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전시에서 발견한 육아 덕목

성실이 낳은 봄날의 가벼운 기쁨.

by 조이현

나에겐 나보다 10살 많은 친구가 있다.

10년 전 대학 행사에서 만나 나의 대학 시절과 사회초년생 시절을 지켜봐 준 그녀는

前)하늘 같은 선배님이자 現)든든한 직장동료로서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술.

그림에 소질은 1도 없지만 미술 전시회를 기웃댈 만큼의 관심은 있어서(물론 엄마가 되기 전 얘기지만)

미술을 전공한 그녀와의 그림 얘기는 늘 반가웠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시시콜콜한 근황 토크를 하다 미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에 관심 갖게 된 화가가 있어?"

얼마 전 미술 전시회에 다녀온 후기를 들려주며 그녀가 물었다.

가고 싶었지만 육아하랴, 일하랴 짬이 안나 가지 못한 많은 전시회들이 뇌리를 스쳤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화가들이 누구더라...? 애써 떠올려봤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 이렇게 최신동향과 멀어지나 보다.)


그렇지만 나도 좋아하는 화가는 있다.


"음... 앙리 마티스요."

둘째를 낳기 전 다녀왔던 마티스의 전시가 떠올랐다.

포스터, 생활용품에 많이 쓰이는 마티스 작품들

"마티스? 왜?"

"그 사람의 성실함이 좋아서요."

"아~ 아파도 매일 그림을 그렸던 그 성실함?"


역시 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녀답게 마티스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이었다.

(마티스는 매일 적어도 4시간씩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하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이 다짐을 지켜낸 화가이다. 노년에 병마와 싸우며 붓을 들 수조차 없게 되자 그는 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말을 덧붙였다.


"너답다.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네"


주변사람의 작은 장점도 찾아내는 능력을 지닌 그녀인지라

그녀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어왔지만 이 말만큼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평소 성실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나였기 때문이다.



최근, 반복되는 나날들에 지루하고 괴롭던 탓이었을까?

그녀와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대화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던데 나는 글렀어...'

마침 딱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고 있었는데 그녀와 대화하며 잊고 있던 나의 추구미.

'성실함!'이 다시 떠올랐다.


말 나온 김에 마티스 전시에서 찍어두었던 그의 그림들을 꺼내보았다.


병마로 괴로웠던 노년에 컷아웃으로 그린 그림들


강렬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이 그림들은 사실 엄청난 인고와 인내 끝에 얻어진 결과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처럼

겉치레 없는 이 그림들은 마티스가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도 그려본 끝에 얻게 된 최종판이었다.

매일을 우직하게 작업한 그 꾸준함이 그의 그림을 힙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꾸준함에는 폭발적인 힘은 없지만 단단함이 있다.

흩어지는 모래가 단단한 두꺼비집이 되게 하려면 손으로 계속 두드려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소한 습관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뭐가 돼도 된다.

(일만 시간의 법칙은 여기서 나오는 것 아닐까?)




어? 그런데 잠깐!

뭐야 이거 완전 육아 필수 덕목이잖아?

내가 매일 해야 하는 거,

잘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해도 꾸준히 해야만 하는 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만 꺾여도 계속해야 하는 마음 같은 거 말이야.


요즘 '육아'가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어서인지

뭐만 하면 기-승-전-육아로 끝나는 나의 사고회로에 나조차 어이가 없다.


그런데 정말로 육아하는 우리에겐 성실함이 절실하다.

언젠가 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오신 한 선배선생님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일과 같다고 하셨다.

시루 아래로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매일매일 물을 주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콩나물이 훌쩍 자라 있으니 우리도 계속해서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다.


마티스의 그림과 선배의 이 말을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던 마티스 같은 마음으로 육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훌쩍 큰 것 같아 대견했다가도

내일은 아직 크려면 멀었다 혀를 차게 될 때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쌓아가야지.


마티스의 성실함이 그의 작품을 '봄날의 가벼운 기쁨'으로 만들었듯

나의 성실함이 아이를 바로 서게 할 것이라고 믿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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