 유난을 떨었었지.
이 가방은 도서관 갈 때, 카페 갈 때, 바다 놀러 갈 때
한동안 주구장창 잘 들고 다녔다.
더 욕심이 생겼다.
이번엔 다른 색으로 만들어볼까?
형태에 조금 변화를 준 두 번째 작품을 단숨에 완성했다.
이 가방들을 만든 게 벌써 5년 전,
아이도 없고 차도 없던 시절이다.
이 때는 친구들과 놀러 다닐 일이 많아
짐을 많이 넣을 이런 큰 가방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아이가 있어 외출이 어렵고
짐은 차에 두고 다니기 때문에 큰 가방은 손이 잘 안 간다.
오히려 차키, 핸드폰 정도만 넣고 가볍게 다닐만한
작은 가방이 더 필요했다.
내 상황뿐만 아니라 취향도 변했다.
예전엔 흐물거리는 네트백이 좋았는데
지금은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가방이 더 좋다.
이런 이유로 내 뜨개가방들은 점점 잊혔다. 그러다 얼마 전, 봄 옷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쓰임새는 줄었지만 여전히 애착이 가는 가방들.
내 손때 가득 탄 가방들의 새로운 변신을 꾀했다.
오롯이 나 맞춤 2025년 판 뜨개가방!
Ta-da!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반영한 나의 New 빽이다.
마음에 들어 보고 또 보고.
계속 보다가 뜨개에 한 번 더 반했다.
실컷 쓰다가 취향이 변하면 다시 풀어 새롭게 만든다?
이것은 재활용을 뛰어넘는 재창조다.
실이 삭을 때까지는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
가성비를 뛰어넘는 갓성비다.
아마 뜨개가 실의 선택에서부터 끝단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내가 직접 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애정이 깃들었기에 섣불리 버리지 못하고
푸르시오를 이겨내며 리폼을 하는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뜨개가 더 재밌다.
그때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다.
뜨개. 정말 출구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